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문화 활성화 도움” “문화 양극화 부채질 우려”

2008.01.01 17:36

문화예술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아온 문화접대비 제도가 시행 5개월째를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문화산업을 통한 경제성장론’을 주장하며 “문화 콘텐츠 분야를 보강하면 대한민국 경제 7%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해온 만큼 새 정부의 문화예술지원 정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화접대와 관련해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문화접대비 제도는 2008년까지만 적용되는 한시적 특례법으로 연장 여부도 관심사다. 문화접대비가 시행되면서 이를 둘러싼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서울연극협회장 겸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뮤지컬 제작사 신시 박명성 대표와 문화관광부의 문화접대비 제도 마련에 참여한 한미회계법인 김성규 대표가 지난 30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문화접대비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미회계법인 김성규 대표(오른쪽)와 서울연극협회 박명성 회장이 지난달 30일 문화접대비 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재찬기자

한미회계법인 김성규 대표(오른쪽)와 서울연극협회 박명성 회장이 지난달 30일 문화접대비 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재찬기자

김성규 한미회계법인 대표(이하 김성규)=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많은 아이디어가 꾸준히 논의되어온 것으로 압니다. 예술단체를 대상으로 한 세제혜택이나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금의 세액공제 등도 거론됐죠. 이중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문화접대비는 기업의 문화소비를 늘리게 함으로써 문화예술단체가 간접적으로 지원을 받게 하는 방법으로 문화계 활성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기존에 지출하고 있는 향응 접대비의 성격을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데도 의의가 있죠.

박명성 서울연극협회장 겸 뮤지컬 제작사 신시 대표(이하 박명성)=문화부가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공연 관계자로서 반기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문화접대비 시행이나 대학로 소극장 안전시설에 대한 지원 등도 정부와 현장의 원활한 의사소통 덕분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화접대비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성규=문화접대비에 대한 공연계의 이해가 아직 부족한 듯합니다. 이 제도는 실제로 기업이 대단한 혜택을 받는 제도가 아닙니다. 기업이 지출하는 총 접대비 중 문화접대비 지출이 3%를 넘으면 접대비 한도액의 10%까지 추가로 손비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문화접대비를 계기로 기업이 문화계에 좀더 관심을 가지도록 하고 문화 관련 단체들이 기업을 상대로 홍보·마케팅하기에 좋은 여건을 마련해준다면 그것으로 성공적이라고 봅니다.

박명성=하지만 대학로는 상대적으로 소외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기업은 대형 공연장의 유명 공연물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게 사실이니까요. 연극인들이 문화접대비의 수혜가 소극장 공연물로 옮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가뜩이나 대학로가 문화지구로 지정된 후 오히려 연극인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형편입니다. 유흥업소가 늘어나면서 대학로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올라 연극인들이 쫓겨나는 신세가 됐습니다. 게다가 갈수록 뮤지컬 제작사들이 장기 임대하거나 개그쇼 공연이 소극장들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김성규=앉아서 하소연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접대비가 한 해 5조원에 이릅니다. 이중 1%만 문화접대비로 돌려도 연간 500억원입니다. 공연계에서 ‘설날 선물로 공연티켓을 보내자’ 이런 식의 캠페인을 앞장서서 만들어야 합니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접대용으로 오페라나 뮤지컬 공연만 팔리는 데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불평합니다. 그런데 예술단체에 골고루 혜택을 주는 제도는 기본적으로 없습니다. 예술단체 10~20%가 혜택을 받는 제도가 있다면 훌륭한 제도죠. 그만큼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기 이전에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은 매출 규모에 비해 접대비 지출이 큽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대학로는 중소기업을 타깃으로 더욱 적극적인 마케팅을 할 수도 있는 거죠.

박명성=그런데 공연 현장에서는 기업이 문화접대비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문화접대비 지출 3% 선이 크지 않다보니 회계상 번거로움을 피해 기존 마케팅비에서 계산하는 것이죠. 실효성을 거두려면 3% 선을 더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성규=사실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문제는 문화부뿐 아니라 재경부 등 다른 부처와도 협의해야 하는 일이고요. 또 일부에서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후원·협찬금에 세제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그것도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업에서는 후원·협찬금에 따른 세제혜택 등을 바라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기업이 협찬금만큼 티켓을 가져간다고 해서 비난을 받고 있는데 협찬에 상응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못하는 문화예술계의 책임도 크다고 봅니다. 다른 얘기입니다만 국내 한 해 기부금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모든 분야를 망라해 7조원이라고 합니다. 그중 문화예술계로 모아지는 기부금이 꼴찌입니다. 기부하는 주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기부를 이끌어내는 문화예술계의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문화접대비도 활용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명성=자성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내놓으면 활성화 방안은 생각지 않고 무조건 반대하고 나선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올해 문화부가 시행하기로 한 ‘공연 원가’ 조사에도 반대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찬성하지만요. 사견입니다만 배우들의 출연료, 홍보비, 극장 대관료 등이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한탕주의로 공연계에 뛰어드는 장사꾼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러면 티켓 가격도 낮아질 수 있고 투자 유치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김성규=투명성은 앞으로 공연계의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공연단체에 기부하거나 투자한 돈이 어떻게 쓰이고 얼만큼 이익을 거둬들이는지 모른다면 누가 나서겠습니까. 실제로 회계계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다만 ‘공연 원가’ 조사에 앞서 제작비에 대한 개념정립과 기준이 명확해야 합니다. 문화접대비와 관련해 아쉬운 것은 제도와 관련한 오해입니다. 몇달 전 서울시립오페라단이 공연 1회분 전량을 신세계에 판매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시민의 볼거리를 빼앗겼다’느니 ‘기업이 고가 티켓을 양산하고 있다’ 등등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나머지 4회분의 유료석 점유율이 높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기업의 티켓 구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도 문제입니다.

박명성=결국 우리 스스로 제도를 활성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연극협회와 문화부가 함께 구축하고 있는 ‘통합마케팅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된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는 대학로에서 무슨 공연이 올려지고 어떤 작품이 좋은 공연인지 모르잖아요. 이 시스템은 기업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해서 해당 기업의 성격에 맞는 문화맞춤 프로그램까지 가능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열악한 재정으로 따로 홍보·마케팅을 할 수 없는 대학로 극단과 극장 입장에서는 좋은 계기 마련이 될 것 같습니다.

김성규=그런 시도가 중요합니다. 예술단체, 작품별 지원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죠. 근본적으로 예술단체가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박명성=올해 서울연극제를 펼치면서 소극장 축제를 같이 할 계획입니다. 연극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겠지요. 소극장 축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업의 참여도 이끌 생각입니다. 결국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대학로를 살리는 진정한 길입니다. 순수 연극이 자생력을 갖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이죠. 연극 기반이 탄탄해야 뮤지컬 등 다른 장르도 미래가 있는 것이니까요. 지금 뮤지컬계는 낭떠러지에 서 있는 형국입니다. 이제 창작품을 만들어야 할 때인데 벽에 부딪혀 있는 셈입니다. 그동안 인재를 키우지 못한 것이 이제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죠. 대학로에도 로맨틱 코미디가 넘쳐납니다. 문제작, 화제작이 없는 실정이에요.

김성규=궁극적으로는 작품의 질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송년회 때 저희 사무실에서 뮤지컬 한 편을 봤습니다. 그런데 꽤 소문난 작품이었는데도 배우의 노래 실력이 너무 형편없어서 실망했습니다. 심지어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우리도 한 편 만들어볼까요”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박명성=지난 12월 연말에만 54편의 뮤지컬이 공연됐다고 합니다. 제작사별로 작품 수준이 너무 다릅니다. 배우도 기근이고요. 한번 실망한 관객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최악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죠. 우리 스스로 관객을 내쫓는 꼴입니다. 최근 2~3년 전부터 기업 송년회 모임으로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골라서 볼 수 있는 풍성한 공연이 많고 기업이 회계처리하기 쉽게 관련 항목들을 정리해준다면 문화접대비가 좀더 활성화되지 않을까요. 기업이 문화예술계에 협찬·후원사로 참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합니다.

김성규=다가올 ‘문화의 세기’는 창의성이 관건 아닙니까. 기업도 창의성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게 중요한 미래투자가 될 것입니다. 창의성의 중요한 발원지는 바로 예술이죠. 기업이 인재를 키우는 데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스템을 만들고 그런 기업에 혜택을 주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어떨까 싶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재양성에 투자하기 힘드니 예술단체와 연계하는 프로그램 등이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최근에는 ‘문화인증기업’ 제도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환경인증기업’이 있듯 말이죠.

박명성=기업과 예술의 만남은 앞으로 화두가 될 것입니다. 과거에는 기업이 제품 생산만 잘하면 됐지만 미래에는 얼마나 창의적인 인재를 갖고 있느냐가 경쟁력이지요. 기업도 문화예술을 두고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지요. 문화접대비 제도가 그런 사회적 흐름을 타고 기업과 문화예술계를 잇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으면 합니다.

〈정리|김희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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