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북·미

‘전술적 도박’ 카드 꺼냈던 트럼프 “아주 좋은 뉴스”

2018.05.25 14:02 입력 2018.05.25 23:13 수정

비핵화 보상 입장차에 불신 증폭 속 ‘김계관 담화’ 긍정적 평가

“장기적·지속적 번영”도 언급…북 행보 지켜보겠다는 뜻 분명히

왜 판 흔들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성공을 장담하던 북·미 정상회담을 24일(현지시간) 전격 취소한 배경에는 비핵화에 대한 입장차와 불신·오해가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향후 회담 재개의 여지를 남겨 이번 결정이 대북정책의 방향 전환이 아니라 협상을 위한 전술적 선택임을 시사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에 대해 “따뜻하고 생산적” “아주 좋은 뉴스”라고 긍정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 상호 불신과 소통의 실패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최근 당신들의 발언에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을 회담 취소 이유로 들었다. 리비아 모델을 거론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강경한 언사로 비난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전날 담화를 말하는 것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다”고 전했다. 게다가 북한이 지난주 싱가포르 실무접촉에 나타나지 않았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전문가를 참여시키겠다는 약속도 파기하면서 불신이 쌓인 상태였다고 백악관 고위 관계자가 설명했다.

북한은 리비아 모델을 강요하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나 펜스 부통령을 표적 삼아 공격했다.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 모델 강조는 북한 입장에서 백기투항 요구로 받아들여졌다. 북한이 상호 존중을 요구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와 적대감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회담 취소는 북·미 간 소통 방식과 문화적 차이를 보여준다”면서 “북한의 강경 메시지는 협상의 여지를 찾기 위한 것이었지만 트럼프의 자존심은 수용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강경파들이 리비아 모델 등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잇따라 거론한 것은 의도적 판깨기 시도였다는 음모론도 제기된다.

물론 근본적 배경에는 비핵화와 보상 방식에서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 자리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회담 취소 배경에 대해 “북·미 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고 말했다.

■ 이기는 협상 위한 전술적 도박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통보는 대북 관여정책 포기보다는 이기는 협상을 위한 전술적 도박이란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8일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인 이후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며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위원장에 대해서도 “매우 훌륭하다”고 호평했다. 올 초까지 ‘화염과 분노’를 경고하고 김 위원장을 ‘꼬마 로켓맨’이라고 부르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였다. 그런 점에서 정상회담 취소가 외교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노력을 접고, 다시 힘을 통한 해결로 돌아가겠다는 결정으로 비칠 수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협상 스타일을 볼 때 협상 전술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마음을 바꾸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회담 재개 여지를 남겼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북한이 김 부상을 통해 회담 취소에 강경하게 반발하지 않고 대화 의지를 밝히자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라며 “아주 좋은 뉴스를 받았다”고 환영했다. “이것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번영과 평화로 이어질지 곧 보게 될 것”이라며 “단지 시간(그리고 수완)이 말해줄 것”이라고 했다. 대화 재개 가능성을 열어두며 북한의 향후 행보를 더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먼저 회담을 제안한 것은 최대의 압박 정책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상회담이 잘되면 북한에 좋지만 안돼도 미국은 나쁠 게 없다고도 해왔다. 더 절실한 쪽은 북한이란 판단이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는 미흡한 타협을 하느니 회담을 연기해서라도 성과를 내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양보 제로(0)’를 강조한 것도 지나친 양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측면이 강하다. 국내 정치적인 요인도 작용했다는 얘기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행태와 입장 변화를 압박하기 위해 회담 취소라는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판이 깨지는 것도 감수하면서 이기는 협상을 위한 도박에 나선 것이다. 더힐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저서 <협상의 기술>에서 언급한, 테이블에서 기꺼이 퇴장하는 협상 전술을 직접 차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맞서 트럼프식 미치광이 이론을 적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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