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27

‘더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기후변화 피해국 활동가들의 ‘기후정의’ 호소

2022.11.14 14:25 입력 2022.11.14 17:17 수정

피지와 남아공 출신 활동가

샤름엘셰이크 현장 인터뷰

“내 나라가 86개월 후 존재할지 말지에 관한 문제다. 당신은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타협할 수 있나?”

아미나스 쇼나 몰디브 환경부 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도중 열린 기자회견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선진국들이 ‘손실과 피해’ 보상을 위한 지원 의사는 밝혔지만, 구체적인 절차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총회가 끝날 때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어떻게 타협할 수 있을 것 같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명백한 조소였다. 그는 이어 “태평양 섬나라들은 현재 사형선고가 내려진 거나 마찬가지”라며 “수십 년간 미뤄져 온 ‘기후정의’가 이번 총회에서만큼은 꼭 이뤄지는 걸 보고야 말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리고 있는 COP27의 핵심 의제는 개발도상국 및 저개발국가들의 ‘손실과 피해’에 대한 선진국들의 ‘책임과 보상’ 문제다. 선진국이 그간 경제발전 과정에서 일으킨 기후변화로 개도국에서 발생한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기금 및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손실과 피해’란 해수면 상승·가뭄·폭우 등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및 비경제적 손실을 뜻한다. 사망과 부상, 생계수단, 사회 기반시설 등의 상실뿐 아니라 생태계나 문화 등의 상실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지난 30여 년간 세계기후총회에서의 논의는 주로 온실가스 감축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위주로 이루어져 왔다. 개도국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거나 탄소 배출이 덜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것이 올바른 기후위기 대응 방안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기후 재난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은 ‘기후정의’를 위해선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에 대한 비용을 제대로 청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경향신문은 지난 12일 COP27에 참가한 태평양 섬나라 피지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활동가들을 만나 기후정의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우리는 30년을 더 기다릴 여유가 없다”

울라이아시 와카이타노아 튀코로 피지 환경운동가. 샤름엘셰이크/김혜리 기자

울라이아시 와카이타노아 튀코로 피지 환경운동가. 샤름엘셰이크/김혜리 기자

피지의 환경운동가 울라이아시 와카이타노아 튀코로(30)는 “태어났을 때부터 기후정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고향 피지는 다른 태평양 섬나라들과 함께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해 있는 ‘기후위기의 최전방’ 지역이다. 2016년엔 결국 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섬 5개가 해수면 상승 및 해안 침식으로 수면 밑으로 사라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튀코로는 현재 피지의 기후위기는 “1년에 한두 번씩 찾아오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가 문제”라 말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해안이 침식되면서 원래는 물에 안 잠기던 곳들이 밀물 때 물에 쉽게 잠겨버린다는 게 문제다. 그는 올해 초 커다란 해일이 피지를 덮쳤는데, 방파제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오전 5시쯤 갑자기 물이 차오르면서 해안선에 있는 도로가 물에 잠겼고, 출근길에 나선 직장인들은 그대로 발이 묶여버렸다. 튀코로는 그날 아침 피지섬 전체가 물이 다시 밀려 나갈 때까지 두 시간 동안 “잠시 멈춤” 상태였다며 “처음엔 신기했던 일들이 지금은 흔해졌다”고 전했다.

다른 태평양 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튀코로는 일부 섬에선 “날생선에 코코넛을 밥 대신 곁들여 먹던 주민들이 먹을 코코넛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기후위기가 태평양 섬사람들의 생계에 손실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젠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기도 어려워졌다. 원래는 별을 보고 어디에 무엇이 있을지를 알곤 했지만 이젠 별도 잘 보이지 않고, 물의 깊이도 해마다 달라져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지금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회의를 30년 가까이 아무리 열어도 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이 처한 위기는 개선되지 않아 왔고, “우리는 30년을 더 기다릴 여유가 없으니”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가난한 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인 현실”

음봉 아키 포크와 차파크 그린피스 아프리카 커뮤니테이션 책임자. 샤름엘셰이크/김혜리 기자

음봉 아키 포크와 차파크 그린피스 아프리카 커뮤니테이션 책임자. 샤름엘셰이크/김혜리 기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환경 운동가인 음봉 아키 포크와 차파크(42)는 현재 그린피스 아프리카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를 맡고 있다. 차파크는 아프리카 기후 위기의 대표적 현상으로 올해 서부와 중부 국가들이 겪은 기록적인 홍수를 들었다. 최근 세계식량계획(WFP) 발표에 따르면 올해 홍수로 아프리카 19국의 500만명 이상이 큰 타격을 받았고, 100만㏊(1만㎢)에 달하는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

방송기자 출신인 그가 그린피스 활동에 뛰어든 동기는 아프리카 산림 보전이었다. 그는 “선진국들이 아프리카의 나무를 마구 베어가는 것은 환경 식민주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서 “아프리카인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원을 빼내 가면 남은 아프리카인들이 그 영향으로 고통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도자들은 자국민들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파크는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카메룬의 해안도시 두알라 등의 홍수 피해 사례를 들며 “한 사람당 200달러 정도의 피해일 수 있지만 그들에겐 전 재산이 사라지고 가족을 먹여 살릴 수단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런 피해는 높은 지대에 사는 더 보호받는 곳에 있는 고위층 엘리트들이 받는 것이 아니라 보험도 없고 별다른 생계 수단도 없는 평균 수준의 시민들에게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아프리카에선 홍수와 함께 비가 원래 와야 하는 시기에 오지 않은 데 따른 가뭄도 자주 찾아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프리카 시골 지역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이 기후정의의 개념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쯤 비가 와야 하는데 안 내린 지 5개월이 지났네’라는 식으로 매일의 삶 속에서 기후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차파크는 기후정의와 관련해 아프리카의 지도자들과 서구 신진국들을 모두 비판했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보통의 아프리카인들보다는 석유기업과 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한 화석연료 개발에 집중하고 있고, 부유한 국가들은 그들의 성장을 위해 아프리카에 입힌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보통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한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거리부터 법정까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나서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 기후 위기에 직면한 아프리카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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