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누구 한명 실려가는구나" '구로의 등대' 넷마블 퇴직자들 증언대회

2017.08.08 15:35 입력 2017.08.08 15:46 수정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넷마블 과로·공짜야근 증언대회 및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유진 기자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넷마블 과로·공짜야근 증언대회 및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유진 기자

“앰뷸런스(구급차)가 자주 왔다 간다. 오늘도 누구 한 명 실려가는구나 싶다.”

‘구로의 등대’로 불리며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넷마블 자회사의 한 퇴직자의 증언이다.

넷마블 자회사 퇴직자들은 8일 국회에서 정의당 이정미 의원과 무료노동부당해고 신고센터가 주최한 ‘넷마블 과로·공짜야근 증언대회 및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에 나와 넷마블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증언했다.

넷마블 네오 전 직원 ㄱ씨는 2014년 1월에 턴온게임즈라는 게임 개발사에 게임 기획자로 입사했다. 이 회사는 2015년 초 넷마블 네오로 합병됐다. ‘다함께 차차차2’ 개발을 담당한 ㄱ씨는 2015년 10월 회사를 나왔다.

ㄱ씨는 “게임을 준비하면서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밤을 새웠고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 직전 고강도 근무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돌입하면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을 했다”며 “넷마블 네오 재직 기간에 4∼5달을 그렇게 지냈다”고 주장했다.

애초 2014년 말로 예정된 게임 출시를 맞추기 위해 ㄱ씨는 2014년 10월부터 12월까지 크런치 모드로 일했다. 그러나 출시가 미뤄지면서 2015년 6월 직전까지 크런치 모드가 이어졌고 이에 따른 보상은 없었다는 게 ㄱ씨의 주장이다.

ㄱ씨는 “게임 개발은 여러 파트의 개발자들이 협업해야 하는 구조라 다른 팀원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마음에 책임감이 생긴다”며 “엄청난 압박 속에 밤을 새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크런치 모드 기간 일주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팀원들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감기가 유행병처럼 돌거나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고 줄기도 하고 ‘번아웃 증후군’에도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ㄱ씨는 “당시 팀원 중 한 분이 갑자기 쓰러져 몇 달간 휴직했고 복직해서도 금세 퇴사했다”며 “과로사로 돌아가신 분 이야기를 들었을 때 터질 것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넷마블 과로·공짜야근 증언대회 및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박준도 민주노총 서울남부지구협의회 무료노동신고센터 사무국장이 넷마블 전·현직 노동자들의 증언을 발표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넷마블 과로·공짜야근 증언대회 및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박준도 민주노총 서울남부지구협의회 무료노동신고센터 사무국장이 넷마블 전·현직 노동자들의 증언을 발표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전·현직 넷마블 노동자들의 증언과 제공 자료를 재구성한 내용도 발표됐다. 다음은 일부 증언 내용이다.

“3000억원 매출을 1조원 매출로 신장시킨 게 내가 재직했던 2014~2015년도 일이다. 중국에서 정말 고생했다. 하지만 우리 팀에 돌아온 건 권고사직이었다. 던전왕 중국 진출이 실패했다는 거다. 개별 면담을 통해 퇴직의사를 물어봤다.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고 하니까, 인사팀장이 자기는 밤새 일하라고 시킨 적 없다고 했다. 미련 없이 떠났다. 그 때 그만둔 직원이 40명이다.”

“그땐 한두 시간 쪽잠자면서 3~4일씩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100시간 동안 쪽잠 자며 일해본 적도 있다. 숙소에 가지도 못하고 일한 게 3일 정도 된다. 숙소에서 잤다고 충분히 쉬고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오전 5시에 들어가면 다시 오전 10시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4시간 정도 머리만 댔다고 다시 나오곤 했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이 기능 만드는데 며칠 걸리는지 개발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그러나 넷마블은 일정을 묻지도 않고, 우리 언제까지 끝내야 하느니, 이 일은 몇 일에 시작해야 하니 그 전에 끝내야 한다는 식으로 일정을 정해 알려 준다. 그 일정에 맞추다보니 100시간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잔채 일한 거다.”

“밤 12시 이전에 가면 빨리 간다고 했다. 밤 10시에 퇴근을 하면 ‘칼야퇴’라고 했다. 밤 10시에 가도 이미 12시간 일한 건데 눈치 본다. 늘 크런치 모드였다.”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의사로부터 ‘야근하지 마라. 스트레스, 혹사, 야근, 불규칙한 업무 하지마라. 주말에 쉬어라’ 등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난 야근할 수밖에 없었다. 넷마블에 있으면서 20kg 살이 빠졌다.”

“크런치 도중, 마감 전주에 한번 쓰러졌다. 새벽에 일요일 날 출근해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건강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입원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쉬었다.”

“엠브란스 자주 왔다 간다. 오늘도 누구 한명 실려 가는구나 싶다.”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 결국 터졌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모진 게 사람 목숨이라지만, 이렇게 일하다 보면 없던 병도 생길 수밖에 없다. 내 일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 생각부터 든다.”

박준도 민주노총 서울남부지구협의회 무료노동신고센터 사무국장은 “넷마블 전직 재직자들은 ‘개같이 일했다’고 소회한다”며 “2014∼2016년 노동자들은 월평균 주당 노동시간을 60시간 넘나들며 죽음의 문턱을 왔다 갔다 했다”고 말했다.

송예진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노무사는 퇴직자 13명의 교통비 지급기록을 기준으로 야근 수당 체불 규모를 추산한 결과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월평균 임금체불 규모는 550만원으로, 이 기간 전·현직 재직자 1500명의 2년간 임금체불 규모는 165억원 이상으로 각각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송 노무사는 “노동자가 시간 외 근무를 하면 사용자는 통상 시급의 1.5배를 지급해야 하지만 넷마블은 3000원대 수당을 지급하면서 평일, 휴일 관계없이 전·현직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로를 강요했다”며 “넷마블은 연장근로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넷마블 과로사 재발 방지, 3년치 체불임금 전액 지급을 위해 노동자 대표, 넷마블 대표,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 등 3자로 논의 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5월 2016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넷마블 계열사 12개사에 대한 근로 감독 결과 넷마블 노동자의 63%가 법정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해 일하고 있다며 연장근로수당 지급 등 44억원이 미지급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넷마블은 고용노동부의 시정 명령에 따라 44억원을 직원들에게 지급한 바 있다.

이후에도 임금체불 등의 논란이 되자 넷마블 권영식 대표는 지난 4일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넷마블게임즈와 해당 계열사는 지난 근로감독 이전 2개년에 대해 퇴사자를 포함한 전·현직 임직원들의 초과근무에 대한 임금지급을 9월 말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넷마블에서는 지난해에만 직원 3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7월과 11월 잇따라 직원이 돌연사했으며, 10월에는 한 직원이 사옥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6월 넷마블의 자회사인 넷마블네오에서 일하다 지난해 11월 숨진 ㄱ씨의 유족이 낸 유족급여 청구를 ‘업무상 재해’로 받아들여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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