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뜻의 “너도 내 나이 돼 봐”

2019.05.25 06:00 입력 2019.05.25 06:02 수정
김혼비 작가

거꾸로 인간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김혼비의 ‘혼비백서’

2018년 ‘여자들이 사회에서 축구한 얘기(<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로 운동(movement)하는 여자 붐에 일조한 김혼비 작가가 소소(笑笑)하고 유쾌한 일상 에세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축구를 하러 가려면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한다. 집 근처에서 나를 싣고 달리는 A버스와 축구장 근처에서 나를 내려주는 B버스의 관계에 관해 나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그 둘은 도로 한복판에서 접촉사고가 난 이후 앙금이 깊게 쌓인 철천지원수이거나, 주차장 한쪽에서 세기의 사랑을 나누다가 마음 아프게 헤어진 연인이거나, 버스에 입혀놓은 색을 싹 벗기면 흠집들마저도 똑같은 곳에 나있는 도플갱어이거나.

뭐가 됐든 절대 한 공간에서 마주쳐서는 안되는 관계인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일 년 넘게 번번이 A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B버스가 꽁지를 빼며 부리나케 떠나버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것도 한 번 놓치면 20분을 기다려야 하는 버스가 말이다. 집에서 일찍 나온다고 나오는데도 버스들의 이런 복잡한 개인사 때문에 늘 훈련시간 1, 2분 전에 겨우 딱 맞춰서야 도착한다. 나도 좀 미리 나가서 몸도 풀고 ‘거꾸로 인간들’도 만나고 싶은데 말이다.

‘반올림하면 쉰’이 되는 언니 트리오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그들이 움직였다
움직여서 무엇을 했냐면…
허공에서 그것도 상체를 들어 올려 이마가 무릎께에 닿기 직전까지
윗몸일으키기를 했다…스무개씩 3세트를

거꾸로 인간들을 처음 만난 건 여자축구팀에 입단하고 석 달쯤 지났을 때였다. 지금과는 다른 동네에 살던 그때도 지금처럼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으므로 눈앞에서 B버스를 놓칠 것을 계산에 넣어 여유 있게 집을 나섰기에 경유하는 정류장에서 B버스를 바로 갈아타는 행운이라도 누리면(당시 집에서부터 타고 가는 C버스와 B버스의 관계는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았다) 축구장에 턱없이 이른 시간에 다다르곤 했다. 그래서 그날도 평소보다 30~40분 빠른 시각에 축구장에 도착했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한참 동안 혼자 있게 될 줄 알았는데, 웬걸. 그 이른 아침에도 축구장 주변은 부산스러울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낯익은 얼굴들이 축구장 바깥에 설치된 기구들을 이용해서 여기저기 흩어져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늘 다들 이렇게 미리 와서 개인운동을 하고 있던 거였구나. 그들의 바지런함에 새삼 혀를 내두르는데 어디선가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혼비다!”

그 소리에 운동에 여념이 없었던 팀원들이 일제히 내 쪽을 돌아봤다. “웬일이야, 오늘은 일찍 왔네!” “잘됐다, 너도 같이 몸 풀자!”라고 말을 건네며 반겨주는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정작 첫 목소리의 주인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난 소리지? 두리번거리며 축구장 주변을 빠르게 훑다가 그때 발견했다. 저만치에 있는 거꾸로 인간들을. 멀리서도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그들이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 팀의 갓 쉰이 된 언니, 곧 쉰이 될 언니, 반올림하면 쉰이 되는 언니로 구성된 트리오가 구석에 있는 철봉에 무릎을 걸친 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검은색 추리닝을 입고 나란히 그러고 있으니 흡사 박쥐인간 세 마리 같았다.

예전에 어디선가(아마도 회사 앞 식당에서 하루 종일 틀고 있는 종편 건강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거꾸로 매달리는 게 혈액순환과 척추 스트레칭, 몸속 장기 건강에 좋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피트니스센터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일명 ‘거꾸리’라고 부르는 운동기구에 몸을 붙이고 일정 시간 거꾸로 매달리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숨차게 뛰거나, 타는 듯한 근육통을 견디거나, 비 오듯 땀을 쏟지 않고, 그저 기구의 매트 위에 누운 다음 방향을 뒤집어서 가만히 매달려 있기만 해도 몸에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간편성이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말하자면 ‘누워서 약 먹기’ 같은 것 아닌가) 그럼에도 그 간편성이 의심스러워서 자주 이용하게 되지는 않는다(실제로 안압을 높인다거나 오히려 척추에 무리를 줄 수도 있다고 하니 조심하자).

하지만 언니들이 매달려 있었던 건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내가 잠시 시류에 편승해서 무심코 오해해버린 것이다. 나도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그들이 움직였다. 움직여서 무엇을 했냐면……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상체를 들어 올려 이마가 무릎께에 닿기 직전까지 윗몸일으키기를 했다……스무 개씩. 3세트를.

그러면 그렇지. 저들이 어떤 여자들인데 고분고분 ‘누워서 약 먹기’ 같은 것을 할 리가 없지. 그래도 그렇지. 허공에서 윗몸일으키기 60개라니. 그것도 저렇게 절도 있는 동작에 빠른 속도로. 그들이 60개를 할 시간에 나는 열 개나 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열 개마저도 침대에 누워서 할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철봉이라니. 저기에 저렇게 다리 힘만으로 단단히 매달려 있을 자신도 없는데 윗몸일으키기는 무슨. 단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놀라움에 발이 묶여 그 자리에 붙박인 채로 그들은 ‘가벼운 몸풀기 운동’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그것을 끝까지 지켜봤다. 그들이 이제 박쥐인간이 아니라 배트우먼들처럼 보였다. 60개를 가뿐히 마치고 땅 위로 내려와 숨을 고르는 것도 왜 그리 멋지던지. 그때까지도 넋을 잃고 보고 있는 나에게 언니 중 한 명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우 야, 놀랄 것 없어. 너도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나도 네 나이 때는 딱 너 같았는데, 너도 내 나이 돼봐. 그럼 이렇게 할 수 있다니까?”

오, 그렇구나,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언니가 너무 천연덕스럽게 말해서 그 말의 이상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갈 뻔했다. 아니, 대체 누가 “너도 내 나이 돼봐”를 그런 의미로 써요. 보통 50대가 30대에게 그런 말을 할 때는 ‘나도 네 나이 때는 너 같았는데 = 너처럼 쌩쌩했는데’ ‘너도 내 나이 돼봐 = 너도 체력 떨어지는 게 뭔지 알게 될 거야’ 정도의 의미로 쓰지 않나요? 그 말을 한 언니도, 옆에서 같이 숨을 고르는 언니들도 이 상황이 뭐가 이상한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철저히 거꾸로 인간들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이 비슷한 말들을 자주 듣게 된다. 후반 시작할 무렵부터 벌써 힘이 부쳐 내가 공을 차는 게 아니라 공에 내가 차이는 것에 가깝게 해롱대다가 결국 교체되어 밖으로 나와 있으면, 전·후반 풀타임을 거뜬히 뛰고 나온 40~50대 언니들이 “나도 네 나이 때는 전반 겨우 뛰었어. 너도 내 나이쯤에는 후반까지 버틸 수 있을 거야!”라고 위로를 한다든지, 며칠 전 다 같이 받은 특훈의 결과로 나는 다리에 알이 잔뜩 박여 다리를 모으지도 못하고 후들대며 걷고 있는데, 그 옆으로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며 언니들이 “네가 아직 하체 단련이 덜 돼서 그래. 나도 너만 할 때는 그랬어. 너도 웨이트 몇 년만 더해서 내 나이쯤 되면 다음 날 조금 쑤시다 말 거야”라고 격려를 한다든지. 이쯤 되면 나도 이 거꾸로 인간들에게 동화되어서 축구장 밖 세상에서 ‘나이 때문에 글렀어’의 의미로 쓰이는 ‘내 나이 돼봐’에 조금씩 적응이 안될 지경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언젠가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나의 신체적 롤모델이 많게는 나보다 10년 이상 더 나이가 많은 축구팀 언니들이 되었다. 한 해 한 해 생물학적 나이는 많아져가고 여러 노화들이 진행되고 기억력이라든지 창의력이라든지 이미 예전만 못한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가지만, 롤모델들을 따라 복근운동을 하고 축구장을 누비며 공을 차다보니, 체력만큼은 작은 눈금을 타고 서서히 올라갔다. 크게 아팠던 탓에 체력이 한꺼번에 깎여나갔던 30대 초반에 비해서, 30대 중반에 비해서, 마흔을 곧 앞둔 지금의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었는지. 그럼에도 아직까지 40~50대 언니들을 따라가려면 얼마나 멀었는지. 다가올 나의 40대에는 또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이 열릴지.

철봉에 매달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되었다. 축구공을 따라 뛰다보면 때로 시간은 거꾸로도 흘렀다. 거꾸로 인간들 틈에 있다 보니 나의 감각도 뒤집혀서인지, 때로는 체력과 관련 없는 다른 일에서도 ‘나이랑 상관없이 해볼 수 있겠는데?’라는 배짱이 몸속 어딘가에 근육과 함께 슬그머니 붙어있는 걸 발견할 때도 있다. 철봉에 매달려 윗몸일으키기를 이제는 5세트씩 100개를 하는 언니들 위로 10년 후의 나를 겹쳐보며 커다란 힘을 얻을 때도 있다. 그러니까요. 언니들 말이 맞았네요. 그 나이가 되어가니 조금 알겠네요.

어제 퇴근하고 집에 와서부터 이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새삼 열정이 솟구쳐서 오늘은 큰마음 먹고(주말 아침잠 1분이 직장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달라) 평소보다 30분 더 일찍 나가서(여전히 A버스와 B버스는 훼방을 놓았지만) 오랜만에 언니들과 함께 몸을 풀었다. 여전히 이른 아침에도 부산스러울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는 축구장에서. 조금 일찍 와서 같이 몸풀기 운동하면 이렇게 좋은 것을! 그것을, 그놈의 버스가 도무지 도와주질 않는다고 투덜거렸더니 언니들이 이런 어이없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단칼에 결론을 내려주었다.

“야, 그걸 뭘 버스를 기다려. 그냥 걸어와!”

저, 저기요. 그렇게 되면 평소보다 집에서 20분 더 빨리 나와야 하는데 그럴 셈이었으면 이미 한 타임 빠른 B버스를 타고 일찍 오지 않았겠습니까(주말 아침잠 1분이 직장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달라). 게다가 정류장부터 축구장까지는 걸으면 40분 거리다. 평소라면 40분 걷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직도 전·후반 풀타임을 다 소화해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축구 경기 직전에는 최대한 체력을 아껴두어야 하기 때문에 차마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다. 경기 시작 전에 축구장 한 바퀴 더 뛰고 안 뛰고가 실전 체력에 영향을 미치는, 아직도 갈 길이 먼 풋내기 축구인인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또 다른 구체적인 미래의 목표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도 언니들처럼 전·후반 풀타임을 다 뛰고도 체력이 남는 사람이 되어 이 정도쯤은 거뜬히 걸어 다닐 것이다. 꼭 그럴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이야기해야지. “봐, 바로 앞문장에 써 있잖아. 내 나이 되면 너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때가 되면 B버스에도 반드시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다시는 너를 기다리나 봐라!”

▶필자 김혼비

[김혼비의 혼비백서](1)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뜻의 “너도 내 나이 돼 봐”


퇴근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출근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직장인이자 틈틈이 이런저런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이다. 축구와 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2018년에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2019년에 <아무튼 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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