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 선택 아닌 필수

<1>독일 펠트하임…전력·난방 100% 자립마을, 남는 에너지로 일자리 창출

2018.11.28 21:31 입력 2018.11.29 10:10 수정

에너지 100% 자립 마을, 독일 펠트하임을 가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에 있는 펠트하임 마을 전경. 마을 바깥쪽에는 55기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고, 마을 안쪽에는 바이오가스·바이오매스 공장, 태양광 발전시설 등이 보인다. 37가구 145명이 거주하는 이 마을은 100% 에너지 자립 마을로 다양한 재생에너지 발전원을 통해 전력과 난방열을 조달하고 있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에 있는 펠트하임 마을 전경. 마을 바깥쪽에는 55기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고, 마을 안쪽에는 바이오가스·바이오매스 공장, 태양광 발전시설 등이 보인다. 37가구 145명이 거주하는 이 마을은 100% 에너지 자립 마을로 다양한 재생에너지 발전원을 통해 전력과 난방열을 조달하고 있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독일은 ‘에너지 전환’의 본보기가 되는 나라다. 1990년대부터 정부와 기업, 국민이 삼위일체로 탈원전·탈석탄을 추진했다. 특히 소규모 마을 단위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성공시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숱하게 있다.

28일 안상록 주한 독일대사관 경제담당관 등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해 기준 전체 발전량의 33.3%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가장 큰 재생에너지원은 풍력으로 16.3%로 집계됐다. 이어 바이오매스 6.9%, 태양광 6.1%, 수력 3.1%, 가정용 쓰레기 0.9% 순이었다.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11.7%에 불과했다. ‘석탄발전 제로화’에는 일찌감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독일에는 160만개의 태양광 발전시설이 가동 중이다. 2만9000개의 풍력 발전시설도 보유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분야에 34만명이 종사 중이며 매년 1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독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에너지 전환 수용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92%가 ‘재생에너지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이어 71%가 ‘2022년까지 탈원전을 해야 한다’고 밝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지지했다.

23년 된 ‘펠트하임 프로젝트’
풍력·태양광·바이오가스로
가구당 연간 300유로 절약

독일 전체 발전량 33% ‘재생’
국민 71% 탈원전 정책 지지
비싸도 친환경 에너지 선호

국내에서는 에너지 전환을 놓고 찬반 양측이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반대쪽에서는 풍력·태양광 발전이 환경을 파괴하고, 석탄·원자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 대규모 정전 사태(블랙아웃)를 불러올 수 있다는 가짜뉴스를 유포한다.

에너지 전환이 과연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 과제일까. 지난 18~22일(현지시간)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의 도움을 받아 에너지 자립 마을인 펠트하임과 석탄·철광 공업지대에서 ‘태양광 도시’로 변신한 겔젠키르헨시 과학공원, 재생에너지 분야 유럽 최고의 싱크탱크인 부퍼탈연구소를 방문했다. 그 결과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오네 클리마슈츠 카인 나투어슈츠(Ohne Klimaschutz kein Naturschutz·대기질 관리 없이는 자연보호도 없다).”

지난 20일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에 있는 펠트하임 마을 입간판에는 이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수도 베를린에서 차량으로 1시간30분 달려 남서쪽으로 83㎞ 떨어진 농촌에 도착하자 풍력발전기 대열이 장관을 이뤘다.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풍력발전기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영상의 날씨에도 세찬 바람 때문인지 발전기에 달린 날개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현재 37가구 145명이 살고 있는 ‘윈드 파크’ 펠트하임은 에너지 자립 마을이다. 풍력발전을 통해 연간 생산되는 전력량은 2억5000만kWh로 5만9524가구(가구당 월평균 350kWh 기준)가 쓸 수 있는 양이다. 이 중 100만kWh는 펠트하임에서 사용되고, 나머지 99.6%는 인근 대도시인 베를린과 포츠담에 판매된다. 독일은 한국전력이 전력공급을 독점 중인 한국과 달리 소비자들이 민영 전력회사들의 발전원과 전기요금을 비교해 구매처를 선택할 수 있다. 원자력보다 요금은 비싸지만 독일 사람들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 마을에 풍력발전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23년 전이다. 당시 대학생이던 미카엘 라슈만(47)이 시정부에 설치를 제안했다. 라슈만이 설립한 재생에너지 기업 에네르기크벨레가 추진한 ‘펠트하임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1995년 0.4㎿급 4기에 불과하던 풍력발전기가 지금 2~3㎿급 55기로 늘어났다. 달랑 직원 2명이던 스타트업 에네르기크벨레는 이제 프랑스와 핀란드, 이탈리아에 지점을 둔 직원 200여명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펠트하임 프로젝트는 기업의 제안과 주민들의 수용, 시정부의 지원 등 3박자가 잘 맞아떨어졌다. 사업 7년 만에 투자금을 회수한 에네르기크벨레는 전력 판매수익을 마을에 환원했다. 주민 편의시설을 짓고 가로등 개선 사업에도 참여했다. 주민들은 값싼 전기요금을 내고 재생에너지 분야 취업에도 성공했다. 독일 전기요금은 kWh당 25~30유로센트 수준인데 이곳 주민들은 16.6유로센트만 낸다. 시정부는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4년 1250만유로짜리 10㎿급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구매할 때도 전체 금액의 40%를 지원해줬다.

2008년 바이오가스 공장을 설립해 난방열도 자력으로 조달한다. 주원료는 마을에서 키우는 소와 돼지의 배설물과 통밀, 옥수수 등 잡곡이다. 소 500마리와 돼지 550마리는 주민들이 소속된 축산조합에서 키운다. 바이오가스 공장 지분은 축산조합과 에네르기크벨레가 각각 50%씩 보유 중이다. 주민들은 가축을 이용해 농사도 짓고 난방열을 확보한다. 남는 찌꺼기는 친환경 비료로도 쓴다. 혹한기 기온 하강으로 가스 생산이 어려울 때 바이오매스 공장도 활용한다. 인근 인공숲에서 베어낸 나무에서 가지를 잘라 우드칩을 만들어 원료로 투입한다. 바람이 불지 않아 풍력발전기 가동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바이오가스·바이오매스 공장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한다.

10년 전 마을에서 12㎞ 떨어진 곳에 ‘솔라 파크’로 불리는 태양광 발전단지도 조성됐다. 45만㎡ 부지에 설치된 9844개 태양광 모듈에서 연간 274만8000kWh의 전력이 생산된다. 여기 설치된 모듈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방향을 바꾸는 추적식으로 고정식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30%가량 더 높다. 이처럼 각종 재생에너지 시설이 마을에 들어선 뒤 주민들은 해마다 가구당 평균 300유로의 전기·난방 요금을 절약하고 있다.

펠트하임 마을은 입소문을 타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매년 3500명가량이 방문한다. 옛 동독 지역으로 통독 이후 새롭게 개발된 이곳에 북한 관료들이 들른 적도 있다. 1년 반 전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방문했다. 윤기돈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상임이사는 “독일이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다음 세대에 대한 현세대의 책임성”이라면서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내린 결단을 우리 사회도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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