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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마트 매장 판촉사원 3800명 '불법파견' 의혹

2018.10.10 21:02 입력 2018.10.10 21:04 수정

10일 오후 서울시내 한 롯데하이마트 매장의 노트북 컴퓨터 코너. 주황색 끈에 하이마트 로고가 선명히 찍힌 명찰을 목에 건 직원에게 사무용 제품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해봤다. 직원은 대만 기업 에이수스 제품과 삼성 제품을 추천하며 가격 조건을 안내했다. 다른 브랜드를 찾자 LG와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의 사양과 가격을 상세히 알려줬다. 명찰에는 사진과 이름, ‘전문상담원’이라는 직함이 써 있었다. 하지만 이 직원은 하이마트 소속이 아니다. 진짜 소속사는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ㄱ사다. 이들은 법적으로 자사 제품만 판매할 수 있게 돼 있지만 다른 제품도 자연스럽게 안내하고 판매한다. 사실상 하이마트 직원처럼 일하는 것이다.

국내 최대 가전제품 전문 판매점인 롯데하이마트의 판촉사원 절반 이상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 같은 납품업체들이 인력업체를 통해 보낸 파견사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공급업체로부터 불법으로 제빵기사를 파견받아 매장에서 일을 시킨 파리바게뜨와 마찬가지로, 불법파견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입수한 하이마트 판촉사원 현황을 보면, 하이마트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22개 지사와 460개 지점에서 삼성·LG 등 납품업체로부터 판촉사원 3846명을 공급받았다. 매장에서 물건을 파는 직원의 57%가 이런 판촉사원이다. 납품업체들이 이들을 인력공급업체에서 공급받아 하이마트 매장으로 보내는 ‘2중의 파견’이다. 일은 하이마트에서 하는데 월급을 주는 회사는 인력파견업체이고, 원청은 전자제품업체인 복잡한 구조다.

[단독] 하이마트 매장 판촉사원 3800명 '불법파견' 의혹

이들은 하이마트에서 반드시 자신들을 보낸 납품업체 물품만 팔아야 한다.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하이마트 같은 대규모 유통업자는 원칙적으로 납품업자로부터 판매사원을 파견받을 수 없다. 그러나 납품업자가 ‘자발적으로’ 서면 약정 뒤 직원을 보내면 ‘예외적으로’ 파견이 허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LG전자 판매사원이 하이마트 매장에서 LG전자 것이 아닌 다른 회사 물건을 팔거나 관리하면 불법이다.

하지만 전·현직 종사자들은 현장에서 다른 회사 상품을 팔도록 묵인·조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8월까지 하이마트에서 통신사 소속으로 스마트폰 개통·판매 업무를 한 ㄴ씨는 “하이마트로서는 매출이 나와야 하니 뭐가 됐든 팔라고 한다. 자사 제품만 팔았다고 본사 팀장에게 질책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납품업체들이 판매사원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사람을 보내기 때문에, 사실상 하이마트가 인력업체를 통해 사람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이마트에 직원을 보내는 업체 중에는 파리바게뜨 매장에 불법으로 제빵기사를 파견했던 ‘ㄷ테크’도 포함돼 있다.

전자제품 판매는 파견법에서 파견을 허용한 업종이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이정미 의원실의 질의에 “인력운용 형태가 실질적으로 파견법상 파견에 해당한다면 파견대상 업무 위반이므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해당자들을 직접고용도 해야 한다”고 회신했다.

하이마트는 대규모유통업법을 엄격하게 준수하도록 현장 관리자들을 교육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파트너사들이 자사 제품을 판촉하려고 직원 파견을 요청한 것이고, 이들에게 다른 회사 제품까지 팔라는 지시는 하지 않는다”며 “다만 혼수나 이사 같은 경우 여러 제품을 한꺼번에 상담하는 일이 있어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장에서 그런 이야기가 들려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현장 관리자들을 교육시키고 원칙을 설명했는데, 아직 그런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면 개선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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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업체로부터 편법으로 파견사원을 받아 쓰는 행태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에도 퍼져 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과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는 각기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빅3’로 불린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대형유통업 납품업체 판촉사원 현황 자료를 보면 이 6곳에 판촉사원을 파견하는 인력공급업체만 1만1674개에 달한다. 6개사 매장 판촉사원 15만명 중 상당수가 인력공급업체 소속으로 추정된다. 식료품이나 음료 판매업 역시 파견대상 업무가 아니고 이들이 백화점·마트나 납품업체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다면 불법파견 소지가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의 불법파견 행태를 감독해야 할 정부는 지금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 지난 7월 활동을 종료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활동보고서를 보면 노동부는 2013년 이마트 본사를 특별근로감독했지만 납품업체 협력사원들은 직접고용 시정지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2016년에도 노조가 파견법 위반 특별근로감독 청원을 했으나 근로감독관 한 명이 현장조사를 한 뒤 불법파견이 아니라며 종결해버렸다.

이정미 의원은 “대기업과 대형 유통업체들이 판매사원을 고용하지 않으면서 법의 허점을 이용해 저임금 불법파견 등 간접고용을 일삼고 있다”며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실태를 조사하고 불법적 요소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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