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미국 달러 삽니다" 짐바브웨에선 손상된 화폐 거래 유행 중

2021.11.18 17:00

“찢어지고 닳아버린 미국 달러 다 삽니다. 오늘 시세가 좋아요!”

11월 무더위를 뚫고 짐바브웨 하라레 거리에서 방송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카이타노 카사니(42)는 오늘도 확성기를 들고 미국 달러를 팔겠다는 고객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한 여성이 카사니의 목소리를 듣고 나와 찢어진 20달러짜리 달러 지폐를 보여주었다. 카사니는 지폐를 꼼꼼히 뜯어보고 나서 여성에게 15달러를 건넸다.

가디언은 17일(현지시간) 경제가 궁지에 몰린 짐바브웨에서 최근 찢어지고 구겨진 미국 달러를 사고파는 게 유행이라고 보도했다. 국민들은 지난 2008년 최고 2억%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율을 경험하는 등 수년간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 화폐 가치를 믿을 수 없게 되자 돈을 은행에 저금하기보단 직접 손에 들고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편 물가 폭등으로 짐바브웨의 자국 통화 가치는 하락했다. 오래된 짐바브웨 달러(ZWL)를 은행에 가져가면 그 절반 정도의 가치밖에 안 되는 돈을 받게 되니 미국 달러에 대한 수요가 자연스레 늘어났다. 하지만 수출 규모가 줄어들면서 미국 달러의 유입도 쪼그라들어 공급은 부족해졌다. 짐바브웨 은행은 미국 달러가 부족해지자 지난 12월 성명서를 통해 “지폐의 절반이 멀쩡한 상태로 남아있고 숫자만 명확하게 분간 가능하다면 아무리 오래된 미국 달러라도 사용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이는 카사니처럼 손상된 미국 달러를 사들여 수선해서 다른 업자들에게 팔거나, 은행 관계자들을 설득해 달러를 대량으로 거래하는 새로운 사업가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2년 전 제조업 종사자였던 카사니는 직장을 잃고서 일찍이 손상 달러 지폐 거래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현재 자녀 넷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번다고 한다. 카사니는 “손상된 미국 달러 지폐를 사들여 80% 이익을 남기고 다른 업자들에게 파는데 수익성이 꽤 좋다”면서 “최근 다른 사람들도 지폐 거래 사업에 나서면서 경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한편 짐바브웨 달러에 대한 신뢰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짐바브웨 정부는 지난 2009년 인플레이션을 견디지 못하고 자국 통화를 폐지하고 미국 달러를 공식 화폐로 채택했다. 외환이 바닥나자 정부는 지난 2016년 다시 ‘본드 노트’라는 자국 통화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본드 노트가 미국 달러와 1:1로 교환 가능하다고 설명했으나 국민들의 자국 금융체계에 대한 신뢰도는 이미 바닥을 친 후였다. 암시장에서 미국 달러가 고가에 거래되고 본드 노트의 가치는 떨어지자 정부는 2년 전 또 새로운 자국 통화인 ‘RTGS’ 달러를 찍어냈다.

짐바브웨 달러에 대한 신뢰가 부재한 가운데 미국 달러가 귀해지면서 암시장에서 미국 달러를 비싼 값에 사들이는 경우는 여전히 흔하다. 지난 9월 짐바브웨 공식 환율에 따르면 짐바브웨 86달러를 주고 미국 1달러로 교환할 수 있지만 암시장에 달러 가치는 이보다 두배 이상 비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짐바브웨 정부는 짐바브웨 달러의 가치가 폭락한 것에 대해 불법 환전업자들을 탓하고 있다. 콘스탄티노 치웬가 부통령은 “사기꾼을 색출하기 위해 정보부대를 설립하는 등 엄격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경제전문지 쿼츠에 따르면 짐바브웨 은행은 지난 9월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법으로 환전소를 운영해온 개인 30명의 계좌를 동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과 경제 전문가 모두 불법 거래에 대한 단속은 무의미하다고 입을 모은다. 원래 교사였다는 무넨가미(가명)는 “월급을 미국 달러로 환산했더니 50달러밖에 안 된다는 걸 알고 나서 손상 지폐 거래업자로 직업을 바꿨다”고 말했다.

아기를 등에 업고 다니면서 경찰의 눈을 피해 짐바브웨 달러를 미 달러로 환전해주는 아미나 반다(34)도 “먹여 살릴 가족이 있으니 이렇게 다닐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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