희망 그리는 시리아 아이들 위로 폭탄이 덮쳤다

2014.05.01 21:54

정부군, 반군 지역 초등학교 공습… 최소 47명 사망

오랜 내전의 고통 치유 위한 전시회 준비하다 참사

2층짜리 초등학교 건물 일부가 폭삭 주저앉았다. 바닥에는 아이들의 학용품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교실 곳곳에 고여 있는 작은 물웅덩이는 빨간 물감이 아니라 핏자국이었다. 시리아 정부군이 지난달 30일 오전 북부 알레포의 반정부군 점령 지역에 있는 학교를 공습해 최소 47명이 사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이 중 45명은 아이들이었다. 하늘에서 미사일이 떨어질 당시 학생들은 몇 시간 후 열릴 그림 전시회를 위해 그동안 정성껏 그린 그림들을 벽에 걸고 있었다.

전시회는 ‘희망의 지문들(Fingerprints of Hope)’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화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오랜 전쟁으로 상처 입은 시리아 어린이들의 심리치료를 위해 준비한 행사였다. 자원봉사자들은 사비를 털어 물감과 붓을 마련했다. 지역 주민들은 누구보다 전시회를 기다려왔다. 전쟁통 속의 그들에게 그림과 예술은 오랫동안 잊고 지낸 그리운 단어였다. 인근 지역의 여러 학교 아이들이 자신들도 참여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전시회 팸플릿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에는 피와 고통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죽음 앞에서도 희망과 끈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시리아 어린이들이 그림 전시회를 위해 준비했던 작품들. 밝은 태양과 푸른 초원 위에 어울리지 않게 서 있는 탱크(위쪽), 총탄과 해골 속에서도 “시리아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말하는 소녀의 모습(아래쪽)이 담겨 있다. | 유튜브·알자지라 캡처

시리아 어린이들이 그림 전시회를 위해 준비했던 작품들. 밝은 태양과 푸른 초원 위에 어울리지 않게 서 있는 탱크(위쪽), 총탄과 해골 속에서도 “시리아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말하는 소녀의 모습(아래쪽)이 담겨 있다. | 유튜브·알자지라 캡처

알레포 현지 활동가가 올린 유튜브 동영상에는 전시되지 못한 그림들이 폐허가 된 학교 벽에 붙어 있는 장면들이 담겨 있다. 주인을 잃은 그림들 일부는 구겨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밝은 태양과 푸른 잔디 위에 어색하게 놓여 있는 탱크, 전투기가 떠 있는 하늘 아래 토끼와 함께 서 있는 소녀. 또 다른 그림에서는 총을 쏘는 군인 앞에 인형을 든 소녀가 서 있고 그 옆에는 “바샤르 대통령”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해골이 그려져 있다. 소녀에게 달린 말풍선에는 “시리아는 자유로워질 거예요”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유로워질 시리아의 미래를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현지 활동가가 올린 또 다른 동영상은 갈색과 푸른색 천에 싸인 10여명의 아이들 시신이 병원 바닥에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넋을 잃은 채 바닥에 주저앉은 여성의 통곡 소리가 들린다.

시리아 정부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테러리스트들을 목표로 한 것이지 학교를 노린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폭격이 이뤄진 날은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3연임에 도전하기 위해 오는 6월 열리는 대선에서 후보등록을 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시리아 정부군이 반정부군 점령 지역의 학교를 폭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도 알레포 지역의 또 다른 학교에 통폭탄이 떨어져 어린이를 포함한 42명이 숨졌다.

발레리 아모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리아의 공격은 직접적으로 아이와 여성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매우 끔찍한 전쟁범죄”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엔은 시리아 사태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의 루이스 디아크 국장은 “시리아 내전의 인도주의적 해결을 촉구한 유엔 결의문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결의문이 발표된 후 몇 달이 지났지만 시리아의 인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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