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세 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용머리해안, 산방산보다 오래된 화산체

2018.04.19 20:35 입력 2018.04.19 20:43 수정
문경수 과학 탐험가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용머리해안 너머로 산방산이 보인다. 용머리해안은 120만년 전 수성화산활동으로 형성됐으며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다. 80만년 전에 생긴 산방산도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면 한라산 백록담보다 먼저 생겼다.

용머리해안 너머로 산방산이 보인다. 용머리해안은 120만년 전 수성화산활동으로 형성됐으며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다. 80만년 전에 생긴 산방산도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면 한라산 백록담보다 먼저 생겼다.

“제주종합경기장 시계탑에서 뵙겠습니다.”

세계유산본부 전용문 박사에게 연락을 받고 다시 제주를 찾았다. 제주에서 활동 중인 관광통역사분들과 함께 제주 서쪽의 주요 지질명소를 답사하기로 했다. 오전에는 수월봉을, 오후에는 산방산 일대와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를 답사할 계획이다. 이른 아침 제주에 도착해 공항에서 멀지 않은 제주종합경기장으로 향했다. 관광통역사는 제주를 찾는 외국인 여행객들이 만나는 첫 번째 사람이다. 지질공원해설사가 있지만 외국인에게 제주의 자연을 소개하는 알림이 역할을 한다. 답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분들의 해설 언어를 물어 보니 영어, 중국어, 일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까지 다양했다. 한류 영향으로 중국, 일본인 여행객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인도네시아인 여행객까지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일과 관련된 답사기 때문에 지원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연구결과에 따라 변하는 과학적 사실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앞서 보였다.

45인승 버스에 참석자가 모이자 버스가 수월봉을 향해 떠났다. 수월봉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전 박사는 짧은 강연을 이어갔다. 수월봉으로 향하며 제주의 자연이 갖고 있는 차별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제주의 주요 관광지는 남쪽에 있는 중문과 서귀포 일대에 집중돼 있다. 호텔과 편의시설이 잘 구축된 것도 이유지만 40만년 전 일어난 단층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층 때문에 생긴 솟은 지형으로 해안절벽이 생겼고 용천수와 맞나는 지점에는 물이 흘러 폭포가 만들어졌다. 정방폭포와 천제연폭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고 보니 제주시가 있는 동쪽에서는 폭포나 해안절벽을 보지 못했다.

또 하나 제주에서 논농사가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토양 때문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설명은 명쾌했다. 아직 화산암의 풍화가 덜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벼농사가 가능한 진흙 같은 토양은 모래보다 더 풍화된 상태다. 육지의 경우 암석에서 토양으로 풍화될 만큼 시간이 충분했지만, 제주는 진흙으로 풍화되기까지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이 흐르면 제주에서도 논농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도 짬을 내 질문을 했다. 만장굴에 대한 신문기사를 쓰며 궁금했던 용천동굴의 형성 과정에 대해 물었다. 제주도 해안 군데군데 위치한 흰 모래 해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 우리가 자주 찾는 협재, 함덕, 월정리에 있는 해수욕장의 흰 모래는 제주도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했다. 흰 모래 성분의 90%는 조개껍데기나 해양생물의 골격 성분이다. 중국의 양쯔강, 황허강을 통해 흘러나온 해양퇴적물이 태풍 때 밀려와 제주도 해안에 쌓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특정 해변에만 흰 모래가 존재할까. 원인은 해류 때문이다. 주변 지형에 따라 해류가 바뀌면서 특정 지역에만 흰 모래 해변이 만들어졌다. 전 박사가 제주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한 자료집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귀포에 있는 황우지 해변은 모래가 많은 해변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15년 전 화순항에 길이 1㎞의 방파제를 만들면서 조류의 흐름이 바뀌어 모래가 유실됐고, 최근엔 묻혀 있던 암반까지 드러난 상황이다. 영어로 관광통역을 한다는 통역사가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여행객들로부터 제주도가 화산섬인데 왜 일본 같은 온천이 없냐는 질문을 받아 설명하기 곤란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지질학적으로 화산활동이 미미해 대부분의 온천이 비화산성이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내 온천은 마그마가 깊이 있어 지하수가 마그마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온천수가 아닌 건 아니다. 마그마로 데워진 물은 아니지만 지열로 데워진 온천수다. 땅속으로 100m 내려갈 때마다 1도가 상승하는 원리로 지하수가 데워졌다. 이렇듯 당연하게 여겼던 제주의 자연현상에는 나름의 이유가 존재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일정이라 토막잠을 자려 했다가 정신없이 노트에 받아 적었다.

설명을 듣는 사이 수월봉에 도착했다. 모처럼 수월봉 지질공원해설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궂은 날씨임에도 탐방객에게 열정적으로 해설을 하고 있었다. 마침 한 그룹의 외국인 관광객이 지나갔고 선두에서 영어 관광통역사가 해설하는 모습이 보였다. 답사에 참가한 관광통역사들이 동료를 보며 반가워했다.

■한라산 정상을 뽑아 던져 만든 산방산 ?

사계리 해안에서 바라본 산방산. 젓가락 모양의 주상절리가 산방산을 에워싸고 있다.

사계리 해안에서 바라본 산방산. 젓가락 모양의 주상절리가 산방산을 에워싸고 있다.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해안도로나 평화로를 타고 중문으로 가다보면 웅장한 산방산이 이방인을 반겨준다. 제주 탄생설화에는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정상을 뽑아 던진 게 산방산이 됐다고 한다. 한낱 신화로 여길 수도 있지만 백록담 분화구와 산방산의 둘레가 비슷하고 암석 성분이 비슷해 보여 재미난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지질학적 시간으로 보면 산방산이 백록담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졌다. 20여년 전 제주를 처음 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풍경 중 하나가 산방산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경사진 도로를 올라 산방산 삼거리에 도착해 마주한 산방산의 위엄이 대단했다. 당시만 해도 주차장에는 차량 몇 대가 전부였다. 매점은 한산했고 오가는 사람은 적었다. 멀찌감치 보인 하멜상선전시관에 대한 기억이 전부였다. 용머리해안은 안중에도 없었다. 당시 그 옆으로 난 사계해안에서 캠핑을 했다. 해변 어디쯤 텐트를 쳤던 기억과 더위를 식히려 바다에 들어갔던 기억이 났다. 옛 추억을 되새기는 사이 버스는 용머리해안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방산을 답사하는데 여기로 온 이유가 뭐죠?” “여기서 봐야 산방산의 구조를 가장 잘 볼 수 있습니다.”

주차장을 지나 매표소 앞에 이르자 장애물 없이 산방산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다. 무엇보다 젓가락 모양의 주상절리가 산방산을 에워싸고 있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 주상절리가 제주도 중문해안에만 있는 줄 알았다. 용암이 물을 만나면서 차갑게 식는 과정에서 수축돼 만들어진 게 주상절리인 줄 알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전 박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큰 오류 중 하나가 주상절리가 만들어지는 원리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내판이나 인터넷 정보를 보면 차갑게 식는 과정에서 수축된다는 설명과 함께 바다 근처 해안절벽에 있는 주상절리 사진을 보여준다.

이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용암이 물을 만나서 식는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이 바로 오류다.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 들면서 수직으로 쪼개짐이 발생해 만들어진다. 여기서 용암이 식는 이유는 공기와 접촉하기 때문이다. 만약 용암이 물과 만났다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베개 용암을 만들었을 것이다. 해수면보다 훨씬 높이 위치한 산방산에 큰 규모의 주상절리가 만들어진 사실만 보더라도 주상절리의 형성은 물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주상절리는 주로 5~6각형의 기둥으로 만들어지지만 사각형이나 칠각형의 주상절리도 있다. 설명을 듣고 많은 관광통역사들의 표정에 희비가 엇갈렸다. 그간 수없이 용암이 물을 만나 식으면서 주상절리가 생겼다고 해설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눈앞에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산과 주상절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산방산은 80만년 전에 만들어진 화산체로 용머리해안과 더불어 제주도 지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화산체다. 산방산은 분출 당시 용암 성분이 점성이 높은 조면암질 용암이라 멀리 흘러가지 못하고 위로 솟은 형태로 굳어졌다. 굳어진 모양이 종을 닮았다고 해서 종상화산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은 주상절리가 길게 늘어진 수직구조 형태지만 원래는 부채꼴 모양이었다. 오랜 풍화작용을 거치며 휘어진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거대한 수직기둥만 남았다.

산방산을 뒤로하고 용머리해안으로 향했다. 용머리해안은 처음이다.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머리해안은 120만년 전 수성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체로 제주도에 있는 화산체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높은 지대에서 용머리 상부를 보면 산방산 주변의 화산재층이 용머리 지층을 덮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용머리해안이 산방산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용머리화산체는 겉으로 보면 길게 늘어진 단일 화산체처럼 보이지만 3개의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졌다. 3개의 수성화산은 시간차를 두고 가운데, 안쪽, 바깥쪽 순서대로 폭발했다.

화산학에서 수성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체에는 응회구와 응회환이 있다고 한다. 마그마가 폭발할 때 만나는 물의 양에 따라 화산체의 형태가 달라진다. 용머리해안은 응회환에 해당한다. 마그마와 물의 양이 비슷하면 화구에서 나온 화산분출물이 뜨거운 화산가스나 수증기와 섞여 수평으로 퍼져나간다. 이때 물기가 적어 넓고 완만한 언덕을 이루는 화산체를 응회환이라고 한다. 반대로 마그마가 만난 물의 양이 많으면 화산분출물이 축축하게 젖은 채로 튀어올랐다가 떨어져 쌓인다. 이때 물기가 많아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이루는 화산체를 응회구라고 하며 성산일출봉이 대표적인 응회구다. 다 비슷해 보이는 화산체지만 나름의 형성 기원이 있다. 용머리해안은 화산체가 무너져 분화구가 막히자 화구가 이동하면서 폭발해 3개의 화산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해안가를 따라 드러난 화산재 지층은 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남은 분화구의 가장자리다. 수월봉에서 봤던 화산쇄설층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수월봉보다 더 오랜 기간 풍화를 거쳐서인지 단단해 보였다.

▶필자 문경수

[전문가의 세계 - 문경수의 탐라도 탐험] (9) 세 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용머리해안, 산방산보다 오래된 화산체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일한 과학탐험가다. 지난 10여년간 과학을 주제로 서호주·몽골·알래스카 등 지질학적 명소들을 탐험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우주항공국(NASA) 우주생물학그룹과 과학탐사(2010년)를 했고, <효리네민박>(JTBC), <어쩌다 어른>(tvN), <세계테마기행>(EBS)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문경수의 제주과학탐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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