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 티셔츠 입었다고 '잘린' 여자 성우

2016.07.19 15:57 입력 2016.07.20 16:26 수정

국내 게임제작사 넥슨이 자사의 온라인 액션게임에서 한 여성 성우를 교체한다고 19일 밝혔다. 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활동을 한 데 대해 일부 네티즌들이 항의를 제기했다는 이유에서다. 네티즌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메갈리아' 티셔츠 입었다고 '잘린' 여자 성우

■넥슨, 성우 전격 교체 결정

넥슨이 교체하겠다고 밝힌 성우는 김자연씨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트위터) 계정을 통해 18일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티셔츠를 입은 ‘인증샷’을 올린 바 있다. 그런데 만 하루도 되지 않아서 넥슨 측에서 그를 자사 성우에서 ‘퇴출’하는 결정을 발표했다.

게임사 넥슨은 ‘클로저스’ 게임 사이트에 19일 올린 공지사항을 통해 “21일(목) 업데이트 예정인 신규 캐릭터 ‘티나’(사진)의 성우가 오늘(7/19)부로 교체된다”면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클로저 여러분의 우려 섞인 의견들을 확인하였고 업데이트를 며칠 앞둔 상황에서 급히 성우 교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체 측은 “21일 업데이트에서는 티나 캐릭터의 음성이 교체된 버전으로 일부만 공개되며 티나 캐릭터 음성은 빠르게 준비해 업데이트하겠다”고 밝혔다.

에이스톰 서비스 게임인 ‘최강의 군단’ 역시 공지사항을 통해 “현재 외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에 대해 선수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의견을 모두 확인하였다”면서 “해당 성우가 참여한 이자나미의 음성 교체를 결정하게 됐다”고 같은 날 밝혔다.

이같은 조치에 대해 김자연씨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메갈리아에 대해서는 전에 트윗타래로도 한 번 썼다. 회원으로 활동한 적은 없어도 간간히 리트윗으로 넘어오는 글들을 보았고, 미소지니에 대응하는 웹사이트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곳에 대해 딱히 나쁜 인상은 없다”고 적었다. 그는 “제가 무엇을 해명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거나와, 앞서 적었듯 이게 잘못된 선택이라면 제 행동에 책임을 질 의사가 당연히 있다”고 밝혔다.

'메갈리아' 티셔츠 입었다고 '잘린' 여자 성우

■논란이 된 티셔츠는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소송비용을 크라우드펀딩한 이들이 받은 것이다. 메갈리아는 지난해부터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나, 페이스북 측으로부터 페이지가 두 차례 삭제되는 조치를 받았다. 운영진은 이에 페이스북 본사를 상대로 소송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5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티셔츠를 개당 2만원에 판매했다. 티셔츠에는 ‘여자들은 왕자가 필요없다’(Girls don‘t need a prince)라는 온건한 문구가 인쇄돼있다. 해당 크라우드 펀딩은 당초 목표액이 925만원이었지만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1억원이라는 초과달성을 이뤘다. 메갈리아 측은 남는 수익금을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여성에 대한 법률상담과 메갈리아 활동 중 법적 분쟁에 휘말린 이용자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무엇이 문제였나

넥슨 측의 성우 교체 결정은 이례적으로 신속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과거 미성년자 성희롱 논란이 있었던 ‘메이플스토리2’의 성우의 경우 교체 결정까지 일주일이 걸린 바 있다.

트위터 이용자 ‘@rainygirl’은 “넥슨이 “메갈리아 옹호” 첫 퇴출 사례를 장식. 넥슨 고객이 누구인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부분. 서든어택2부터 페미니스트 티셔츠 입은 성우퇴출 호응까지.“까지라고 비판했다. 넥슨은 최근 출시한 ‘서든어택 2’가 여성을 시대착오적으로 성적 대상화하고, 기괴한 여성 시체들의 형상이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넥슨의 이번 조치야말로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옹달샘으로 물의를 일으킨 장동민의 밥줄은 멀쩡한데 티셔츠 하나 입었다고 여자 성우는 밥줄이 끊긴다”는 것이다. 트위터 사용자들은 #넥슨_보이콧 해시태그를 통해 해당사의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게임개발자연대’는 “넥슨이 김자연씨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건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이러한 결정이 앞으로 게임개발자들의 정치적 의사 표명을 막고, 특히 여성 개발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할 수 있음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다양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대의 게임 서비스 흐름에 부합되지도 못할 뿐더러, 게임을 즐기는 다양한 유저들의 권익도 침해하게 될 수 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이하 게임개발자연대가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한 관련 성명서 전문.

■게임개발자연대 성명 내용

"오늘(2016년 7월 19일) 나딕게임즈는 논란이 된 성우를 7월 19일 자로 교체하고 기존의 음성 수록 데이터는 모두 폐기하겠다고 공지했습니다. 뒤이어 최강의 군단을 서비스 중인 에이스톰 측에서도 게임 내에 수록된 해당 성우의 음성을 교체하겠다고 공지했습니다. 해당 성우는 하루아침에 두 개의 게임에서 하차하게 된 셈입니다.

해당 성우는 "Girls do not need prince"란 티셔츠를 입고 인증함으로써, 페미니즘 실천에 관련된 법률 지원을 위한 펀딩에 지원했음을 공개해 여론의 공격을 받고 있던 상황으로, 메갈리아로 특징되는 사이트의 존재에 대한 지지 발언이 이어지며 논란이 심화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연대에서는 해당 발언에 대한 검토 결과, 충분히 개인의 정치적 의사 표현과 정치적 신념으로 취급될 수준의 대응이었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동시에 이러한 활동이 반대의 목소리를 부르는 것이 한국 게임 소비 시장의 미소지니 적 특성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메갈리아라는 이름에 덧붙여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려하더라도, 성우의 해당 표현이 인간의 기본적 존엄이나 타인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했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동시에, 이번 계약 해지는 합의의 결과였음은 이미 보도자료로서 공개되었지만, 업계의 계약 관행 상, 클라이언트가 계약 해지를 먼저 요청할 경우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설령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합의되었고 수평적이었다 한들 이번 결정으로 말미암아 해당 성우 에게 평판 이슈가 남겨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남겨진 평판 이슈가 앞으로의 성우 활동에 제약이 될 것 또한 추론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번 일은 단순히 계약에 명시된 금액이 지불되었는지에만 관계된 문제는 아닙니다. 단편적인 이야기가 되지만, 이번 계약 해지로 앞으로의 업데이트 작업 등에서도 배제된 것이 되기에 단순히 녹음된 보이스가 수록되지 않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며, 향후 작업 수주에도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만약 나딕게임즈와 넥슨, 에이스톰에서는 직원이 메갈리아를 지지하고, 메갈4페이지로 이어지는 그들의 행보를 응원한다는 입장을 SNS에 표하면 이를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상황'으로 보아 해고하거나 인사상의 불이익을 가할 것입니까?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실에 출시되는 게임들이 올바름에 대해 제대로 담아낼 여유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게임 개발자는 그저 사업부의 판단 하에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제약당하고 또 계약이 철회될 수 있는 입장인 것입니까? 고용 문제와 계약 문제가 엄연히 다르다면 외주 작업 인력인 성우나 일러스트레이터 등은 그저 자신의 작업물을 제공할 뿐인 역할인 것입니까?

내가 싫어하는 것만이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탈 정치적 압력이라는 것은 또한 매우 정치적이기에, 이번 결정이 논란 그 자체를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근본적 해결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일은 엄밀히 말해 계약 문제이지 노동법의 이슈는 아닙니다. 한국 노동법은 도급 등의 특수계약에 대해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법의 허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법을 준수하는 것이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이익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목소리를 내고자 합니다.

하루 만에 이뤄진 넥슨의 결정, 회사 내외부의 뒤숭숭할 수 있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조치는 너무나도 급작스러웠고, 충분한 해명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 논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넥슨과 나딕게임즈는 좀 더 폭넓은 해명을 내놓아야 하고, 게임 외적인 판단이 개입된 이번 결정을 철회하거나 최소한의 반성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관련 보도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이미 수습에 실패했다는 의미입니다. 넥슨 측에서는 정치적인 선긋기를 원했던 것 같지만, 그 결정 자체가 굉장히 정치적이었음을 이젠 인정해야 합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시장 선도 기업으로서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아울러 지금의 논란에선 한 발 벗어나 있는 에이스톰 측에도 강한 우려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런 연쇄는 에이스톰이 마지막이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2016년 7월 19일 게임개발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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