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로힝야 난민캠프를 가다

살 나라도 안전지대도 잃어버린 이들을 위하여

2017.12.11 15:27 입력 2017.12.11 19:13 수정
콕스바자르|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 조국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가 나를 보호해주는 것이 물이나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가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도 모자라 재산을 몰수하고 눈앞에서 가족들을 죽인다면 계속해서 조국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난 4일 유엔난민기구(UNHCR)와 함께 미얀마를 탈출한 로힝야족 난민들이 모여사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쿠투팔롱 난민캠프를 찾았다. 지난 8월 발생한 폭력사태로 석달 만에 62만명이 넘는 로힝야족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 이전부터 30만명 이상 난민이 머무르고 있던 쿠투팔롱은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난민촌이 되었다. 로힝야 난민들은 위생, 식수·식량부족, 영양결핍 등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씨가 방글라데시 쿠투팔롱의 난민캠프 내 영상실조센터에서 식량통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힝야족 난민들은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콕스바자르|UNHCR제공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씨가 방글라데시 쿠투팔롱의 난민캠프 내 영상실조센터에서 식량통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힝야족 난민들은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콕스바자르|UNHCR제공

유엔난민기구와 네팔, 남수단, 레바논, 이라크에서 만난 난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의 최종 목표와 궁극적인 꿈은 안전해진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만난 난민 중 그 누구도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타국 땅에 계속해서 정착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는 난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점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노력해왔다. 우리는 난민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일시적으로 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로힝야 난민은 달랐다. 눈앞에서 가족이 총살당하고 갓 태어난 아기가 불타는 덤불로 던져지는 것을 봐온 사람들이다. 마을 주민 전체가 몰살되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보고 겪으면서 이들은 무엇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잊은 것 같았다. 로힝야 난민 중 그 누구도 선뜻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언제 다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들은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정우성씨가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캠프에서 로힝야족 조흐라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조흐라는 미얀마군에게 남편과 사위를 잃었다. 콕스바자르|UNHCR제공

정우성씨가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캠프에서 로힝야족 조흐라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조흐라는 미얀마군에게 남편과 사위를 잃었다. 콕스바자르|UNHCR제공

남편에 이어 사위의 죽음까지 목격한 뒤 세 딸과 피신한 어머니 조흐라(55)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그의 눈빛엔 거듭된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특유의 강단이 서려있었다. 남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자신처럼 남편과 사별해 혼자가 된 딸에 대해 말할 때도 조흐라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정우성씨가 로힝야족 난민 코티샤와 대화를 하고 있다. 코티샤는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이 미얀마군에 의해 총살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콕스바자르|UNHCR제공

정우성씨가 로힝야족 난민 코티샤와 대화를 하고 있다. 코티샤는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이 미얀마군에 의해 총살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콕스바자르|UNHCR제공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의 총살을 목격한 코티샤는 미얀마군이 로힝야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무자비한 탄압의 원인으로 늘 언급되는 것들이 있다. 미얀마가 로힝야에 대해 원한을 품을 수밖에 없는 많은 역사적, 정치적 이유가 거론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나 미얀마 군부의 무자비한 탄압은 대부분의 로힝야 난민들에게 이해할 수 없고 견디기 어려운 폭력일 뿐이다.

쿠투팔롱의 난민거처들은 매우 빽빽하게 줄지어 있어 화재가 날 경우 대형 연쇄피해가 우려된다. 난민들이 급증하면서 땅이 부족해지니 집과 집 사이가 이렇게 좁아진 걸 거라고 추측했는데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박해와 폭력에 시달린 로힝야 난민들은 누구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가능한 그 사람들 가까이에 집을 짓고 밀접하게 교류하며 조금이라도 안정을 느끼고자 한다고 현지 유엔난민기구 직원이 설명해줬다.

정우성씨가 유엔난민기구 관계자와 함께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캠프를 돌고 있다. 콕스바자르|UNHCR제공

정우성씨가 유엔난민기구 관계자와 함께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캠프를 돌고 있다. 콕스바자르|UNHCR제공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캠프의 모습. 콕스바자르|UNHCR 제공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캠프의 모습. 콕스바자르|UNHCR 제공

낭만적인 낙관론이 끼어들 틈도 없었다. 그동안 많은 난민들을 봐왔지만 로힝야 난민들처럼 암담한 삶은 처음이었다. 난민들은 쿠투팔롱에서 가까스로 안전을 되찾았지만 이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들을 위로하며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유엔난민기구와 같은 인도주의 구호기구들이 있고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각 정부가 입장을 조율하며 정치적인 해결책을 찾는 동안에도 난민들은 희생은 계속된다. 그간의 사정이나 이유를 묻지 않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유엔난민기구와 같은 인도주의 구호기구들의 활동이 없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더욱 큰 비극들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도주의적인 보호가 여러분과 나와 같은 사람들이 로힝야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정우성씨가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캠프에서 로힝야족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다. 콕스바자르|UNHCR제공

정우성씨가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캠프에서 로힝야족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다. 콕스바자르|UNHCR제공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직접 난민촌을 방문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잔인성, 난민의 처참한 생활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이들을 보호해야 할 이유에 대해, 유엔난민기구의 역할에 대해 결코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나는 무척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감사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같은 인간으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난민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을 취해야만 하는 당위성과 시급성이 조금이라도 전달되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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