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공화국에서의 교육

2018.10.23 20:29 입력 2018.10.24 15:14 수정

사립유치원 원장님들 덕분에 새삼 우리 교육의 ‘암흑의 핵심’이 선뜻 그 모습을 드러낸 듯합니다. 비리와 부정 그리고 교육부의 무책임은 ‘사립’의 두꺼운 장막 뒤에 있습니다. 좌파 운운하거나 폐원까지 거론하는 원장님들의 저 당당한 태도는 무엇을 ‘빽’으로 한 것인지요? 유치원이란 딱 그들의 사기업이자 사유재산입니다.

[정동칼럼]‘사립’공화국에서의 교육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사립’ 건물주가 꿈이며, 궁중족발 건물주가 더 동정받는 이 나라에서(그러니까 이 나라 자체가 일종의 ‘사립’입니다), 신성불가침 사립의 신화를 뚫고, 국공립유치원을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인다는 건 예외적인 상황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오늘의 이 관심이 교육 전체에까지 연결되기를 바라봅니다.

이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국가와 사립학교의 관계는 새로 정립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혈세가 없으면 하루도 유지되지 못하지만, ‘사유재산’으로 간주되고 자영업처럼 운영되는 이 이상한 사립 중심 교육체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학의 경우도 사립대학과 정부(교육부)의 관계는 기묘합니다. 정부의 개입·간섭과 사립대학의 자율권은 이상하게 결합하여 교육 모순을 증폭시켜 왔습니다. 정부가 사립대학 운영에 많이 개입하는 듯하지만, 정작 재단의 전횡을 적절히 견제하거나 사립대학이 공공적인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하지는 못했습니다. 정부는 표면적으로 모든 사립대학의 ‘갑’이고 교육부의 과장·국장에게조차 대학의 권력자들이 굽신거리는 것 같지만, 그 근본 실상은 유착에 가까울 듯합니다.

그리고 사립대학마다 사정이 크게 다릅니다. 어떤 대학들은 정말 부실하지만, 또 어떤 대학들은 기실 재산과 권세가 많고 셉니다. 사립대학의 이사장·총장 자리는 임기란 것도 없이 세습되는 경우도 많으니, 그들은 적어도 5년짜리 정권보다는 위에 있습니다. 이같이 사적소유의 신성함이 세습과 전횡을 정당화하는 이 나라에서 대학 자율권은 위험성이 더 큽니다. 크고 힘 있는 일부 사립대학은 학생 선발권이나 등록금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하라 하지만, 과연 그럴 자격이나 사회적 책임감이 그들에게 있을지요? 그들이 자율권을 진정한 교육이나 사회를 위해 쓸까요? 지금도 사립대학은 그야말로 ‘사립적’이라 할 기득권과 이윤의 논리, 그리고 차별을 가르치고 재생산합니다. 예컨대 서울의 주요 사립대학들은 입시에서 공공연히 지방이나 일반고 출신 학생을 차별합니다. 중학교 때 이미 인생이 결정되는 교육 파행의 상당 부분 책임은 그런 사립대학에 있습니다. 노중기 교수의 말대로 일부 사립대학은 재벌이나 특정 종교 집단의 사회지배의 전초 기지 구실도 하고 있습니다. 사학은 그들의 투자처이자 비자금 운용 장치이며, 재벌체제는 핵심적 노동력 공급기구로서의 대학에 이해관계를 가진다는 것입니다.(<대학 구조조정의 정치사회학> <학단협 심포지엄 자료집>)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비리와 재단의 전횡 외에도 영업 논리와 사회적 무책임이 대학을 지배하게 됐습니다. 교육부는 이를 내버려두거나 조장했습니다.

교육부 개혁이나 사학법 개정 없이 우리 교육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노무현 정부 때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과 분탕질이 아직 생생합니다. 영남학원 이사장이었던 박근혜를 필두로 이명박, 이재오, 나경원 등이 촛불을 들고 전국을 돌았었지요. 이사 중 일부를 ‘개방형’으로 한다는 조항이 그토록 그들의 족벌체제와 재산권에 위협이 됐나 봅니다. 이른바 보수세력이 사유재산권 침해며 ‘사회주의’라 방방 뜨면서 위헌소송도 제기하고, 한기총 같은 단체는 물론 점잖은 줄 알았던 다른 종파들도 함께 ‘총궐기’하던 모습과 결국 당시 여당이 꼬리를 내리던 모습도 기억합니다.

이 나라에서 사학법은 국가보안법만큼 신성하여 국민이나 헌법 위에 있나 봅니다. 지금도 자유한국당 주변의 정치권, 언론계, 종교계 등에는 사학 족벌과 인맥·혼맥으로 뒤엉킨 이해관계 동맹이 건재하겠지요. ‘사립’ 교회와 학교들이 세습하는 지위와 재산에 비교하면, 아마 어떤 소시민들이 기도했다는 고용세습은 조족지혈 정도겠지요.

제도 차원에서 사학법 개정이 대학개혁의 핵심이라면 대학 내적으로는 교수 사회의 개혁이겠지요. 1970~1990년대 한국 대학지성이 민주화와 근대화에 함께 영향받고 또 혜택을 누려 성장한 것이라면, 2000년대 이후의 대학은 그것과 스스로 결별하기 위해 온 힘을 써온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명박근혜’ 교육부와 일부 사학재단이 의식적으로 (전 시대의) ‘대학’과 투쟁했지만, 교수들 자신도 그러했다 생각합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명제에 가장 어울리는 집단이 교수 외에 또 있을지? 여기까지 쓰니 벌써 교수님들의 자조·한탄·비아냥거림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한국 교수 사회의 의식과 문화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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