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일 명분 규제완화 역습, 주52시간·산안법 흔들기

2019.08.20 22:25 입력 2019.08.21 08:44 수정

화학물질 규제 후퇴 개정안

경총, 유연근무제 확대 건의

“위기를 틈타 노동개악 시도”

일본의 수출규제를 명분 삼아 산업 현장의 노동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보수 야당은 가습기살균제 사고를 계기로 도입된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종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입법안을 내놨다. 경영자 단체 역시 눈엣가시였던 ‘주 52시간제’의 보완책이라며 수당 지급 없이 연장근로가 가능한 각종 유연근무제 확대안을 들고 왔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위기를 틈타 노동개악을 시도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언주 의원은 20일 화학물질의 명칭·함량 등이 담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기업이 자체적으로 작성해 보관하도록 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사망 사고를 계기로 전면 개정된 산안법은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유해 화학물질 관리체계에 정부가 일정 수준 개입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화학제품을 사고파는 기업 간에만 주고받았던 화학물질 안전자료를 제조·수입 업체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도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또 기업이 영업비밀을 핑계로 화학물질 성분 등을 은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업비밀을 이유로 신고하지 않으려면 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는 가습기살균제 사고 후 캐나다, 유럽연합(EU) 등에서 시행하는 ‘MSDS 비공개 정보 승인심사제’를 도입한 것이다. 지난 1월 개정된 법안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이언주 의원안은 유해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백지화하는 것은 물론, ‘비공개 승인심사제’를 폐지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끝에 도입된 법이 시행도 되기 전에 종전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화학물질 관리제도뿐 아니라 주 52시간제도 한·일 갈등 상황과 맞물려 도전에 직면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유연근무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사항을 정부에 전달했다.

경총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핵심 부품·소재·장비의 국산화를 비롯,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는 것이 주요한 국정과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일본의 노동시간 및 유연근무제도를 집중 소개했다. 한·일 경제갈등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경영계에 노동시간 규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취지다.

실제로 경총은 일본에만 존재하는 기획업무형 재량근로제, 고소득·전문직 전용 근로제 등 유연근로제의 도입을 주장했다. 일본은 한국 못지않은 장시간 노동 사회로 영어사전에는 ‘Karoushi(과로사)’라는 단어가 등재되기도 했다. 경총 요구대로 기획업무형 재량근로제가 도입될 경우 경영기획, 인사노무, 재무경리, 홍보, 영업기획 등 사무직군의 상당수 종사자가 실제 근무시간 측정 없이 노사가 정한 임금만 받게 된다. 주 52시간제의 취지가 무력화되는 셈이다. 이 밖에 경총은 주 52시간제가 이미 시행 중인 대기업에는 계도 기간을 연장하고, 시행을 앞두고 있는 중소기업에는 시행을 유예하는 방안도 내놨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일본은 G7(주요 7개국) 국가 최하위의 낮은 노동생산성과 노동체제를 고집하는 국가”라며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거론하며 한·일 간 노동시간제를 비교했지만, 일본식 유연노동제 찬양과 이를 흉내낸 제도 도입 요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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