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당일 해고 통보·직장 내 괴롭힘 만연
11일은 한글날 대체공휴일이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이날 쉬지 못했다. 개천절 대체공휴일이었던 지난 4일도 마찬가지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공휴일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돼있기 때문이다. 대체공휴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 해고 금지,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 등 근로기준법에 규정돼있는 여러 가지 노동자 보호 장치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노동자는 37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 수준이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4개월간 연구한 끝에 이날 ‘5인 미만 갑질 보고서’를 발표했다. 직장갑질119로 접수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제보 71건을 분석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43.7%(31건)으로 가장 많았고, 임금은 42.3%(30건), 징계해고는 35.2%(25건)이었다.
제보 사례들을 보면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사용자의 해고 통보가 이뤄졌다.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해고할 때 예고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조항은 준수되지 않았다. 사용자의 과도한 업무 부여와 지나친 업무 지시, 4대 보험 미가입에 대해 항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노동자가 해고를 당했다. 한 노동자는 “평소 대표가 직원들에게 인격모독성 발언을 비롯해 갑질을 일삼아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던 중 구두로 당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며 “상호간에 논의된 바 없이 강압적 분위기에서 대표가 고함을 치며 해고 통지를 했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도 제대로 구제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른 노동자는 “사장이 폭언을 일삼았고, 살이 쪘다는 이유로 운동장을 돌게 만드는 등 사장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두려워 공포에 떨 정도였다”며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으나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해서 직장 내 괴롭힘은 다뤄지지도 못했다”고 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를 통해 확보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연도별 처리현황’을 보면 전체 신고 건수 중 5인 미만 사업장 등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건수의 비율이 지난해는 41.2%, 올해는 8월까지 37.7%였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의 상당수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벌어진다고 추정할 수 있지만 감독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근로시간·연장근로·공휴일 규정·연차유급휴가 관련 근로기준법 조항도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내년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5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보다 13~15일을 더 일하게 된다는 게 직장갑질119의 분석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 위기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경영상 이유로 휴업을 하려면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해야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노동자는 “코로나19 이후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온갖 압박을 받았고 비상식적인 모욕 발언이 일상적이었다. 5인 미만이라는 이유로 무급 휴직, 직장 내 괴롭힘 등 온갖 갑질을 참아왔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직장갑질119는 해외에서는 국내와 같이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획일적으로 노동법의 적용을 배제하는 입법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예외적으로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개별법의 적용을 제한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 때에도 입법·정책적 목표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써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도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심준형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법 대부분의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근로기준법은 세계적 추세에 반하는 반인권법”이라며 “영세사업장의 조건을 고려하더라도 해고·직장갑질·휴일 등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조항은 시급히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