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비용’은 없다

2018.11.08 20:40 입력 2018.11.08 20:45 수정
민경태 여시재 한반도미래팀장

남북경협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있다. ‘통일비용 포비아’, 바로 통일비용에 대한 공포감이다. 젊은 세대들은 여기에 짓눌려 있는 듯하다. 남북 화해 무드에서도 세금을 또 걷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단언컨대 통일비용은 없다! 통일비용은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다. 더구나 독일 사례에서 서독의 경제적 부담이 과장되기 일쑤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과거 보수정부의 반감으로 인해 오해와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어 온 측면이 적지 않다.

[시론]‘통일비용’은 없다

독일 통일비용 중 철도, 도로 건설 등 직접적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에 사용된 것은 약 12%에 불과하다. 50% 이상은 동독 주민의 소득보전에 쓰였다. 베를린 장벽이 갑자기 무너져 흡수통일이 되다 보니, 동독 주민에게 서독과 동일한 수준의 소득과 복지를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남북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번영의 길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실질적 해결과정이 진행되면 대북 경제제재도 풀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흡수통일은 망상에 불과하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적극 피해야 한다. 남북한의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남한의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고 사회·문화적 격차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바람직한 남북 통합은 우선 평화적 교류 협력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격차를 완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세대가 통일을 논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결정권을 넘겨주는 것이 현명하다.

물론 흡수통일이 아니라고 해서 경제협력 비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북한 SOC 개선과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지만 이를 통일비용으로 보는 것은 그야말로 오해다. 남북경협 과정에서 과연 어떤 비용이 필요한지 한번 따져보자.

우선 개별 기업의 투자는 이익을 염두에 둔 것이다. 우리 기업이 중국과 베트남에 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과 같다. 이를 두고 누구도 ‘퍼주기’라고 하지 않는다. 기업은 이익이 된다면 어디에든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가 이뤄지려면 인프라 구축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소한 산업단지에 전력과 용수, 교통, 통신 등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및 국제 자본이 함께 진출하는 컨소시엄도 해법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 활용이 가치가 있음을 전제로 할 때, 초기 투자비용 부담만 감당할 수 있으면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기 인프라 비용까지 투자하고 진출하는 기업에는 상당기간 사업 우선권 등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초기 투자시점과 이익창출 시점 간의 시간차를 해결하기 위해 ‘패키지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큰 비용은 한반도의 ‘대동맥 구축’에 사용될 것이다. 철도, 도로, 에너지, 항만 등 주요 SOC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대기업 차원에서도 독자적으로 부담하기 어렵다. 그러면 이것은 과연 통일비용일까? 나는 이를 한국의 ‘유라시아 대륙경제 접속 비용’ 또는 ‘섬나라 신세 탈출 비용’으로 해석한다. 남북 네트워크 연결은 유라시아 대륙세력과 태평양 해양세력의 접점에 놓인 한반도에 지리경제학적 대전환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배로 부산항과 목포항에 와서 다시 기차로 서울, 평양, 베이징, 모스크바, 유럽까지 여행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한반도의 항만 도시들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복합물류 거점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비용은 한반도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것이며, 우리 자신에 대한 투자이다. 한국 자체 역량으로도 감당할 수 있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남북이 주도하는 ‘북한개발은행(가칭)’을 투자 플랫폼으로 설립하고 여기에 국제금융기구가 참여하는 구상도 가능하다.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하지 않으면 국제자본이 물밀 듯이 들어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투자 수익을 우선시하는 탐욕적 자본에 주요 기간시설을 넘겨서는 안된다. 북한 경제개발 전략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며, 남북이 공동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갖추도록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북한이 무분별한 해외자본의 공략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한국의 교훈을 알려주어야 한다. 남한은 가장 믿을 만한 파트너임을 북한에 이해시켜야 한다.

한반도의 미래가 달린 매우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젊은이들이 ‘통일비용 포비아’에 현혹되어 한반도의 원대한 꿈을 상실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통일비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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