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근대문화유산…소유주들 심의직전 철거 잇달아

2007.06.17 18:46

박목월 선생 생가와 건국준비위원회 건물, 스카라극장 등 일제강점기와 해방 초기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근대건축물이 파괴되고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경우 재산권 피해를 우려한 소유주들이 철거를 선택하면서 근대문화 유산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철거 허가제의 도입과 혜택은 적고 규제는 많은 법령의 정비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문화재 등록 심의를 앞두고 소유주에 의해 철거된 경기도 시흥시 소래염전의 소금창고. <시흥 시민뉴스 제공>

문화재 등록 심의를 앞두고 소유주에 의해 철거된 경기도 시흥시 소래염전의 소금창고. <시흥 시민뉴스 제공>

이달초 경기 시흥시 소래염전의 소금창고 수십개가 토지소유주에 의해 일방적으로 철거됐다. 문화재청의 문화재 등록심의를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1930년대 조성된 소래염전 소금창고는 염전의 옛 경관을 잘 간직하고 있어 지역주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시흥시는 2010년까지 7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염전 일대를 시흥갯골생태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곳에 골프장 건립을 추진하던 소유 회사측은 문화재 지정에 앞서 소금창고를 철거해버린 것이다.

문화재전문위원인 주강현 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은 “소금창고는 해방전 집단적 군락을 이루는 유일한 곳으로 문화적 가치가 크다”며 “이를 파괴한 것은 근대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만행”이라고 비판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을 앞둔 근대 건축물이 파괴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3년에는 최남선 고택과 건국준비위원회 건물 등이 헐렸으며 박목월 생가와 한국에서 첫 증권거래가 이뤄진 명동의 대한증권거래소 등도 차례로 철거됐다. 모두 문화재로 등록예고되거나 등록문화재가 된지 얼마 안돼서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제도가 철거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등록문화재는 보존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등록’해 관리하는 제도로 국가문화재나 지방문화재로 바로 지정할 경우 발생하는 재산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무분별한 철거를 막겠다는 취지로 2001년 도입됐다. 문제는 혜택은 적고 규제는 많다는 점이다. 등록문화재가 되면 재산세 50% 감면과 건물 신축시 건폐율·용적률 완화 등이 혜택의 전부다. 경제적 이해관계만 봤을 때 굳이 보존할 이유가 없어 재개발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 조사에 따르면 2001년 근대문화재 등록제도 도입 이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예고된 후 지정 취소된 사례가 올해 4월 현재 19건이며 철거된 근대문화유산은 6건이었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김성범 과장은 “등록문화재라도 외관이 크게 바뀌지 않는 이상 수리를 해도 관청의 간섭이 없는데 제도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다”며 “앞으로 등록문화재도 등급화해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중에 있다”고 밝혔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철거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꿔 무분별한 철거를 막아야 한다”며 “문화재 지정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좀더 많은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준일·김다슬기자 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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