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가장한 권위주의와 페미니즘의 충돌…괴로워도 뒤로 가진 않겠다

2018.01.05 17:24 입력 2018.01.05 17:26 수정
최현희 | 초등교사

KBS 드라마 <학교 2013>에서 남학생이 여교사에게 대드는 장면. 혐오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혐오적인 또래문화를 강력하게 형성하고 있는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권력이 성별권력에 의해 전복되는 현상까지 일어난다.

KBS 드라마 <학교 2013>에서 남학생이 여교사에게 대드는 장면. 혐오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혐오적인 또래문화를 강력하게 형성하고 있는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권력이 성별권력에 의해 전복되는 현상까지 일어난다.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논한 인터뷰 영상으로 인식공격과 비방을 당한 지 다섯 달이 지나간다. 힘든 시간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전국의 많은 페미니스트 교사들과 연결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여러 지역과 학교의 다양한 조건 속에서도 페미니스트 교사들은 대체로 비슷한 고통을 토로했다. 이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고통을 언어로 정리하고, 각자 어떻게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지 공유하는 일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며.

첫 번째 고통은 젠더 무감성의 학교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이다. 보수화된 학교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연대할 동료를 찾기도 쉽지 않다. 때로는 내가 나를 의심하며 분열되기도 한다. 여성이 겪는 차별을 ‘사소한’ 문제로 일축하는 사회에서, 내가 느끼는 ‘소소한’ 차별과 불쾌감은 너무 예민해서일지 모른다며 스스로 검열하고 위축될 때도 많다. 비민주적이고 연령주의가 팽배한 학교조직도 넘어야 할 큰 벽이다. 용기를 내 문제제기를 하면 예의 없고 까칠하다는 평가를 감내해야 한다.

이는 신규 교사나 저경력 교사들이 특히 극복하기 힘든 어려움이다. 내 경험으로는 대체로 30대 후반 정도는 되어야 어느 정도의 발언 공간이 생긴다. 공적인 자리에서 담론을 이끌 만큼의 권력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의견을 말했을 때 ‘싸가지없다’는 말은 듣지 않을 나이인 셈이다. 그러나 같은 나이에도 비혼과 기혼 사이 차별의 장벽이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교사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속에서 결핍되고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존재로 취급된다. 결혼을 해도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는 사적인 질문이 이어지고, 아이를 한 명 낳더라도 질문은 계속된다. 둘째까지 낳아서 4인 가족 ‘정상성’을 획득했을 때 질문은 멈춘다. 이처럼 연령주의와 이성애를 전제로 한 정상가족 신화가 굳건한 학교에서 비혼이거나 젊은 연령의 교사는 발언권이 삭제되거나 축소된다. 내가 첫 번째 고통을 극복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된 요소가 나이와 결혼 여부라는 사실이 슬프고 죄송하다. (물론 계속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는 질문에 시달리는 중이긴 하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로서의 전략도 있었다. 대체로 즐겁고 유쾌하게 나의 교직 페이스를 유지하되, 물러설 수 없는 몇 가지 테제에 관해서는 일관된 ‘까칠함’을 보여온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학생들을 ‘여자’ ‘남자’로 가르는 동료의 성편견적인 발언이나, 학부모나 보호자를 ‘엄마’로 호명하는 학교문화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했다. 특히 ‘엄마’ 호칭은 학교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돌봄 노동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매우 문제적인 언어라고 생각했다. 어떤 교사들은 너무 민감한 거라고, 어차피 현실이 그러하니 그런 말이 자연스러운 거 아니냐며 불편해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점점 엄마라는 말보다는 보호자나 학부모라는 명칭이 자리를 잡아가는 변화가 감지되었다. 당장에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잘못된 학교 관행을 다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나의 용기와 노력이 작은 변화를 이끄는 경험을 하는 것은, 어쩌면 학교 조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지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두 번째로, 페미니스트 교사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교실 일상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을 매일 마주하는 것이다. 이는 초등보다는 중등의 교사들에게 보다 큰 상처와 고통일 거라고 예상된다. 초등학생은 아직 교사의 인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기로, 교사가 학생 개개인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다.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도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깊이 바라보며 생활교육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교과 수업을 통해 분절적으로 만난다. 교사의 인정보다는 또래집단의 소속 욕구가 더 중요한 시기인 데다, 혐오 콘텐츠의 지속적 노출 속에 혐오적인 또래문화를 강력하게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더해 젊은 여교사의 경우, 교사권력이 성별권력에 의해 전복되는 현상까지 흔히 일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있어 교육자로서의 전문성과 자질만을 논할 뿐 젠더의 문제를 삭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학교 현실에서, 여교사는 여교사이기에 겪는 경험과 소외, 폭력조차 혼자 감당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의 혐오발언을 보거나 들을 때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속으로 되뇌는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이 보고 듣고 살아가는 현실에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다면, 교실풍경이 그러한 폭력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폭력을 배운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사실 학교는 사회에서 습득한 폭력성을 실험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잘못된 언행을 방치한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다만 섣불리 비난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학생들이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로 나의 인식을 환기시킨다는 뜻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교사의 중요한 전문가적 자질인데,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전문가로서의 의지와 지성의 총합을 말한다. 내가 주고 싶은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이의 발달단계에서 필요한 사랑을 판단하는 지성과, 학생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함부로 비난하고 평가하지 않으려는 의지다. (초등학교 학생에 한해서) 아이들은 자기를 지성과 의지로 사랑하는 교사를 대개 알아본다. 그리고 그 교사가 자신의 혐오발언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생각해볼 기회를 주면 웬만한 어른보다 훌륭한 통찰을 해낸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대로 그 순간의 과정을 존중해준다. 가끔은 논리적으로 학생의 혐오적 주장을 꺾으려고 논쟁을 한 적도 있었는데 늘 돌아서면 후회가 되었다. 적어도 초등단계에서는 논리나 언어보다는 삶으로 가르치고 보여주는 것이 더 큰 힘을 갖는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과 실천이 다르면 단박에 눈치챈다. 그러니 물러서는 것도 때로 중요한 실천이다. 내가 1년 안에 아이를 바꾸고 잘못된 행동을 뿌리째 뽑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교육적으로도 옳지 않은 태도이다. 성장의 과정을 돕고 최선을 다해 닮고 싶은 좋은 어른의 모습으로 곁에 있어줄 뿐이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스트 교사들은 누구나 자신의 페미니즘적 인식과 직업적 실천의 불일치에서 오는 자괴감을 겪는다. 페미니즘을 통해 관계의 권력을 정밀하게 성찰하는 렌즈를 얻었으나, 그 렌즈를 통해 교사로서의 권위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계속해서 자각해야 하는 괴로움. 개인적으로 나는 이 문제에서 가장 깊은 고통을 느낀다.

페미니즘을 만나기 전에는 나 자신에 대해 늘 좋은 교사라고 자부했다. 만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소중히 아꼈고, 아이들도 나를 좋아했으며, 담임으로 나를 경험한 대부분의 학부모들로부터는 늘 아낌 없는 지지를 받았으니까. 그러나 페미니스트가 된 후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좋은 교사 노릇을 모두 낯설고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교사상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교사권력의 단단한 바탕 위에 있음을 절절히 깨달은 것이다. 아이들에게 선의를 갖고 친절히 잘해주는 것은 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고 존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실천이었다.

그동안 내가 지향해온 좋은 교사의 모습에서 온건한 가부장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아내와 자녀에게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지만 가족을 ‘보호’한다는 우월적 위치의 가부장의식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폭력적이고 불성실한 가부장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온건한 가부장 역시 아내와 딸을 억압하는 가부장제도에 복무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서로 다를 게 없으니, 교사의 권위의식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내가 아이들에게 온화한 권력자인지 폭력적인 권력자인지의 차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을 교육의 실천 철학으로 정하고 노력하자, 역설적으로 학교가 얼마나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을 방해하는 공간인지를 깨달았다. 관료적인 학교는 교사를 끊임없이 바쁘게 몰아세우며 아이들을 하나의 집단, 전체로서 통솔하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도록 채근한다. 좁은 교실에서 30여명의 아이들과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순간 교육이 아닌 관리와 통제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았다.

교사의 교육적 열정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학교시스템에서, 특히나 과중한 업무로 교사가 교육에 전념하는 일조차 제대로 허락되지 않는 학교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동시에 만나는 교사 일인이 아이들과 동등하고 수평적으로 교류하고 교감하며 교육을 해나간다는 게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일일까. 카리스마적인 교실 장악력을 내려놓고 다인수학급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열악한 교육 여건에서 페미니스트 교사는 지향점과 현실 사이에서 심각한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매일매일 타협하는 한편, 매일매일 내가 타협한 부분에 대해 자기 성찰을 하고 괴로움을 느낀다.

페미니스트 교사가 이렇게 괴로운 건데, 도대체 왜 굳이 페미니스트 교사임을 포기하지 않을까. 나는 이 질문을 페미니스트 교사를 만날 때마다 던지곤 한다. 돌아오는 대답은 놀랍게도 비슷하다. “이걸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나는 여기에 한마디를 더 보태고 싶다. “괴롭지만 페미니즘이 나를 교사로서 성장시키니까요.”

다음 글에서는 페미니스트 교사로 살아가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벌써부터 할 말이 많다.

필자 최현희

13년차 초등교사. 좋은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던 중에 페미니즘을 만나버렸다.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에는 스스로 꽤 좋은 교사라고 믿었으나,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로 다시 바라본 교실과 학교는 좋은 교사에 대한 고민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했다. 페미니즘으로 직업과 일상이 고단해졌지만 고민하고 실천하는 삶이 좋다.

[최현희 교사의 학교에 페미니즘을] 교권 가장한 권위주의와 페미니즘의 충돌…괴로워도 뒤로 가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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