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못 막은 부활절 테러 스리랑카 정쟁이 부른 참사

2019.05.01 21:28 입력 2019.05.01 21:30 수정

대통령·총리 극한 갈등

히잡을 쓴 한 무슬림 여성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한 검문소에서 신원 확인을 요청받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달 21일 부활절 연쇄테러 발생 이후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했다.  콜롬보 | AFP연합뉴스

히잡을 쓴 한 무슬림 여성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한 검문소에서 신원 확인을 요청받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달 21일 부활절 연쇄테러 발생 이후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했다. 콜롬보 | AFP연합뉴스

최소 259명의 사망자를 낸 스리랑카 부활절 연쇄 폭탄테러는 2001년 9·11테러 이후 이라크·시리아 밖에서 일어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중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사전 첩보 입수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 정부의 안일한 대처, 대통령과 총리 간 갈등에 따른 협력 부족이 속속 드러나면서 이번 테러는 정치력 실종이 부른 참사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인도, 주범·목표물 등 알려
대통령, 힌두교 국가 ‘불신’
이웃 IS 거점국 영향 ‘간과’

사건 발생 후엔 서로 남 탓
총리 “대통령이 책임져라”
“정보당국 무능은 총리 탓”

알자지라 등 외신에 따르면 인도 정보당국은 지난달 초 이슬람국가(IS)에 가담했던 자국민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스리랑카에서 종교시설을 대상으로 자폭테러가 계획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스리랑카에 전했다. 첩보에는 이번 테러 실행단체인 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NTJ)의 수괴 무함마드 자하란과 주변 인물들의 신상정보, 이들의 은신처, 테러 목표물이 된 교회 명단까지 담겼다. 하지만 스리랑카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취하지 않았다.

당장 스리랑카 정부가 세계화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위협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IS가 인도네시아·필리핀 등 인근 국가에 이미 해외 거점을 구축한 만큼 스리랑카에도 극단주의가 스며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웃국가인 몰디브는 2015년 기준 최소 200명이 IS에 합류, 총인구(44만명) 대비 가담 비율이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스리랑카 정부는 내전 당시 반군세력의 위협에만 집중했다. 스리랑카는 불교도 싱할라족과 소수 힌두교도 타밀족 간 내전에 1983년부터 2009년까지 26년간 시달렸다. 스리랑카 정보당국의 한 관료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2016년부터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의 행방을 뒤쫓고 이 정보를 안보회의 때마다 보고했지만 주요 안건이 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대통령은 힌두교 국가인 인도의 정보요원들이 자신에 대한 암살을 모의한 적이 있다며 이들이 전달한 정보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사건 발생 후에도 상대 진영에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빴다. 라닐 위크레메싱헤 총리는 지난달 21일 사건 발생 직후 국가안보회의(NSC) 소집을 시도했지만 회의 참석자들이 대통령이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고 밝혔다. 위크레메싱헤 총리 소속 정당으로 원내 제1당인 통일국민당(UNP) 의원들은 대통령이 정보당국·경찰 수장만 해임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압박하고 있다. 이에 시리세나 대통령은 “총리가 내전 당시 전쟁범죄를 저지른 정부군 기소에만 집착해 정보당국의 역량을 떨어뜨렸다”며 맞섰다.

정책적 지향이 서로 다른 대통령과 총리가 오로지 집권을 위해 정부를 구성할 때부터 분열이 예고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좌파 싱할라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스리랑카자유당(SLFP) 소속이다. 2015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대통령이자 SLFP 후보로 나선 마힌다 라자팍사에 맞서기 위해 중도우파 정당인 UNP 대표 위크레메싱헤와 손잡았다.

대통령 당선 뒤에는 위크레메싱헤를 총리로 임명하고, 정부구성 법에 따라 총리와 협의해 장관을 임명하며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이후 경제·안보 정책 현안마다 의견 차를 보이며 충돌했다.

테러 배후인 IS에 가담했던 자들의 처벌을 두고도 입장이 다르다. 위크레메싱헤 총리는 “단순 가담만으로는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대대적인 가택수색을 지시하며 강력한 처벌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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