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또 이기고 있다

2016.04.04 16:54 입력 2016.04.04 17:56 수정

[김민아 칼럼]새누리, 또 이기고 있다

지난달 30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했다. 연사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였다. 김 대표는 당내 사정을 이유로 두 번이나 토론회를 연기한 터였다. ‘매너’ 차원에서라도 솔직한 답변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예상과 달랐다.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답변을 거부했다. “대통령에 대해선 말씀드리지 않겠다” “질문하지 말아달라”를 되풀이했다. 사회자와 패널 4명이 야심차게 준비한 시나리오는 무용지물로 변해갔다. 변칙공격으로 전환해 이리저리 찔러봤다. 소용없었다. 김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패널들만 서서히 지쳐갔다. 1시간30분이 ‘영양가 없이’ 흘렀다.

처음에는 황당했다. 답변도 안 할 거면 도대체 왜 나왔나, ‘차기’를 노린다는 정치지도자가 저렇게 소신이 없어서야…. 시간이 흐르며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김 대표가 대통령을 비판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공천 파동을 간신히 수습한 새누리당은 또다시 친박·비박계의 싸움판으로 변했을 것이다. 만약 대통령을 옹호했다면? 그랬다 해도 진심이라 믿어주는 사람은 드물었을 터다. 김 대표는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스타일을 구겼다. 그러나 총선을 눈앞에 둔 정당 대표로선 영리한 선택을 했다. 표를 얻기 위해 체면을 버린 것이다.

김 대표는 토론회가 끝난 직후 대구로 가서 선거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조원진이 어데 갔노? 일로 와 안기라!” 바로 전날 “대구 자존심을 짓밟은 사람”이라며 김 대표를 직격했던 친박계 조원진 의원을 불러 껴안았다. 조 의원도 “더 이상 갈등은 없다”며 웃었다. 김 대표는 친박 좌장인 최경환 의원과도 두 번이나 부둥켜안았다. 새누리당은 내친김에 ‘무성이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홍보 동영상까지 제작했다. 김 대표가 공천안을 추인하지 않고 부산에 내려갔던 ‘옥새 파동’의 패러디물이다. 소셜미디어에서 꽤 인기라고 한다. 새누리당은 야당 대표(안철수 국민의당 의원)를 공개적으로 응원하는 일조차 서슴지 않는다. 과감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이 제작한 홍보 동영상‘무성이 옥새 들고 나르샤

새누리당이 제작한 홍보 동영상‘무성이 옥새 들고 나르샤

시민으로서, 기자로서 새누리당의 정책기조에 동의하는 바가 거의 없다. ‘유승민 찍어내기’에서 드러난 폭력적·비민주적 문화에는 신물이 난다. 그럼에도 그들의 ‘초강력 멘털’만은 높이 평가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일정 수준에 오른 선수들끼리 대결하면 멘털이 승부를 좌우한다. 선거에서 멘털에 해당하는 게 권력의지다. 새누리당은 권력의지의 강도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들은 선거에서 패배한다는 것, 정권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다시는 상종 못할 사람들인 양 싸우다가도 선거만 시작되면 즉각 휴전하고 화합을 과시하는 이유다. 여차하면 “잘못했다, 도와달라”며 눈물을 보이고, 파란 점퍼에서 빨간 점퍼로 갈아입는 ‘쇼’가 가능한 것도 권력의지 덕분이다. 이번에도 김 대표는 “180석까지 얻어보자고 욕심 냈는데, 잘못하면 과반수 의석도 간당간당한다”며 엄살을 부리고 있다. 히딩크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새누리당은 ‘닥승(닥치고 승리)’의 선수들이다.

이달 1일 서울 강북의 한 지역구 유세에 가봤다.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지원 나온 현역 의원이 연설을 했다. 두 사람은 박근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했고, 정치혐오는 나쁜 것이니 반드시 투표해달라고 했다. 정통 야당답고,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이야기였다. 유감스럽게도 호소력은 별로 없었다. 그동안 야당 역할을 제대로 못해 죄송하다, 이제는 정신 차려 잘하겠다…는 ‘석고대죄’가 빠졌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결정적 차이라고 본다. 여당은 유권자가 ‘듣고 싶은 말’을 하는데, 야당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더민주에선 요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가 미묘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소재는 문 전 대표의 선거 지원 활동이다. 김 대표가 먼저 기자들과 만나 “선거라는 것은 선거를 끌고 가는 사람, 주체가 알아서 관리해야지, 옆에서 딴 사람이 하다보면 선거 방향이 올바르게 갈 수 없다”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기자들이 입장을 묻자 문 전 대표는 “우리 당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이 총동원돼야 한다”고 했다. 총선 득표 전략을 둘러싼 견해차는 있을 수 있다. 두 사람이 논의해 정리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직접 하면 될 이야기를 왜 언론을 통해서 하나. 김종인·문재인의 관계는 친박·비박의 관계와는 비할 수 없이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통합적·유기적 메시지 전략을 고려하지 않고 각자 할 말만 한다면, 유권자들은 김·문 사이가 더 멀다고 여길지 모른다. 두 사람에게 묻고 싶다. 활짝 웃으며 얼싸안는 쇼를 할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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