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노인일자리(1)

일하는 노인들···월 27만원보다 세상은 더 나아진다

2022.07.27 16:22 입력 2022.08.05 13:47 수정

김기홍씨(82)가 청주 솔밭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안전지킴이(노인일자리) 활동을  하고 있다. 2022.7.14 반기웅 기자

김기홍씨(82)가 청주 솔밭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안전지킴이(노인일자리) 활동을 하고 있다. 2022.7.14 반기웅 기자

청주 솔밭초등학교 등교길은 유난히 붐빈다. 재학생이 1800명이 넘는데다 인근에 아파트 대단지와 상업 시설까지 몰려 있어 교통량이 많다. 김기홍씨(82)는 5년째 솔밭초 교통 안전 지킴이를 하고 있다. 시니어클럽을 통해 찾은 노인일자리다. 11명이 조를 짜서 근무하는데, 조장인 김씨는 방학 기간 두 달을 제외하고 10개월간 주 5일 일한다. 업무 시간은 오전 7시30분부터지만 늘 1시간 쯤 먼저 와 청소를 한다. 7월14일 오전 8시 20분.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지시봉을 든 김씨가 횡단보도를 오가며 차량이 대들지 못하도록 연신 수신호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김씨를 보고 줄줄이 인사를 한다. 개중에는 알은 체를 하며 김씨 손을 마주잡는 아이들도 있다. 교문 옆에 들어선 차에서는 수시로 아이들이 내리는데, 한 아이가 힘이 모자라 문을 열지 못하자 김씨가 달려가 내려준다. 책가방을 메지 못해 애먹는 아이를 챙기는 일도 김씨 몫이다. 눈코 뜰 새 없지만 김씨는 일분 일초가 아쉽다. 전쟁 같은 등교가 끝나면 잠시 숨을 돌렸다가 어질러진 주변 정리를 한다. 김씨는 “일하는 3시간이 하루 중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매일 아침 나와줘서 든든해요”

김기홍씨(82)가 지난 1월 솔밭초 학생에게 받은 감사 편지를 읽고 있다. 반기웅 기자

김기홍씨(82)가 지난 1월 솔밭초 학생에게 받은 감사 편지를 읽고 있다. 반기웅 기자

김씨가 받는 급여는 한달 27만원이다. 조장을 맡고나서 29만원으로 올랐다. 벌이가 중하지만 일이 갖는 의미도 크다. 지난해 겨울에는 방학이 되기 전에 근무 계약 기간이 끝났다. 열흘간 안전지킴이 없이 등교할 아이들이 못내 걱정돼 김씨는 급여를 받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뜻이 같은 조원들도 동참했다.

일의 원동력은 아이들이다. 매일 만나다보니 정이 깊게 들었다. 등교길을 지켜줘서 고맙다며 손편지를 건네는 기특한 아이도 있다. 김씨는 “친손주보다 더 자주보는 아이들이어서 내게는 정말 각별하다”며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등교길을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차량 안내를 하면 짜증내던 학부모들도 이제 김씨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얼마 전에는 학부모 한분이 행운이 온다며 네잎 클로버 반지를 선물했다. 그 마음이 고마워 다시 아이들에게 건넸더니 “행운이 할아버지에게 갔으면 좋겠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할아버지가 매일 아침 나와줘서 든든하고 고마워요.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앞으로도 계속 봤으면 좋겠어요” 김씨에게 종종 편지를 건네는 김하윤(5학년·가명)양의 말이다.

김기홍씨(82)가 관할 구청에 민원을 넣어 설치한 안전 가드레일을 살펴보고 있다. 반기웅 기자

김기홍씨(82)가 관할 구청에 민원을 넣어 설치한 안전 가드레일을 살펴보고 있다. 반기웅 기자

김씨에게 이 일은 각별하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한다. 2년 전에는 관할 구청에 학교 앞 신호등 옆에 가드레일을 설치해달라는 민원 넣었다. 신호가 바뀌면 일찌감치 길을 건너려 뛰쳐나오는 아이들이 위험해 보여서다. 인도 경계 턱에 넘어지는 아이들이 많아 안전봉 설치도 요구했다. 결국 가드레일과 안전봉이 설치됐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덥기도 하고 추울 땐 힘들기도 하지만 일하고 나면 보람을 느껴요. ‘나도 사회의 일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건강이 허락할 때 까지 하고 싶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강숙자씨(74·왼쪽)와 김다혜자씨(78)가 지난 19일 서울 은평구 대주말경로당 아이스팩 재활용 작업장에서 재활용 아이스팩을 포장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강숙자씨(74·왼쪽)와 김다혜자씨(78)가 지난 19일 서울 은평구 대주말경로당 아이스팩 재활용 작업장에서 재활용 아이스팩을 포장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서울 은평구에 있는 백경순씨(72)의 일터도 오전이 분주하다. 사용한 아이스팩을 깨끗이 씻고 소독해 재포장하는 게 백씨의 일이다. 미세플라스틱 성분의 ‘젤형’ 아이스팩을 재활용해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취지로 만든 노인 일자리다. 작업장은 경로당이다. 백씨가 입구에서 아이스팩이 가득 담긴 15kg 쌀포대를 끌어오면 안영락씨(84)는 개수대에 물을 받아 친환경 세제를 푼다. 나선임씨(80)는 백 씨가 끌고 온 쌀포대를 함께 들고 개수대에 아이스팩을 쏟아낸다.

자외선 살균 소독기에서 소독이 끝난 아이스팩을 옮겨 담고 포장하는 일은 강숙자씨(74)와 김다혜자씨(78) 몫이다. 수거조와 배송조는 따로 있다. 수거조 2명이 경차를 몰고 은평구 내 아파트 단지 다섯 곳을 돌며 사용된 아이스팩을 모아 온다. 경로당 작업조가 선별·세척·소독을 하면 배송조 2명이 지역 소상공인에게 전달하는 구조다. 24명이 ‘공동주택 아이스팩 더쓰임 챌린지’ 멤버로 참여하는데 총 4개조가 각각 오전과 오후, 격일로 출근해 3시간씩 작업을 한다. 이날 오전 작업조는 5명 중 4명이 2년째 함께 일해온 ‘원팀’으로 손발이 척척 맞는다. 하루 3시간, 경로당 작업장에서 200개 가량의 아이스팩이 이들 손을 거쳐 재탄생한다.

7월19일. 포장 공정을 맡은 김다혜자씨는 살균 끝난 아이스팩 150여 개를 크기 별로 분류해 이삿짐 박스에 옮겨 담았다. 단순한 작업같지만 요령이 없으면 3시간을 버티기 어렵다. 여든 가까운 나이에 3시간 동안 한자리에 서서 허리를 반복해서 굽혔다 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들은 하루 3시간씩 매달 열흘 일을 하고 27만원을 받는다. 돈도 돈이지만 ‘내가 만든 작업물’이 사회에 쓰인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선임씨는 “내 힘으로 직접 재활용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보람있다”며 “노인들은 잘 써주지 않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백경순씨(72)가 19일 서울 은평구 대주말경로당 아이스팩 재활용 작업장에서 지역 내 버려졌다 수거된 아이스팩을 세척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백경순씨(72)가 19일 서울 은평구 대주말경로당 아이스팩 재활용 작업장에서 지역 내 버려졌다 수거된 아이스팩을 세척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재활용 아이스팩은 소상공인에게도 보탬이 된다. 은평구에서 떡볶이 간편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한지은씨(38)는 사업 수혜자로 선정돼 매달 200여 개의 재활용 아이스팩을 무료로 받는다. 한씨는 “아이스팩은 항상 부족한데 버려지는 아이스팩을 받게 되니 도움이 많이 된다”며 “재활용 팩을 쓰니까 받는 입장에서도 죄책감이 덜해 좋아하는 손님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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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일자리는 노일일자리 중 공공형(공익활동)에 속한다. 프로그램이 달라도 공공형 노인일자리의 월평균 활동시간(30시간)과 급여(27만원) 수준은 동일하다. 급여는 높지 않지만 효능감이 높아 만족도기 높은 편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를 대상으로 수행한 만족도 조사(한국노인인력개발원, 2020)에서 노인 77.3%가 “스스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답했다. 일자리 수요가 많아 해마다 일자리는 늘어난다. 2019년 51만7000개였던 공공형 일자리 사업 목표량은 올해 60만8000개로 증가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공공형 중심의 노인일자리를 시장형으로 재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공형 일자리를 수익을 내는 민간형 사업으로 바꾸겠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노인일자리사업은 단순 예산낭비 사업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다. 하지만 공공형 노인일자리 사업이 만들어내는 공익적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층은 젊은 층에 비해 육체적으로 제한은 있지만 그것이 이들이 반드시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며 “지역사회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기여가 분명 있는데 단기적인 비용 관점에서 그 기회를 차단하면 오히려 이들을 고립시켜 더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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