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로 살지만 1이 족쇄…성별정정 쉽게”

2018.11.20 21:46 입력 2018.11.20 22:28 수정

트랜스젠더, 이유 있는 주민번호 정정 간소화 주장

“2로 살지만 1이 족쇄…성별정정 쉽게”

성전환 수술해야만 가능
그 과정까지 고통의 연속

수술해도 서류 수십가지
부모 동의 못 받아 허사도

‘1’. 숫자 하나 때문에 김미정씨(가명)는 동주민센터에 가지 못한다. 최근 이사하면서 주소를 변경해야 하지만 주민등록증을 동주민센터 직원에게 보여주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김씨는 20대 트랜스젠더다. 단발머리에 안경을 낀, 수수한 옷차림의 여성이다.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숫자가 남성을 뜻하는 ‘1’이라는 이유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직장인 물류센터에 출퇴근할 때 ‘남자 줄’에 서지만 “왜 여자가 거기에 있냐”는 말과 의심 섞인 시선을 받을 때면 숨어버리고 싶다.

류세아씨(27·가명·사진)는 올 초 가족으로부터 절연당했다. 류씨는 성별정정에 필요한 부모동의서를 받으려 부모를 찾아갔다. 부모는 류씨를 정신병원에 감금하려 했다. 흉기로 “너 죽고 나 죽자”며 위협했다. 류씨는 결국 성별정정을 하지 못했다. 성전환 수술을 받고 수십가지 서류를 갖췄지만 부모 동의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1’과 ‘2’.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숫자가 트랜스젠더에겐 낙인이다. 목숨과 맞바꿀 정도로 얻고 싶은 삶의 목표다. 이 숫자를 얻기 위해 수천만원을 들고 태국까지 날아가 성전환 수술을 받는다. 12시간이 넘게 수술대에 누워야 한다. 수술이 끝나고 열흘 동안은 먹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수술 자체의 위험성과 부작용은 홀로 감내해야 한다. 한국에선 성별을 변경하려면 반드시 성전환 수술을 거쳐야 한다.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수술 없이도 성별정정이 가능하다.

김미정씨는 성전환 수술을 받지 못해 주민등록번호 ‘1’을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다. 김씨가 지난 19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말했다. “수천만원을 벌 구석이 도저히 안 보여 반쯤 포기한 상태예요. 싫지만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할까 고민해요. 수술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택하는 길 중 하나니까요.” 트랜스젠더는 다른 성소수자와 달리 성전환 수술이 수반된다. 많은 이들이 비용 마련을 위해 유흥업소에서 접대하거나 성매매에 몸을 맡긴다. 김씨가 이어 말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제 몸 위에 올라오는 것을 상상했어요. 사자 발톱 밑에 깔린 토끼 같은 느낌이었어요. 원치 않는 상대가 내 몸을 만지는 걸 돈 때문에 허락해야 한다는 게 소름 끼치게 무서워요. 그래도 죽기 직전이면 해야 하나 싶어요.”

수술비용 마련에 수년, 수술 과정에 약 1년을 보내면 인생에 공백기가 생긴다. 다른 성소수자에 비해 사회 진출이 늦어진다. 외관상 쉽게 ‘아우팅’(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본인 동의 없이 드러나는 일)을 당해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다. 성소수자 중 가장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처한다. ‘소수자 중 소수자’인 셈이다.

고민을 공유할 안식처도 없다. 남성 동성애자는 ‘게이 바’에서 다른 남성 동성애자를 만날 수 있지만 ‘트랜스젠더 바’는 그런 곳이 아니다. 트랜스젠더가 비트랜스젠더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다.

단체를 만들어도 성전환 수술을 마친 트랜스젠더는 보통 단체를 떠나버린다. “트랜스젠더는 과거를 지우는 게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모임을 조직화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김씨와 류씨는 트랜스젠더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각각 지난해 말, 올해 초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트랜스해방전선’에 들어갔다. 단체 회원은 처음 4~5명에서 현재 9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날을 기념해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입구 광장에서 ‘그만 죽여라 우리도 살고 싶다!’ 집회를 열었다. 집회 측 추산 600여명이 추모의 의미를 담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행진했다. 이날은 1998년 11월20일 ‘증오 범죄’로 숨진 트랜스젠더 리타 헤스터를 추모하기 위해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성별정정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류 수십가지를 구비한 뒤 판사가 시혜적이고 자의적으로 ‘허가’해주는 게 아니라 신고제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또 성전환 수술을 받기 위해 성매매나 유흥업소로 트랜스젠더들이 내몰리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성전환 수술에 대한 의료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전환 수술은 단순한 성형수술이 아니라 이들이 평범한 시민으로 차별 없이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김씨는 “성별정정 과정이 간소화될 수 있도록 소송을 걸까 생각 중이다. 이렇게라도 얘기하고 죽어야 한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죽고 싶은 거 아니잖아요. 살고 싶은데 못 살겠으니까 죽는 거죠.” 류씨가 옆에서 말을 보탰다. “저희도 똑같이 생존하고 행복하고 싶어요. 혐오적 시선과 정책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아요. 인식과 정책을 바꾸고 나서 추모를 해달라고요. 우리도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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