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용병, 임진왜란에 참전하다

“전하. 얼굴이 다른 ‘색다른 신병’을 소개하겠습니다.” 정유재란 때인 1598년 5월, 명나라 장수 팽신고가 선조에게 ‘신기한’ 용병을 소개했다. 다음은 <선조실록> 기자가 쓴 인상착의이다.

“노란 눈동자에 몸 전체가 검었다.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검은 양모(羊毛)처럼 꼬부라졌다. 일명 ‘해귀(海鬼·바다귀신)’라 했다.”

팽신고는 “이들은 바다 밑에서 수중동물을 잡아 먹으며 적선의 밑을 뚫어 침몰시킬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 신병은 파랑국(波浪國·포르투갈) 출신 흑인 용병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수중폭파대원’?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흑인용병, 임진왜란에 참전하다

흑인 용병의 존재는 1599년 2년 명나라 군의 철수를 기념하여 그린 ‘천조장사전별도(天朝將士餞別圖)’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림·민속원 제공). 왜병들도 ‘엄청난 수의 해귀가 출전했다’는 소문에 두려움에 떨며 서둘러 철군 준비에 나서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하지만 용병의 전과는 신통치 않았다.

“명군은 수십 종류의 해귀(海鬼)를 이끌고 나왔지만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했다. 왜 해귀를 시켜 물속으로 들어가 왜선을 침몰시키도록 하지 않았을까.”(<성호사설>)

재주 한 번 써볼 기회도 없이 ‘퇴출용병’의 신세가 됐으니 말이다. 한데 ‘수십 종류’라는 표현이 몹시 귀에 거슬린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흑인’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콧대가 높아 위로 이마를 관통했습니다. 코~귀 사이는 살구씨 모서리를 깎은 것 같습니다.”

1797년 부산 용당포에 정박한 이양선의 ‘코쟁이’ 서양 선원들을 묘사한 표현이다. 1653년 제주도로 표류한 하멜 일행의 인상착의 또한 요절복통이다. “(코가 하도 커서) 물을 마실 땐 코를 뒤로 돌리고 마신다”(<석재고>)고 했으니…. 오죽했으면 실학자인 이덕무마저도 “네덜란드 사람이 오줌을 눌 땐 늘 한 쪽 다리를 들고 눈다”(<편서잡고>)고 오해했을까. 조선인을 바라보는 서양인들의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네덜란드 출신 귀화인인 박연은 “고려인들은 인육을 구워 먹는 줄 알았다”고 전했다. 그랬으니 ‘밤에 횃불을 든 조선인을’ 보고 자신들을 구워 먹으려는 줄 알고 대성통곡했다.

이것은 ‘약과’다. 기원전 1300년 무렵의 은(상) 갑골문에는 “백인을 잡아 요제(燎祭·불에 태우는 제사)를 지낼지(燎白人)”를 묻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백인은 단지 피부색깔이 하얗다는 이유로 제물이 된 것이다. 그러고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가장 무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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