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위 클래지콰이 ‘Instant Pig’

2008.07.17 17:52
배영수 | 월간 52street 기자

전자음악 정점서 휴머니즘 자극

‘인터넷’으로 수혜를 입은 신진 아티스트들이 있다. 기껏해야 TV와 라디오, 그리고 약간의 언론 매체가 홍보 수단의 전부였던 당시에 일종의 ‘전환점’이 됐던 1998~2002년의 과도기를 요긴하게 사용한 팀들은 나름 쏠쏠하게 재미를 봤다. 반짝 성황했던 인터넷 가요제를 통해 얼굴을 알린 성시경이나 자신들의 홈페이지에서 음악을 선 공개 후 메이저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던 얼바노(Urbano) 등의 전례는 아주 대표적. 그중에서도 지금 소개하는 클래지콰이는 그 과도기를 가장 잘 이용한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불릴 만하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91위 클래지콰이 ‘Instant Pig’

이들이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던 시기는 2000~2001년쯤 음악 외에 별 공개한 것이 없었던 자신들의 홈페이지였다.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긴 했지만(호란은 당시의 멤버가 아니었음) 그때만 해도 그들의 존재가 생경하기 짝이 없었던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장을 열어젖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무단으로 공유가 가능하게끔 배포됐던 그들의 mp3는 일종의 ‘독화살’로 작용될 수밖에 없었던 다른 기성 가수들의 음원과 달리 오히려 본인들의 이름을 오래도록 각인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 주었다.

당연하게도(?), 2004년 발매된 그들의 데뷔작 ‘Instant Pig’는 최악의 상황이었던 음반 시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이미 네티즌들과 음악 마니아들이 해놓은 ‘포장’은 그들 스스로를 레코드숍과 인터넷 음반 몰로 향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또한 본작을 기점으로 홍대 클럽에는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클럽들이 젊은이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는 후에 ‘시부야케이’로 불리는 일본의 일렉트로니카·라운지 아티스트들이 한국의 뮤지션들과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하게 되는 촉매제가 됐다.

이들은 대중에게도 성공적인 어필을 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훗날 이들의 대표곡으로 불려지게 되는 ‘Sweety’와 ‘Gentle Rain’서 유연하게 흐르는 두 보컬리스트, 알렉스와 호란의 목소리는 그 매력의 정점을 이미 데뷔작에서 보여줬다. 또한 ‘Novabossa’ ‘After Love’ 등의 트랙들은 당시 국내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았던 ‘칠아웃’의 개념을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전자 음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도 그 안에서 휴머니즘의 감성을 건드리는 특유의 장기는 이후 각종 CF와 드라마의 배경음악을 장식하는 훌륭한 소스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이 음반의 백미는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Futuristic’이라 할 수 있다. 댄서블하면서도 절대 싼티 나지 않는, 현재의 클럽 뮤직의 전형이 된 이 음악에서 특히 호란의 보이스와 그들의 정체성은 최고로 빛을 발한다. 또한 이는 그룹의 리더인 DJ 클래지와, 빠른 전자 비트를 기본으로 하지만 불안정하지 않은 차분한 질감의 프로듀스에 성공한 엔지니어 이용섭의 공로이기도 했다. 이후 한국 음악계는 ‘클래지콰이 이전’과 ‘클래지콰이 이후’로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즉 ‘돈 벌 수작으로 만든 댄스 뮤직’으로만 치부하며 대중들이 저급하게만 인식했던 전자 음악의 숨은 매력을 클래지콰이는 통쾌히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