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등짝에 볼트 모양 흉터, 2년 지났는데도 그대로 있어요”

2012.06.17 22:09 입력 2012.06.18 00:37 수정

[쌍용차 해고자의 눈물](1) 죽음의 유혹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 8가지 구조신호

“솔직히, 아무나 때리고 싶고 막 패고 싶은 마음 간절해요”

쌍용자동차 해고자·배우자와 진행한 집단 상담은 이들이 겪고 있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치유할 목적으로 시작됐다.

‘숨결보고서’에 나타난 이들의 삶과 일상 속에는 죽음의 유혹과 위협이 깊숙이 도사리고 있었다. 쌍용차 사태 이후 숨진 희생자 22명의 죽음이 결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경향신문은 참여연대와 함께 ‘숨결보고서’ 게재를 시작으로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의 현황과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화가 최병수씨가 지난 4월16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22번째 희생자 추모 문화예술인 기자회견’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설치작품을 만들고 있다. | 뉴스1

화가 최병수씨가 지난 4월16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22번째 희생자 추모 문화예술인 기자회견’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설치작품을 만들고 있다. | 뉴스1

제자리에서 튀는 기억들 ②

“남편 등짝에 볼트 모양 흉터, 2년 지났는데도 그대로 있어요”

“어떤 장면들이 자꾸 떠올라요. 애들하고 천막에 앉아서 뒤늦은 점심을 먹는데 헬리콥터가 떠서 모래바람이 일어서 밥을 먹지도 못하고 놀란 애들을 가슴으로 이렇게 아이들 감싸고 그랬던 기억들…(긴 울음).”(배우자 ㅁ씨·40)

“그때 경찰특공대가 공장에 들어가서 진압하는 장면이 아마 MBC 9시 뉴스에 나왔을 거예요. 기절해서 의식이 없는 사람들을 계속 찍고 때리고. 그거 무서웠어요. 화도 났지만 겁나더라고요. 그렇게 머리가 탁 ‘떨궈지는’ 상태인데 잘못 뛰면 떨어지잖아요. 결국 떨어졌지요. 저러면 죽을 텐데. 근데 그런 거 아랑곳없는 거예요. 막 몰아가는 거 있잖아요. 경찰은 한 명이 잡히면 새까맣게 달려들어 그 위에서 막 두들겨 패고 그렇게 잡힌 사람들은 다 현행범인 거예요. 저희 애기 아빠도 나왔을 때 등짝에 이렇게 멍이 있더라고요. 볼트 모양과 똑같이 생겼더라고요. 나사 빗금도 이렇게 그어져 있어요. 옥상에서 뛰다가 등에 딱 맞았대요.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대로 있어요. 그 볼트 모양 그대로. 정말 도장 찍은 것처럼. 옅어지지 않고 그대로 등에 이렇게 있거든요.(흐느낌) 그날이 생각나요.”(배우자 ㅋ씨·40)

“파업 때 애들을 데리고 앉아 있었는데 너무 이상한 욕을 막 하더라고요. 파이프를 막 던지면서 니들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다, 죽게 생겼다, 속이 시원하냐. 저는 애기들이 있었으니까 그러지 말아달라고. 그런데도 생수병 같은 데다가 돌을 넣어 막 던지고, 쇠파이프도 막 집어 던지고 욕도 막 하고. 니들 때문에 다 죽는다고. 너무 화나요.”(ㅋ씨)

“파업 끝내고 쌍용차 파업에 대한 백서 뭐 이런 책이 나왔는데 남편이 마음에 안든다 하더라고요. 그 안에서 77일간 파업했던 노동자들을 영웅처럼 대단한 싸움꾼으로 표현했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요. 본인들은 정말 무섭고 두려웠는데 그런 본인들의 마음을 썼으면, 그런 이야기들을 쓴 게 있었으면… 뭐 이러더라고요. 그 얘기 들으면서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아, 정말 무서웠겠구나.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해 봤을까. 그제야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ㅁ씨)

끝없이 무기력하다 ③

“남편 등짝에 볼트 모양 흉터, 2년 지났는데도 그대로 있어요”

“저는 맨날 내가 벗어 놓은 빨랫감인 거 같아요. 퇴근하고 오면 어쩔 수 없이 애들 저녁 해먹이는 거 말고는 아무 거에도 기(氣)가 없어요. 그냥 빨랫감처럼 쓰러져 자고 출근 시간되면 시계처럼 일어나서 나가고. 어쩔 수 없이 출근하고 와서 밥 먹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저는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 외에는 아무것도 뭘 할 수가 없어요.”(배우자 ㅅ씨·42)

“요즘은 애들보다 제가 먼저 자는 날이 더 많아요. 애들 방에 불 다 켜놓고 애들은 그냥 내 옆에 쓰러져 자고. 예전 같으면 애들 시험기간이면 공부 좀 봐주고 이래야 되는데 안되니까. 그 원인을 나도 잘 모르겠어요. 단지 피곤하고 체력이 안 되어서 그런 건지, 귀찮아서 그런 건지.”(ㅅ씨)

“아, 막 미치겠어요. 솔직히 집에서 혼자 많이 울어요. 혼자 술 먹는 놈이 아닌데. 그때 이후로 작년 가을부터 혼자서 술 많이 먹어요. 몸에 자해까지 해요. 우리 집 문이 총 4개인데 딱 두 개 남았어요. 애들 방 하고, 화장실 문 하고요. 화장실 문은 도저히 못 때려 부수겠더라고요. 진짜로 미치겠어요. 그걸 수리해야 되는데 수리할 돈은 없고…”(해고자 ㄹ씨·43)

“술을 먹고 나면 잘 자는 거 같아요. 근데 거의 매일 먹다시피 하니까 일어나도 피곤해요. 요즘은 자꾸 주변에서 알코올 중독이라는 그런 말을 들어요. 기억력이 없어서 솔직히 일주일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는 게 몇 개 없어요.”(해고자 ㅇ씨·38)

“시끄러운 노동가요 같은 것을 안들으면 안정이 안돼요. 시끄러워야만 집중이 되는 거예요.”(해고자 ㅈ씨·52)

“솔직히 파업 때 일들 자꾸 기억하기 싫어요. 잊으려고 노력하는데 자꾸 떠올라 그게 되게 싫어요. 그러니까 남들 얘길 들으면서도 자꾸 잊어버리려고 다른 생각을 해요. 그러다보면 무슨 생각했는지도 금방 까먹어요. 까먹어서 무슨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해고자 ㅊ씨·44)

무능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④

“남편 등짝에 볼트 모양 흉터, 2년 지났는데도 그대로 있어요”

“제가 ‘PD수첩’ 인터뷰를 하면서 많이 울었는데, 그게 싫은 거예요. 제가 힘들게 사는 모습을, 우는 모습을 가족이, 또 친구들이 고향에서 그걸 본다는 게 싫더라고요.”(ㅇ씨)

“제 자신이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일단은 옛날 같지 않게 가격표 먼저 딱 봐요. 집사람이 3000원짜리 싸게 샀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집사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집에 오니까 (울음소리가 커짐) 제가 초라한 거예요.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나 싶은 생각도 들고 내가 마음 편하게 집사람 옷 하나 못 사준다는 이런 생각도 들고. 애들 옷도 못 사주는데 이게 내가, 이게 아버지가 맞나 싶은 생각도 들고(울음).”(해고자 ㅌ씨·37)

“지금은 남편에게 미움이 더 많아요. 그동안도 힘들었는데 왜 날 계속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그래요. ‘나는 투쟁 필요 없다. 애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풀빵 장사해도 좋으니까 당신 일 찾아달라. 당신이 10만원 벌어오든 20만원 벌어오든 돈 벌어 오고 지금처럼 법적투쟁 같은 거 하는 거 원치 않는다.’ 힘들게 집 장만하고 애써서 밥벌이하며 그렇게 왔는데 해고되면서 집 팔고(한숨).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 많이 들더라고요. 남편이 일찍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그거 말고는 바라는 거 없어요, 저는 지금.”(ㅅ씨)

“새벽 2시에 들어와서 아내와 얘길하다가 ‘혹시 지금의 생활이 죽 이어지거나 생계에 어려움이 있거나 그러면 이혼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렇게 한번 제가 물어봤는데 그걸 큰녀석이 안 자고 들은 거예요. 얘가 늘 저 들어오는 시간까지 예민하게 깨어 있는데 그날도 그러다가 그 이야길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아침에 큰녀석이 학교 가면서 어제 아빠가 한 이야길 듣고 자기는 잠을 못 잤다고 얘기하는데….”(ㅊ씨)

“저는 우리 아이들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하는 것이 많이 신경 쓰여요. 솔직히 먹이는 거 하나도 제대로 못 먹이면서, 아빠가 해직돼서 애 옷 하나 제대로 못 챙겨준다고 할까봐 신경 엄청 쓰는 거죠. 사실 먹는 거는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남들이 잘 모르지만 옷은 금방 티나잖아요. 그러니까 애 가슴에 못 박고 상처 주고 두들겨 패면서도 외출할 때는 옷 깨끗하게 좋은 거 입혀서 나가고. 그러니까 그게 진짜 가면인 거죠.(흐느낌)”(ㅋ씨)

아무도 내 고통을 모른다 ⑤

“남편 등짝에 볼트 모양 흉터, 2년 지났는데도 그대로 있어요”

“그전에 회사 잘 다니고 있을 때는 빨갱이 아니었는데 회사 잘리고 빨갱이 됐어요. 그렇더라고요. 옛날엔 처가 쪽 모임이 좀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안 해요.”(해고자 ㄷ씨·35)

“가족들끼리 만나서 주말에 놀고 밥먹고 휴가도 같이 다니고 그랬는데 시댁이고 친정이고 가족들 어느 누구도 애기 아빠를 편들어 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애기 아빠는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야 오래 걸려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가족들 어느 누구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식인 거예요.”(ㅅ씨)

“쌍용에 관한 얘기들은 여기 쌍용을 같이 겪었던 사람들 말고는 아무에게도 얘기를 못하겠어요. 가까운 친정 식구들이나 시댁 식구들, 친하게 지냈던 이웃 애기엄마나 아무한테도 이 얘기를 못하겠다는 거예요. 이제는 가족들한테는 얘기를 꺼내고 싶지만 ‘거봐라 엄마 아빠가 그래 파업 그만 참여하고 나오라고 할 때 그만두고 나왔으면 이렇게 니네가 고생 안 했을 텐데 그때 말 좀 듣지’(흐느낌)… 그런 얘기를 들을까봐 안 해요.”(ㅁ씨)

“주위 사람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힘들다는 얘기를 못하겠더라고요. 해고된 게 그까짓 게 뭔데. 해고된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니고 세상에 천지인데… 그런 마음이 들어서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자꾸 닫고 살았다는 느낌이 들어요.”(ㅂ씨)

“아무한테도 얘기를 못하겠더라구요. 얘기를 꺼내봤자 제가 느끼는 그 아픔의 깊이라고 해야 되나 그걸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겪었던 일들을 직접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제가 왜 힘들어 하는지, 얼마만큼 힘들었는지, 이해를 못할 것 같아서 얘기를 꺼낼 수가 없고, 주위 사람들도 저한테 먼저 그런 얘기를 물어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파업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얘기 할 곳이 없더라고요. 계속 속으로 속으로만.”(배우자 ㄱ씨·35)

“지난번에 제가 ‘사실은 통장에 36만원 남아 있다’ 그렇게 말했잖아요. 제가 그만큼 사정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근데 그때 이 형이 상담 끝나고 ‘돈이 얼마가 필요한데’ 자꾸 그런 식으로 물으니까 막 성질이 나요. 내가 돈 얻어 쓰자고 한 얘기가 아니거든요.”(ㄷ씨)

쌍용자동차 사태가 본격화되던 2009년 1월 쌍용차 노동조합이 평택공장에서 주최한 집회에 아빠와 함께 참가한 어린이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쌍용자동차 사태가 본격화되던 2009년 1월 쌍용차 노동조합이 평택공장에서 주최한 집회에 아빠와 함께 참가한 어린이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너무 억울하다 ⑥

“남편 등짝에 볼트 모양 흉터, 2년 지났는데도 그대로 있어요”

“파업 때 남편이 일주일가량 의식 없이 자기 호흡으로 숨을 못 쉬었거든요. 그러다가 조금 정신을 차려서 저하고 눈만 마주치면 우는 거예요. ‘왜 울어?’ 그러면 울음이 복받쳐 숨을 막 몰아쉬고. 분한 게 되게 컸던 거 같아요. 자기는 당당하게 걸어 나올 줄 알았다고 나중에 이야기하더라고요. ‘난 내가 이렇게 저 ××들한테 잡혀 나올 줄은 몰랐다. 내가 저 ××들 어느 한 놈이라도 두드려 눕히고서 잡혔으면… 그런데 한 놈도 못 두드려 눕히고. 저 ××들 나쁜 ××들….’ 욕을, 욕을 하더라고요.”(배우자 ㅍ씨·43)

“제가 국회하고 정부청사 앞에서 피켓을 딱 들고 ‘정부는 답하라’ 그러고 있으면 정부가 답할까. 이런 정권하에서. 실제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거냐. 우리가 끊임없이 뭔가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정도지 이것이 실제 그 상황이 바뀌거나 우리의 문제가 금방 해결될 거라고 보지는 않거든요. 그래도 할 거예요. 억울하니까.”(ㅇ씨)

“이대로 그만두기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죠. 우리가 너무 억울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그리고 다시 남편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거봐라, 이렇게 힘을 합치니까 이길 수 있는 거다’ 그런 것들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가족들한테도 그렇고, 우리에게 손가락질하던 산 자들한테도 보여주고 싶고, 싸움이 힘들어서 포기했던 사람들, 조합원들한테도 그 가족들한테도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어요, 정말로.”(ㅍ씨)

“조합원들이 전에도 얘기했지만 복직되면 하루 근무하고 사표 쓰고 나오고 싶다고 그런 얘기 많이 하거든요.”(ㅋ씨)

“남편이 복직해서 단 하루라도 작업복 입고 출근하더라도 다시 들어가야 해요. 억울해서.”(ㅂ씨)

때때로 분노가 솟구친다 ⑦

“남편 등짝에 볼트 모양 흉터, 2년 지났는데도 그대로 있어요”

“쌍용 재판을 보다가 화가 치밀어올라 죽여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참았다가 집에 가서 술 먹고 혼자 베란다 창문 열고 소리 지르곤 해요. 그러면 집사람이 환장하죠.”(ㄷ씨)

“남편을 안 만났으면, 저 사람이 그렇게 파업 안 하고 그랬으면 이렇게 힘든 걸 안 겪었을 텐데,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그런 마음이 들어요. 그러다가 저 사람이 너무 가엽고 안쓰럽고 또 그러다가 저 사람 아니면 내가 이렇게 힘들 이유가 없는데 하는 생각에 저 사람이 너무 밉고.”(ㅅ씨)

“회사를 차로 밀고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요. 안된다 안된다 절제를 하지만 안돼요. 그럴 때 보면 내 자신이 불쌍해 보이고 이렇게 평생 살아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ㅇ씨)

“정말 때리고 싶고 막 패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요. 솔직히요, 저는 그냥 밟아 죽이고 싶어요. 주먹 그런 게 아니라 발로 밟고 싶은 거야 그냥.”(ㄹ씨)

“이 나라에서 내가 법적용만 안된다면 진짜 낫을 들고 가서 모가지를 다 쳐버리고 싶어요. 하나하나 잡고. 지금도 회사는 사랑하지만 회사에 출근하는 ××들은 낫 들고 가서 모가지도 쳐버리고 손모가지도 자르고 싶은 심정이에요. 항상 그래요.”(ㄷ씨)

“세상에 환자복 입은 남편에게 경찰이 범죄자라는 거예요. 말도 안되는 거지(크게 울음). 제가 신랑 나오면 경찰서에 불 질러버리고 싶었어요.(울음)”(ㅍ씨)

“억울하죠. 귀족노동자라는 말 정말 싫어요. 스트레스로 인해서 돌아가신 분들 얘기가 나올 때마다 죽은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하고, 더구나 당신들만 그런 경험한 거 아닌데 자살하는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말들이오.”(ㅂ씨)

사람을 믿을 수 없다 ⑧

“남편 등짝에 볼트 모양 흉터, 2년 지났는데도 그대로 있어요”

“파업 때 남편 아는 사람이 자신을 향해 새총을 겨누고 있었대요. 그 생각만 하면 그 얘기만 하면 자꾸자꾸 눈물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아,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ㅋ씨)

“친한 친구였었는데 구사대로 들어왔어요, 밤에. 복직하면 그 ×× 두들겨 패주고 사직서 쓰고 나와버려야죠.”(해고자 ㄴ씨·40)

“해고되지 않은 사람들이 공장 앞에서 집회를 했었거든요. 어제까지 같이 밥 먹고 회사에서 야유회 가면 웃으면서 고기 먹던 사람들인데… 공장 안 동료들을 향해서 얼른 파업 끝내고 물러가라고 구호 외치는데 너무 속상한 거예요. 제가 그래서 그분들한테 그랬거든요. 저 아시냐고요. ‘저 누구누구 아내되는 사람인데 기억하시죠.’ 인사했어요. 그러시지 말라고. 다음부터는 이런 자리에서 서로 마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지금 임신을 하고 애기가 셋인데, 남편이 이렇게 거리로 내몰리면 우리 어떻게 사느냐고, 이런 자리에 나오시지 말라고 그런 얘기를 했어요.”(ㅁ씨)

“6학년 전체가 180명이 넘는 인원인데 수학여행 가면서 5명만 숙박비 지원을 받는 거예요. 우리 큰애가 그중 하나인 거예요. 아이는 물론 모르죠. 남편도 몰라요. 그냥 수학여행 간 줄 알지. 지원받아서 간 거는 남편한테도 말을 못해요. 그러고 있는데 2학년인 둘째아이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먹을 간식 넣어달라고 철없이 구니까 화가 난 거예요. 아들 생일이었는데(울음). 순간적으로 서럽고 기막혀서 다른 핑계 대면서, 옆에 아이 책가방에서 꺼내놓은 책이 있길래 그걸로 막 때렸어요. 때렸는데 애가 울지도 않아요(긴 울음). 그냥 못 해주면 말지 왜 때렸나 싶어요. 제일 어리고 만만한 상대니까 화풀이를 하는 거죠.”(ㅋ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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