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태국의 입헌군주제...왕실모독죄 폐지 목소리 커진다

2021.11.08 16:40

최근 태국 국민들 사이에서 왕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증가하고 있다. 왕실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시민이 늘고 있고, 왕실모독죄 폐지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확산되고 있다.

태국 극장에서는 영화 상영 전에 국가가 방송된다. 이때 관객들은 왕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관습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블룸버그통신은 7일 최근 방콕의 한 영화관에서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보러 온 관객 60명 중 절반이 국가가 흘러나오는 동안 자리에 앉아있었다고 보도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극장에서 왕실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난 2019년 한 여성이 국가를 들으면서 앉아있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초티삭 온수웅이라는 정치활동가는 지난 2007년 왕실에 대한 경례를 제대로 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통으로 얻어맞고 극장에서 쫓겨나 왕실모독죄로 기소되기까지 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착석 시위를 계속해온 온수웅은 최근 몇 달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시대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입헌군주제인 태국에서 왕실은 본래 신성시되는 존재다. 태국 헌법은 “군주는 숭배받아야 하고 권위가 훼손되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왕과 왕비 등 왕실 구성원이나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실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하는 경우까지도 헌법 112조에 규정된 왕실모독죄로 최장 15년의 징역형이 부과될 수 있다.

한 태국 시민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방콕 도심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왕실모독죄를 규정한 헌법 112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

한 태국 시민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방콕 도심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왕실모독죄를 규정한 헌법 112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

하지만 지난 15개월간 왕실 예산 축소, 왕실모독죄 폐지 등 입헌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면서 왕실에 대한 여론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시민들은 국가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고, 왕의 탄생일 등 공휴일에 왕실 상징색인 노란색을 입는 관습을 무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왕실에 대한 순응을 요구해 온 기존 문화와 결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왕실모독죄 처벌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해부터 청년층이 이끌어온 반정부 시위가 기폭제가 되어 9개 정당이 왕실모독죄 형법 개정 논의에 나섰다고 전했다. ‘인권을 위한 태국 변호사들’에 따르면 지난해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후로 왕실모독죄로 처벌된 이는 미성년자 12명을 포함해 최소 155명에 달한다.

제1야당인 푸어타이당은 지난달 31일 “해당 법이 반정부 인사를 기소하고 처벌하는 데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의회에서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푸어타이당은 법 개정안을 내지는 않았으며 대신 의회에서 논의를 중재하겠다고 밝혔다.

젊은층의 높은 지지를 받던 야당 미래전진당이 강제 해산된 후 창당한 전진당은 왕실모독죄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전진당은 지난 2월 왕실모독죄 형량을 기존 최장 15년에서 1년으로 줄이거나 30만바트 벌금형으로 바꾸는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법안의 의회 통과에는 실패했다. 시민단체 진보운동은 지난달 31일 헌법 112조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을 시작했다. 해당 청원은 불과 일주일 만에 12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고 현지매체 방콕포스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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