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경고음’을 낼 수 있는가

2015.09.25 19:04 입력 2015.09.25 19:27 수정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핀란드의 15세 이하 학생들은 시험시간에 동일한 시험지를 받지 않는다. 학생들이 풀어야 할 문제가 각기 다르다. 왜 그럴까. 한 학급은 물론이고 전국의 같은 학년이 똑같은 시험문제를 받아드는 우리 실정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제도가 저 나라에서는 어떻게 ‘아무런 문제 없이’ 시행되고 있는 것일까? 엊그제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잠깐 생각하더니 “다양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유와 성찰]대학은 ‘경고음’을 낼 수 있는가

이번에는 질문의 강도를 높였다. 미국 스탠퍼드대에는 시험감독이 없다. 학생들이 입학할 때 명예서약을 하고, 시험을 치를 때마다 답안지에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또 서명을 한다. 그럼에도 간혹 커닝을 하는 학생이 나온다. 이럴 경우 대학에서 어떤 처벌을 내릴까? 우리 학생들이 내놓은 답은 이런 식이었다. 퇴학 혹은 정학을 시킨다, 리포트를 따로 제출하라고 한다, 신상을 공개한다 등등. 학생들에게 저 대학에서는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처벌을 한다며 ‘자유롭게 상상해보라’고 주문했다. 학생들은 더 이상 답하지 못했다.

지난 목요일 밤, 시민대학 수강생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핀란드의 평가방식에 대한 답은 학생들과 같았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반응 역시 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묵묵부답. 스탠퍼드는 학생이 부정행위를 했을 경우, 학생을 처벌하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학생이나 시민 모두 놀라는 표정이었다. 재차 물었다. 그럼 누구를 처벌하겠는가? 예상한 대로 침묵이 길어져 답을 들려줬다. 저 대학에서는 학생이 부정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해당 교수에게 다음과 같이 문책한다. 커닝이 가능한 문제를 낸 당신이 잘못한 것이다, 앞으로는 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문제를 내시라. 강의실이 한동안 고요했다.

핀란드와 미국 대학 사례는 지난 22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전·현직 대학 총장 좌담에서 들었다. 유엔 세계평화의 날 34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된 특별좌담에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염재호 고려대 총장, 조인원 경희대 총장이 자리를 같이해 대학과 정치의 미래를 주제로 논의를 이어갔다. 나에게는 세 분 총장의 현실 인식과 대안 제시도 유의미했지만, 이 시기에 대학 총장들이 고등교육 문제를 공론장에 상정했다는 것 자체 또한 각별해 보였다. 총장들은 좌담에서 지금 우리 대학은 어디에 있는가, 대학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 화두를 제시했다.

대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제출되고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도 대학이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는 분석과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원인을 적시하기는 어렵지 않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경제(기업)논리의 유입, 교육 당국의 지나친 개입과 획일적 대학평가제도에 따른 교육·연구 기능의 붕괴. 이것이 대학이 대학 본연의 역할과 책무를 외면한 채 취업기관으로 전락한 배경일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지적에 동의하다 보면 대학은 큰 잘못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좌담에서 정운찬 전 총장은 “총장들이 사회적 경고음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저 경고음이 사회를 향하는 동시에 대학 내부를 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기업의 과도한 간섭도 걸림돌이지만, 외부 압력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대학 또한 대학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총장들이 강조했듯이 대학이 과연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무엇을 왜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취업에 목매다는 학생들의 ‘절규’를 듣고 있는지, 대학이 공공성을 추구하고 있는지 묻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학생과 시민들에게 핀란드와 스탠퍼드 사례를 들려주며 우리 대학과 사회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인식론적 자물쇠’를 새삼 확인했다. 다름 아닌 경제적 공포였다. <문명의 붕괴>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경고음이 떠오른다. 그에 따르면, 생존 위기가 닥쳤을 때 예전에 효과를 거뒀던 생존 전략에 집착하면 그 문명은 붕괴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문자 그대로 문명사적 전환기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이 불확실해지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새로운 상상력이 절실한 시기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생존 전략에 집착하고 있는가. 경제적 공포를 경제 논리로 극복하려고 물불 가리지 않고 있다.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원인 제공자 중 하나가 대학이다. ‘영혼 없는 전문가’를 길러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부터 달라져야 한다. 대학이 대학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대학을 옥죄어온 생각의 자물쇠를 풀어나갈 때 사회적 경고음도 더 크고 분명해질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