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를 잡는 법

2009.05.13 18:08 입력 2009.05.14 03:35 수정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

[이대근칼럼]박근혜를 잡는 법

반복되는 실수에도 자기 교정이 안 되던 이명박이 달라진 것일까. 재·보선 완패 직후 쇄신과 단합을 약속한 것은 분명 변화이다. 원내대표라는 당 요직을 박근혜 측 인사에게 넘기기로 하고 당 쇄신위원회 구상도 내놨다. 첫 패배가 보내는 신호에 이렇게 민감하고 신속하게 반응할 줄 알다니, 적어도 경보 시스템은 작동하는 정권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이명박의 어설픈 솜씨에 박근혜는 더 멀리 달아났다. 이명박이 또 졌다. 그러나 박근혜도 약점을 드러냈다. 박근혜는 김무성이 원내대표가 되는 걸 반대하는 이유로 당헌·당규에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그런 것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절차상의 문제였다. 게다가 절차는 쇄신과 단합이라는 상위의 원칙, 국정 성패라는 핵심과제와 등가가 될 수 없다. 서로 교환할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작은 문제에 집착하다 큰 원칙을 버렸고, 그 때문에 ‘책임감이 없다’는 전례 없는 당내 비판에 직면해 있다. 박근혜는 지금 한나라당 정권의 위기를 헤쳐나갈 지도력, 문제해결 능력을 시험받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자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그는 김무성 원내대표안을 수용,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의 과묵함이 지나쳐 그가 국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그걸 꼭 말해야 알겠느냐고? 수사(修辭)를 남발하는 과잉의 정치도 문제이지만, 과소의 정치도 문제다. 어떻게 정치 현안에 대응하고, 정책적 논쟁을 이끄는가 하는 것은 곧 정치 지도자를 검증하는 과정이자 시민을 설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원칙대로’ ‘국정을 잘 해야 한다’는 한마디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건지 모르지만, 이런 침묵으로 그때까지 정치적 자산이 차곡차곡 쌓일지 의문이다.

-밀치지도 끌어안지도 말라-

그러나 이명박은 이런 박근혜의 한계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의 약점은 이명박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지 않는다. 이명박의 성공 여부는 사실 따지고보면, 박근혜와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당 안팎에서 박근혜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지만, 국정 실패의 주요인은 이명박의 실정에 있다. 박근혜 포용으론 어림없다. 박근혜 인기라는 것도 상당 부분 이명박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의 결과이며 또한 이명박 비판세력이란 지위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런데 신뢰잃은 이명박과 한편이 된 박근혜, 이명박의 부하가 된 박근혜라면 매력적이지도 않고, 그런 박근혜는 이명박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이명박은 이밖에 대통령 권력의 문제도 안고 있다.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권력을 독점한 대통령이 자기 권력을 제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한국형 대통령제도 이명박 실패의 한 요인이다. 재·보선 패배 때 이명박과 박희태가 만난 장면을 보자. 박희태는 이명박에게 면목없다고 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당이 쇄신하고 단합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적반하장, 주객전도. 선거 결과는 대통령의 국정 난맥과 혼선, 무능에 대한 심판인 줄 천하가 안다. 그렇다면, 박희태가 이명박에게가 아니라, 이명박이 박희태에게 면목없다고 말해야 했다. 이명박이 당원들에게 사과하고 국정 운영의 잘못을 반성해야 했다. 그런데 정부와 청와대는 그대로 두고, 오직 청와대 지침을 따른 죄밖에 없는 당을 바꾸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권력은 이렇게 원인을 결과로, 결과를 원인으로 뒤집기까지 한다.

-朴心보다 民心잡는게 먼저-

이런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스스로 국정을 바로잡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박근혜를 아쉬워할 이유도 없다. 박근혜의 약점이 왜 서로 팽팽히 맞설 때가 아니라 이명박이 양보했을 때 드러났는가. 박근혜의 한계는 이명박이 자기 권력을 제어할 때 부각된다는 걸 의미한다. 따라서 과감한 국정 쇄신이 정답이다. 이명박·박근혜 갈등이 문제가 아니다. 정치에서 갈등, 그리고 주류·비주류의 대립은 불가피하고 필요하기까지 하다. 대립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정치적 경쟁을 통해 성찰할 기회를 얻고, 그럼으로써 국정의 오류를 바로잡고 대안적 지도자로 단련되고 성숙해지냐가 문제이다. 이명박에게 박근혜가 문제가 아니고, 박근혜에게 이명박이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은 박근혜가 바로 자기를 비추는 거울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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