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배가 낳고 총기 밀매가 키운 ‘갱판’…책임지는 선진국이 없다

2023.09.26 06:00 입력 2023.09.26 17:19 수정

제국과 무기상이 합작한

아이티 근현대사 지옥도

<b>시민들은 도망칠 뿐</b> 지난 1월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갱단의 공격으로 잇달아 경찰관이 살해당한 데 분노한 전·현직 경찰들이 거리를 봉쇄한 후 무장시위를 벌이자, 시민들이 이를 피해 도망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시민들은 도망칠 뿐 지난 1월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갱단의 공격으로 잇달아 경찰관이 살해당한 데 분노한 전·현직 경찰들이 거리를 봉쇄한 후 무장시위를 벌이자, 시민들이 이를 피해 도망가고 있다. AP연합뉴스

공화국으로 독립했지만 ‘적반하장’ 배상금에 발목 잡혀
대지진으로 시스템 붕괴…권력 밀착 갱단 200여개 활개
미국 등서 무기류 유입 지속…국제사회 묵인·방조 의혹

아이티 현대사에서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19세기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투쟁을 벌여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으로 출발한 아이티는 20세기에 쿠데타와 독재로 신음하는 국가가 됐다. 허리케인과 대지진 등 자연재해마저 계속 찾아오면서 ‘신이 버린 땅’으로 불렸다.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공권력은 아예 무너졌다.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유엔인권사무소에 따르면 올해 1월1일부터 8월15일까지 갱단 폭력으로 최소 2439명이 사망했고 902명이 다쳤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결성된 자경단은 갱 단원을 산 채로 불태워 처형하고, 갱단이 이에 보복하면서 폭력 양상은 점점 더 잔혹해지고 있다. 경제는 붕괴됐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인구 절반인 490만명이 기아 위기에 놓여 있다.

혼돈에 빠진 아이티를 구할 방법은 없을까. 유엔이 케냐 주도의 다국적 경찰력을 파견해 아이티의 치안을 회복한다는 아이디어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케냐, 아이티 대표들이 유엔총회를 계기로 만나 이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지난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케냐는 최대 2000명의 치안유지단 구성 방안을 제시했다. 서구 국가들은 ‘흑인’ 케냐 경찰의 아이티 상륙은 인종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적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아이티에서는 이런 인식 자체가 ‘오만한 제국주의’의 반복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이티 유력 갱단 연합체인 FRG9의 수장 지미 세리지에는 “과거 방식으로 아이티인을 학대하는 유엔군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반부패활동가 벨리나 엘리제 샤를리에도 “늦었다. 수도 포르토프랭스 지형도 모르는 외국 경찰이 갱단과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케냐 경찰이 자국에서 가혹한 시위 탄압을 한 적이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아이티 문제를 오래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다른 질문을 제안한다. “어떻게 외국군을 구성해 아이티 갱단을 소탕할까”보다는 “갱단이 어떻게 아이티에서 활개 칠 수 있었을까” “누가 아이티 갱단에 총기를 팔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티 지도자와 갱단, 미국 무기 밀매조직의 밀월관계와 이에 눈감는 선진국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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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아닌, 인간이 착취하고 버린 땅

“아이티의 상황은 어떤 인간 집단의 불운에서 비롯된 결과도 아니고, 역사의 우발적 사건도 아니다. 아이티의 국가 파산은 역사적으로 구축된 결과물이다.”

아이티 현대사를 연구해 온 벨기에 루뱅대 법철학센터장 마크 마스할크와 ‘아이티 발전과 평화사무소’의 장클로드 장 소장은 경향신문에 보낸 기고문 ‘아이티에는 다국적군보다 반부패 법원이 필요하다’에서 이렇게 말했다(기고문은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아이티는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프랑스와 스페인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흑인 노예를 데려다 사탕수수와 커피 재배를 시키면서 대규모 이주가 시작됐다. 프랑스는 1697년 스페인의 식민지까지 양도받아 섬 전체를 프랑스 영토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전 세계 커피와 설탕의 절반이 생산되고, 대서양 노예무역의 3분의 1이 이뤄졌다.

프랑스혁명 2년 뒤인 1791년, 아이티에서도 혁명이 일어났다. 흑인 노예들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프랑스혁명 이념을 앞세워 봉기한 것이다. 아이티 노예들은 프랑스 원정군을 연달아 격파하고 1804년 독립을 선언했다. 최초의 해방노예로 구성된 공화국이 탄생했다.

노예무역을 해 오던 다른 강대국들은 아이티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노예 소유주에게 1억5000만프랑의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1825년에야 아이티의 독립을 인정했다. 헷갈리면 안 된다. 프랑스가 아이티에 식민지 배상금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티에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금액은 당시 아이티 정부의 연간 수입보다 10배나 많은 금액이었다.

아이티는 미국, 프랑스, 독일 은행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아 1947년까지 123년 동안 배상금을 지불했다. 에펠탑 건설에 자금을 지원한 프랑스 은행 CIC도 아이티로부터 배상금을 받아 글로벌 금융기관으로 성장했다. 아이티는 빚을 갚느라 빈곤국으로 전락해갔다.

미국은 1915년 아이티를 침공했다. 아이티가 도미니카공화국과 국경분쟁을 벌이자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실은 프랑스 힘이 약해진 틈을 타 아이티를 미국의 영향권에 두기 위한 목적이었다. 미국은 1934년까지 아이티를 군정통치하면서 아이티를 군부의 입김이 큰 나라로 만들었다.

그리고 2010년 1월12일. 규모 7.0의 초대형 지진이 포르토프랭스를 강타했다. 당시 아이티 인구 984만명 중 20만명이 사망하고 300만명이 이재민이 됐다. 최빈국 아이티는 재해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그해 10월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됐다. 유엔군이 콜레라를 옮겨오면서 아이티에서는 2016년 말까지 9500명이 사망했다. 옥스팜 직원들이 아이티 대지진 구호 현장에서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엔군 역시 이 기간 여성과 어린이를 상대로 성적 학대를 저지른 사실이 인권단체를 통해 밝혀졌다. 결국 유엔군은 2017년 아이티인의 분노 속에 쫓겨나듯 철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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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단에 무기는 누가 팔았을까

유엔군이 철수하면서 아이티 갱단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아이티 청년들은 먹고살 길을 찾아 갱단에 들어갔다. 케르뱅 빅토르 아이티주립대 교수는 “(아이티 갱단은) 사회 피라미드의 꼭대기 엘리트와 유착한 (권력형) 갱스터 집단, 사회 맨 밑바닥에서 샌들을 신고 뛰는 (생계형) 갱스터 집단이 층층으로 구성돼 있다”고 표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현재 아이티에는 200여개에 달하는 갱단이 활개를 치고 있으며, 이 중 포르토프랭스에서만 95개가 활동 중이다. 이 갱단들은 크게 FRG9과 G-Pep의 두 그룹으로 분열돼 있으며 각각 정치권과 연줄이 있다. 2021년 암살된 모이즈 대통령은 FRG9과 밀월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극심한 정치적 갈등을 경찰 대신 자신과 가까운 갱단에 의존해 해결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마스할크와 장은 모이즈 대통령이 아이티 경찰 대신 FRG9에게 탄약과 무기를 제공하고 활동을 지원했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코어그룹’을 결성해 아이티 문제에 개입해 온 유엔·미국·프랑스·독일·캐나다·브라질 등도 이를 묵인해왔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처럼 실제 국제사회 자문기구가 특정 갱단의 지원을 방조하고 묵인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갱단이 맹위를 떨칠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로부터 지속적으로 무기를 공급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FRG9 수장 세리지에는 지난해 10월에서야 유엔의 제재 대상이 됐다.

미 육군 출신 잰 크리치필드와 뉴욕시립대에서 카리브해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대니 쇼 역시 지난 7월 비영리단체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북미회의’(NACLA)에 보낸 글에 “아이티 문제는 곧 총기 문제”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 정부가 밀입국자의 유입을 막기 위해 카리브해에서 플로리다로 향하는 약 1770㎞에 걸친 해상 국경은 철통같이 차단하면서도, 아이티로 공급되는 막대한 양의 총기를 단속하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연간 50만정의 총기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2020년 말에는 미국으로 귀화한 아이티 출신 해병이 아이티에 무기와 방탄복을 밀반입하려다 체포된 적도 있다. 그는 미국에서 무기를 들여와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고 털어놨다.

크리치필드와 쇼는 “미국의 총기 위기가 아이티의 총기 위기”이며 미국이 자국 내 총기규제를 하지 않고 방조하는 것이 아이티 위기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아이티는 미국의 ‘총기 식민지’인 셈이다.

마스할크와 장은 더 나아가 국제사회가 ‘아이티 반부패 법원’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갱단 무기 공급과 관련한 부패 네트워크를 찾아내 처벌하고, 갱단을 후원하는 이들의 자산을 동결하는 한편 무기 및 탄약 밀매와 관련된 모든 인물을 직무에서 배제하는 등 관련 수출을 엄격히 감시해야 아이티의 끝없는 비극을 종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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