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소비자 권리만 강조 갑질에 상처받는 직원 방치”

2015.11.03 17:13 입력 2015.11.03 22:08 수정

“무례한 고객은 내보내겠다” 안내문…김승호 짐킴 홀딩스 대표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직원을 내보내겠지만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면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

이 안내문은 백화점 매장 직원을 무릎 꿇리고, 주차요원에게 폭언하는 등 일상화된 ‘고객 갑질’에 경종을 울렸다. 자신이 경영하는 도시락 매장에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문’을 붙여 화제가 된 김승호 짐킴 홀딩스 대표(51)를 3일 만났다. 약속장소인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스노우폭스’ 4호점 유리문에도 그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입간판처럼 크게 보였지만, 실제 안내문 크기는 가로 7㎝, 세로 15㎝로 작았다. 당초 직원들이 보라고 조그맣게 붙인 것이라고 했다.

도시락 업체 ‘스노우폭스’를 운영하는 김승호 짐킴 홀딩스 대표가 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도시락 업체 ‘스노우폭스’를 운영하는 김승호 짐킴 홀딩스 대표가 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매장에 20·30대의 젊은 직원들이 많아요. 무례한 고객에게 상처를 받으면 삶 자체에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그 일 때문에 징계하지 않겠으니 무례한 손님에게는 정당하게 대응하라는 취지였어요.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스노우폭스는 초밥과 덮밥, 샐러드 등을 판매하는 도시락 매장이다. 국내에는 올해 4월 처음 문을 열었지만 미국과 유럽, 호주 등 세계 11개국에 1250개 매장이 있는 글로벌 브랜드다. 김 대표는 가발용 합성섬유 및 화학제품을 생산·판매하는 ‘우노앤컴퍼니’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3일 도시락 업체 스노우폭스 4호점 문에 붙어있는 ‘갑질 손님 거부’ 안내문.     김창길 기자

3일 도시락 업체 스노우폭스 4호점 문에 붙어있는 ‘갑질 손님 거부’ 안내문. 김창길 기자

김 대표가 안내문을 붙이게 된 것은 최근 스노우폭스 서울 교대점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매장에서는 문을 닫기 직전 도시락을 2개 묶어 저렴한 가격에 판다. 한 중년 여성이 3개를 달라고 했다. 점원들이 안된다고 하니, 그 여성은 “어차피 버릴 건데 왜 안 주느냐, 손님을 우습게 보느냐, 가게 문을 닫게 하겠다”며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이후 지난달 30일 국내에 문을 연 4개 매장에 안내문을 붙였다.

그는 “미국에서는 그런 손님은 거부하고, 그래도 말썽을 부리면 경찰을 부르면 그만”이라며 “다른 나라 매장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한국에선 발생한다”고 말했다.

안내문에 ‘공정서비스 권리’라고 붙인 것도 이유가 있었다.

“흔한 표현 중에 ‘팔아줄게’라는 말이 있잖아요. 하지만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것이니까 고객이 매장을 찾는 것이고, 저희는 정당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교환하는 것이지요. 안내문은 직원들도 정당하게 그것을 주장하는 용기를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서 고객의 갑질 행태가 빈번한 원인은 무엇일까.

“이건 한국인들의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게 아니에요. 고객만족(CS) 교육이 윤리나 상호존중이 바탕이 되지 않고 소비자 권리만 강조하는 쪽으로 진행된 게 문제입니다. 무례한 손님을 경영자는 대개 방관하고. 폭력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최일선에 가장 하급직원인 판매직원을 방치해 놓았던 거죠.”

최근 인천 백화점 ‘스와로브스키’ 매장에서 있었던 무릎사죄를 그는 어떻게 볼까. 김 대표는 “스와로브스키는 입점업체니까 소란 발생 자체가 문제가 됐을 것”이라며 “백화점이 무례한 고객을 내보낼 수 있는 권한을 입점업체에 부여한다면 고객 갑질 문화는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무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갔다. 아버지와 함께 조그만 슈퍼마켓을 시작했다. 이후 이불가게, 지역신문사, 컴퓨터 조립점, 유기농식품점 등을 운영하며 8번 실패를 겪었다. 지금은 연간 매출 3200억원을 올리는 기업가다. 지난 9월부터 중앙대에서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들을 대상으로 외식산업 강의도 한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요즘 저를 유심히 보고 있어요. 망하나, 안 망하나 지켜보는 거죠. 괜찮으면 저처럼 대응하려고요. 제가 알기론 상당히 많은 업체가 이 안내문을 복사해갔습니다.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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