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추석을 맞이하여 부사관 이하의 모든 국군장병들에게 격려카드와 특별간식을 ‘하사’할 예정입니다.” 청와대가 홈페이지에 이 같은 보도자료를 올렸다. 장병들에게 특별휴가증을 수여한다는 내용과 함께였다. ‘하사(下賜)’는 왕조시대 용어로, 공화국에서는 사극에나 나올 법한 말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사용했다. 박근혜 정권이 국민을 대하는 방식이 이 한마디에서 드러난다.
하사는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줌’이라는 뜻이다. 청와대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윗사람이고 장병은 아랫사람이니 문제될 게 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두 번째 정의로 사용했다 해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국군장병은 대통령의 아랫사람이기 이전에 주권자인 국민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투표로 뽑히고,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복(公僕)일 뿐이다. 어제 아침 발행된 중앙종합일간지 9곳 중 8곳이 ‘하사’ 대신 ‘제공’ ‘전달’ ‘돌릴 예정’이란 표현을 쓴 것만 봐도 이 단어의 부적절성을 짐작할 수 있다.
정치학자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2012년 당시 대선후보이던 박 대통령을 두고 “왕정이 사라진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공주’를 갖고 싶어하는 한국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사인(私人)이 박 대통령을 공주 혹은 여왕처럼 여기는 심리까지 나무랄 수는 없을 터다. 그러나 정부와 공직자는 달라야 한다. 청와대 인식대로라면 격려카드와 특별간식을 ‘하사’받은 장병들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도 외쳐야 하는 건가. 대한민국은 군주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