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에 서서

노무현과 차베스 - 오늘의 사회개혁

2004.09.01 17:20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더러 마주치게 되는 외국인이 당신들 나라의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럴 때 나는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짐작이 될 것이라고 답한 일들이 있다. 그것은 두 대통령이 똑같이 시장 경제의 방종에 고삐를 매고자 하는 진보적 정책을 추진할 정치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진보정책은 공산주의는 물론 사회주의적 사회 개혁 방안까지도 쉽게 차용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적 상황 속에서 생각되어야 하는 진보정책이다.

최근에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야당이 발의한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를 겪어야 했는데, 이것까지도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와 비슷한 것이 되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버텨낸 것처럼 차베스 대통령도 지난 8월15일의 국민투표에서 58.25%라는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자신의 지위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개혁의지 ‘닮은꼴 다른 길’-

물론 두 대통령 사이에는 유사점과 동시에 차이점도 있다. 한 나라의 사정이란 그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또 그곳에서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국민투표 전후의 외지들의 보도는 대체로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그의 탄탄한 업적에 근거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5년여의 집권 기간중 그가 추구한 것은 사회개혁이었다. 대지주 독점 농지 소유제의 형평화, 주택환경과 의료환경의 개선, 문맹퇴치 운동을 중심으로 한 교육 혜택의 확산-이러한 것들이 그의 정부의 주된 목표들이었다. 여기에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의 광범위한 지지가 있었던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어떤 통계에 의하면, 베네수엘라의 빈곤층은 인구의 70%에 이른다.)

그러나 핵심은 사회 발전에 두면서도 차베스 정책은 더 넓은 의미에서의 국가의 균형 발전을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수력 발전을 위한 댐의 건설, 철도 시설의 개선과 확장, 새로운 국영 항공사 설립과 같은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도 정부 정책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직접적으로 사회적 위상과 생활수준의 향상을 경험한 빈곤층은 물론 그 외에도 국가의 조화된 발전을 생각하고 또 그 장애물의 하나로 사회적 불균형을 걱정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자들이 많았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차베스 정부가 실질적인 업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뒷받침할 만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냉소적 관찰은 그간 세계를 휩쓴 석유 값의 폭등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설명한다. 베네수엘라는 중동이나 러시아에 비교되는 산유국가로서, 그 석유매장량은 중동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맞먹는다고 한다. 이러한 나라에 그간 치솟은 석유 값이 거대한 세수 잉여를 가져다 준 것이다.

그러나 찾아온 행운을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차베스 정부는 처음부터 사회발전을 위한 자원이 석유와 같은 국가 기간산업에 의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정책은 출발부터 석유 수입의 막대한 부분을 독점하던 미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 외국 석유 회사의 전횡을 견제하고 수입의 보다 많은 부분으로 하여금 베네수엘라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 회사로 넘어오게 하고 그것을 사회정책의 자금으로 활용할 것을 겨냥했었다. 그러면서도 국가 발전을 위하여서는 계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외국 회사들을 완전히 소외시키지 않도록 노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의 계속적인 투자를 호소하였다. 이러한 준비가 석유가의 상승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사회의 모든 문제가 얼마간의 사회 정책으로 다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현상에 대한 보도는 부패, 실업, 치안불안 등의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또 베네수엘라가 완전히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라고 말하기는 어려울는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제도이면서 사회 기풍이다. 사법제도의 조종, 그리고 격렬한 선동적 언어에 의한 위협 분위기의 조성 등이 정치공작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것도 지적되고, 차베스 대통령의 인품은 대체적으로 ‘거친’ 사람으로 평가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차베스 정부의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는 확실한 것으로 말하여진다. 지난번의 국민투표 직전에는 영국의 정치인 토니 벤(노동당 전 의원)과 켄 리빙스턴(런던 시장), 그리고 지식인 해럴드 핀터와 에릭 홉스봄을 포함한 국제적인 인사들이 지지성명을 발표하였고, 국민투표 이후에는 지미 카터가 이끄는 국제 감시단이 투표의 공정성을 확인하였다.

-차베스 ‘비전’ 현실화 착착-

우리나라의 형편으로 돌아와 볼 때, 우리는 차베스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비슷한 점과 함께 차이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되풀이하여 말하건대, 두 정부는 두 나라의 역사적 궤적에서 기묘하게 비슷한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출발점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그 주변의 인사들도 사회정책에 대한 의지를 엿보이게 하는 발언들을 많이 하였지만, 엿보일 뿐인 정서는 하나의 정치적 비전으로 통합되지 않았고, 일관된 정책으로 추구되지도 아니하였다. 지금의 정부가 서민 생활을 위한 시책을 펴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것이 어떤 종합적 삶의 이상으로 또는 오늘의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방안으로 제시된 바는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정한 간격으로 발표된 거대 계획들-국민 개인 소득 2만달러 달성, 수도 이전, 동북아 경제 거점 건설, 과거사 청산 등과 같은 것들이 이 정부가 생각하는 주요 과제들이었다. 이러한 추상적으로 들리는 과제들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알기 어려운 것은 이것들이 종합적으로 어떻게 오늘의 삶에 관계되고 또 미래로 이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결여되어 있는 것은 정부의 일들을 하나의 사회 투시도로서 납득할 수 있게 해주고 우선순위를 알 수 있게 하는 일관된 비전이다. 물론 이것은 현실에 밀착되고 그 관점에서 타당성을 가진 것이라야 한다.

-참여정부 실천결여 ‘차이’-

베네수엘라와 한국의 처지가 같을 수는 없다. 두 나라 사이의 역사적 사회적 조건의 차이는 크고 두 나라의 국민이 원하는 삶의 이상도 매우 다른 것일 것이다. 그러니 해야 할 일도 전혀 다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한국에서 이루어질 수 없고, 아마 그렇게 되어도 아니될 것이다. 그러나 미래나 이념보다는 오늘의 현실에 작용하는 것이 정치라는 점에서는 두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같다고 할 것이다. 이번의 베네수엘라 국민투표와 관련하여 나온 보도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진보적 성향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차베스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유사하지만, 차베스 정권이 나라의 현실을 일정한 장래로 묶어주는 총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 데 대하여, 우리 정부는 집권 2년에 가까이 가는 지금의 시점에서도 그러한 현실적 계획을 제시 또는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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