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도 부패·무능·분열하면 보수”, 자전적 대담집 낸 임헌영 문학평론가

2021.10.13 16:05 입력 2021.10.13 23:01 수정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왼쪽)과 유성호 한양대 교수가 13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린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길사 제공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왼쪽)과 유성호 한양대 교수가 13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열린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길사 제공

문학평론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장인 임헌영(80)의 삶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다. 해방 후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아버지를 잃고, 이후 오랜 세월 ‘연좌제’에 그늘에서 지냈다. 1970년대에는 문인간첩단 사건과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으로 두 차례 투옥됐다. 격랑의 세월 속에서도 그는 <한국 근대 소설의 탐구> <한국 현대 문학 사상사> 등의 책을 쓰며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이자 문학평론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한길사)은 그의 생애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대담집이다. 임 소장과 유성호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의 대화록을 정리한 것이다. 임헌영의 유년 시절부터 두 번의 수감생활을 거쳐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지금까지 생애를 집약한 자전적 기록이다. 13일 서울 중구의 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두 사람이 참석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대담집은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였던 리영희 선생과 임 소장이 2005년에 썼던 <대화> 이후로 16년 만에 나온 것이다. 임 소장은 “등단한 지 55년이 됐는데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게 뭐였을까라는 생각으로, 말년에 다 내려놓고 쓰자는 심정으로 썼다”며 “이 책을 통해 민족대서사시로서의 문학을 주로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 책은 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한국 근대사 해석이기도 하다”고 했다.

책을 통해 임 소장은 인생을 한 번 더 반추했다. 그는 “1946년 대구 시민항쟁에 아버지와 삼촌들이 갔었다”며 “제가 만 5세인 시절부터 역사와 정치를 의식하도록 시대가 저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연좌제’는 제가 문학을 하게 된 계기가 됐고, 제 삶 속에서 민주화, 평화, 통일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974년에 서빙고 보안사 분실터에 끌려가던 시절의 이야기가 쓰여있는 부분을 직접 읽으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유 교수는 “임 선생님과는 이전에도 잘 알고 지냈지만, 이번에 긴 시간 소통을 하면서 더 많이 알게 됐다”며 “임 선생님은 특정 세력에 대한 지지와 반대를 떠나 한국 역사의 큰 틀에서 사회주의 운동이나 반제국주의 운동의 보편적인 흐름들을 섭렵하신 분이며, 역사주의자이자 미학주의자”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임 소장에게 현 정권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이 나왔으나, 임 소장은 “평가는 조심스럽다”며 대신 진보와 보수에 대한 생각을 풀어놨다. 그는 “세계 모든 진보 정권은 다 위기고 실패했고 좌절했다”며 “진보는 부패, 무능, 분파주의 세 가지를 극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세력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보수도 합리화되면 진보가 되고, 진보도 부패하거나 무능하거나 분열하면 보수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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