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사망’ 성지순례자 1170명…사우디 정부는 “개인 책임”

2024.06.23 21:30 입력 2024.06.23 21:32 수정

관광비자 등 미등록 방문자에

교통·냉방·의료 지원 안 해

현장선 “당국 대응 부족했다”

이슬람 성지순례(하지) 기간을 맞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이들 중 1170여명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데 대해 사우디 당국이 책임을 부인했다.

21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익명의 사우디 고위 각료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가는 관리 책임에 실패하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이 위험을 간과하는 오판을 한 것”이라며 “극심한 폭염과 힘겨운 기상 조건이 낳은 사태”라고 밝혔다.

지난 14일 하지가 시작된 이후 사우디에서 1170명이 숨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집계했다. AFP도 메카 인근 병원의 영안실 현황 등을 집계해 최소 1126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온열질환 입원자나 실종자도 수백명이어서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압사 사고로 2000여명이 사망한 2015년 하지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다.

주요 사망 원인은 한낮 기온이 52도까지 오른 폭염이었다. 하지는 매년 이슬람력 12월7~12일 치러지는데, 올해 하지는 여름인 지난 14~19일까지 이어졌다. 불볕더위 아래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했다. 그간 사우디 당국은 지난 16일 순례자 2000명이 온열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밝힌 뒤로는 이 수치도 갱신하지 않았다. 그런데 각국 정부와 언론을 통해 사망자 수가 나오자 사우디 정부가 순례자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 것이다.

메카에 다녀온 순례객들은 당국의 현장 대응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70세 아버지와 함께 하지를 마치고 영국 런던으로 돌아온 40대 순례객 지라르 알리는 “순례객은 엄청나게 많은 데 비해 의료진은 부족했다. (당국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야 개입하려는 느낌이었다”고 CNN에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순례객 아흐마드(44)는 “거리에는 수백m마다 흰 천으로 덮은 시신이 있었다”면서 “지역 주민들이 물을 나눠줄 때마다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 의료대원이나 구급차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미등록 순례자에게 냉방시설 등을 제공하지 않아 피해가 커진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사우디 당국이 성지순례비자(우므라) 발급 인원을 180만명으로 제한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관광 비자 등을 통해 입국한 뒤 메카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다만 이들은 위급상황에 처하거나 사망했을 때 각국 정부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사우디 당국에 따르면 올해 허가를 받은 인원 180만명 외에도 40만명의 미등록 순례자가 메카를 찾았다. AFP에 따르면 올해 하지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미등록 순례자였다.

문제는 사우디 당국이 일부 미등록 순례자들에게도 하지 참여를 허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에겐 에어컨 등 냉방시설을 제공하지 않았다. 사실상 유일한 교통수단인 순례 버스와 의료시설 이용도 허용되지 않아 미등록 순례자들은 뙤약볕 아래 수㎞를 걸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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