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오바마, 김정일에게 무슨 일이?

2009.04.29 18:14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

너무 완고해도 문제지만, 무원칙하게 조변석개하는 것 역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나쁜 행동에는 보상할 수 없다며 북한과의 대화 거부로 일관해 북핵문제를 악화시킨 부시 1기 행정부의 원칙주의나 PSI 참여를 놓고 이쪽 저쪽 눈치 보느라 하루 이틀 사이로 오락가락해온 이명박정부의 과도한 유연성이 좋은 예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격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하겠다는 오바마의 대북정책 원칙은 평가받을 만하다. 원칙과 유연성의 조화는 상황 변화에 맞는 다양한 정책의 추진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명박도 원칙은 철저하되 접근은 유연하게 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문제는 상황에 맞게 적용하느냐 이다. 이론적으로, 오바마의 엄격함은 이명박의 원칙과, 오바마의 북·미 직접 대화는 이명박의 유연성과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유연성이 필요할 때 원칙에 얽매이거나, 오바마는 유연한데 이명박은 원칙적이라면 서로 어긋 날 수 있다. 북·미는 서로 잘 통하는데 남북은 대결하고, 한·미는 서로 불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오바마 정부 출범 전후 우려했던 일들이다.

남북한·美의 미묘한 입장변화

[이대근칼럼]이명박, 오바마, 김정일에게 무슨 일이?

그런데 요즘 미묘한 흐름이 나타났다. 미국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북한과의 대화 대신 대북 압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남한은 의외로 대북 강경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있다. 북한은 개성에 사람을 억류하고도 남북 대화는 병행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남북한, 미국이 모두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다. 그럴 사정이 있을까. 북한은 위성을 쏘았고, 유엔 안보리는 북한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대북 제재를 했다. 북한은 질세라 영변 재처리 시설을 재가동하며 위기를 고조시키고, 남한에는 전쟁 위협을 하고 있다. 미국은 강하게, 남북은 유연하게 변해가는 이 복잡하고 엇갈린 장면들은 무엇인가.

혹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북한을 모르는 오바마가 대선 때는 참모들이 써주는 대로 대북 유화적 발언을 했지만, 취임 후 북한의 도발을 경험한 뒤 북한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인식했을 것이라고.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쏜 날 새벽 4시40분 잠을 깨야 했으니 그의 뇌리에 북한의 도전이 선명히 새겨졌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만하다. 클린턴도 제재를 강조했다. 그러나 오바마보다는 조심스럽다. 보즈워스는 로켓을 쏘기도 전에 대화해야 한다고 했고, 자누지는 제재보다 대화와 지원이 더 싼 해결책이라고 했다. 오바마·클린턴·보즈워스·자누지의 순서로 강경하다. 이렇게 정책 결정자로서 지위가 높을수록 강경하고 낮을수록 온건한 것은 대북정책 기조가 변한 증거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보다 더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바마는 동맹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마침 북한과 일정한 냉각기가 필요하다. 이명박정부 쪽으로 보조를 맞추기에 좋은 때이다. 그렇게 하면 다음에 이명박정부로부터 양보를 기대할 수 있다. 오바마는 조속한 남북대화를 바라는 다수 한국인의 여론도 고려해야 한다. 문제 많은 이명박정부 대북정책을 무조건 따를 수는 없다. 북한에 대해서는 제재와 대화의 신호를 동시에 보내야 한다. 미국은 지금 이런 곡예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명박정부가 이 뉘앙스를 안 것일까. 욕을 먹어가며 PSI참여를 유보하고 굴욕적인 남북 개성 접촉 제안을 받아들여 당국 대화의 계기를 잡으려 하고 있다. 입조심도 한다. 이명박정부답지 않은 인내심의 발휘이자 관용적 태도이다. 북한도 뭔가 다른 낌새를 눈치 챈 것일까. 대화 국면 전환 의사로 오해받을 수 있는 개성 접촉을 제의했다. 압박에 굴복하는 모양을 피하려 남측을 대하는 게 까다롭기는 하지만, 냉랭했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너무 이른 것이 틀림없다.

불안하지만 그래도 생산적 고민

낯설고 의아하다. 북한답지 않다. 경제난·식량난에 후계자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김정일도 수렁에서 벗어날 길을 찾느라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일까.

유엔안보리가 사과하지 않으면, 핵실험·미사일 발사를 단행하겠다는 북한의 느닷없는 공세를 감안할 때 미국과 남북한의 이런 고민만으로는 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최근의 이상기류가 더 큰 파국을 불러내는 전조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생산적인 고민은 해야 한다. 그런 것조차 없다면, 한반도 평화는 언제 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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