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길’ 귀환하는 영국

2024.07.02 20:50 입력 2024.07.02 20:52 수정

7월4일 열릴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은 40%대, 보수당은 20%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큰 이변이 없을 시 1997년 제3의 길을 내세웠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압승을 재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보수당의 몰락에는 브렉시트,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경기침체 등이 이유로 꼽힌다. 브렉시트는 2016년 보수당의 지지층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등장해, 정확한 손익계산을 따져보지도 못한 채 시작되었고, 결국 영국의 무역과 투자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최근엔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여론이 다수가 될 만큼 국민들의 입장도 달라졌다. 브렉시트 결정에서도 알 수 있듯, 보수당은 인기에 영합한 정책을 고수하다가 장기 경제성장 전략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영국 경제의 저성장은 금융·법률 등 서비스 산업 위주의 산업구조와 보수당 정부의 긴축재정으로 인해 줄어든 연구·개발 지원, 교육과 훈련 투자 감소 등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해진 탓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게다가 올해 리시 수낵 총리가 노동시장에서 자국민 활용을 우선시하기 위해 반이민 성격이 강한 비자법을 도입하면서 우수 해외인력으로 유지돼오던 산업영역에서조차 경쟁력을 잃을 위기에 놓여 있다. 개정된 비자법은 영국 대학 졸업 후, 취업을 꿈꾸던 외국인 학생 유치에도 영향을 줘 다수 대학들이 재정위기를 호소하는 실정이다.

14년 만의 정권 창출을 기대하고 있는 노동당은 보수당의 이런 과오를 바로잡고, 새출발의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히 노동당은 보수당 정부의 경제관리 능력을 강하게 비판하며 집권 시 경제개혁에 힘쓸 것임을 강조했다. 키어 스타머가 이끄는 노동당은 ‘높은 세금과 지출’이라는 노동당의 전통적 이미지와는 거리를 두고, ‘친기업, 친노동’을 추구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주장한다. 노동당은 1997년 블레어 정부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부분에 현명한 지출을 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밝혔다. 이번 노동당 공약 중 눈여겨볼 만한 점은 새로운 산업정책이다. 대표적 자유시장경제 국가인 영국에선 보통 민간부문 주도로 투자가 이뤄지고 이를 지원하는 산업정책이 도입되곤 했는데 이번 노동당은 국가가 앞장서 신산업 전략을 구축하고, 경제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재생에너지 및 친환경 기술 분야가 가져올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국영 에너지 회사인 그레이트 브리티시 에너지를 설립하고, 연간 17억파운드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동당은 이미 많은 산업영역에서 주도권을 뺏긴 영국이지만 저탄소 저장 기술, 원자력, 해상풍력 분야에서는 여전히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기에 해당 분야 투자를 확대해 친환경 기술 경쟁에서 앞서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동당의 야망과 다양한 정책은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여러 장벽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이다. 발표된 공약으로 보아 공공부문 투자가 늘어날 것은 자명한데 그 수준에 맞는 재정 확보 계획은 아직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현명한 지출을 약속한 노동당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선 투자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방향을 함께 보여줘야 할 것이다. 다가올 총선과 노동당, 영국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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