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는 완전무결한가
거래내역을 블록체인에 기록
소유권·사용권한 분명히 명시
복제해서 대량으로 배포 못해
메타버스와 웹3 교두보 역할
NFT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좀 재밌게 그린 그림 파일인 것 같은데 억 단위의 금액에 팔렸다든가, 메타버스와 웹3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뉴스도 종종 보인다. NFT를 검색해보면 NFT는 ‘Non-Fungible Token’의 약자이고, 대체 불가능 토큰이라고 흔히 번역된다. 번역된 말을 보아도 딱 와닿지 않는다. ‘대체 불가능’에서 대체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마트에서 선뜻 내 지갑 안의 5만원권 지폐를 계산대에 내밀기 위해서는 이 지폐에 ‘5만원’이라는 가치 이외의 특별함이 없어야 한다. 행여 메모지가 보이지 않아 급하게 거래처의 연락처를 받아적은 지폐라면, 이 지폐는 특별해지고 대체 불가능해진다. 특별한 단 하나의 지폐가 아니어도, 위조지폐는 진짜 지폐를 대체할 수 없다. 금화나 은화를 사용하던 시절이라면, 눈으로 보기에 같아 보여도 재질이나 무게가 다르다면 대체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화폐가 대체 불가능하다면 원활한 거래가 어려우므로 법정화폐는 대체 가능성을 갖도록 설계된다. 낡은 지폐를 은행에 가져가면 교환해주는 것도 대체 가능성을 제공하는 한 방편이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은, 다른 토큰으로 교환할 경우 가치가 달라져서 교환할 수 없는 토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토큰’은 무엇일까? 토큰과 코인 두 단어가 혼용되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토큰은 흔히 ‘화폐’, 특히 ‘암호화폐’와 동의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토큰이라는 단어에는 원래 ‘바우처(voucher)’, 즉 특정 내용에 대해 보증해주는 보증서라는 뜻도 있다. 이 내용이 상품이나 서비스로의 교환이라면 상품권이 되고, 이 내용이 버스나 지하철 이용료를 지불했다는 증명이라면 버스 혹은 지하철 토큰이 된다. 보증서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위조 보증서를 만들 수 없도록 특수 용지를 사용하고, 인지를 붙이고, 서명을 넣는다. 블록체인에 올라가는 토큰의 경우, 지불 수단으로 만들어진 토큰은 대체 가능한 암호화폐로 쓰이고, 특정 디지털 자산의 소유를 증명하는 보증서의 역할을 하는 토큰은 대체 불가능한 증명서가 된다.
겉보기에 같아 보이는 것이라도 확인 절차 없이 쉽게 바꿔 쓸 수 없는 것들은 다 대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기프티콘도 대체 불가능한 증명서이다. 기프티콘에는 일련번호가 있고, 구매자가 기프티콘을 지불 수단으로 제시하면 상품권 판매처에 일련번호를 조회하여 잔액을 확인하게 되어있다. 종종 지인에게 받은 기프티콘을 사용하려고 했더니 이미 사용한 기프티콘이었다는 얘기가 들리듯이, 같은 상품을 제공하는 기프티콘이라도 일련번호를 넣어 잔액을 확인하지 않고 교환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기프티콘도 대체 불가능 토큰의 일종이다. 기프티콘과 NFT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프티콘은 판매처에서 중앙화된 서버로 일련번호와 잔액을 관리하지만 NFT는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에 일련번호와 거래내역이 기록된다는 것이다.
흔히 접하는 디지털 아트 NFT의 경우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정보(제작자, 제작일시, 자산이 저장된 주소 등)와 일련번호가 포함되어 있고, 전자서명 기술을 이용해 위조나 내용 변경을 매우 어렵게 만들어 정보나 거래내역을 조작할 수 없도록 한다. 개인이 산 NFT로는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비플(Beeple)의 ‘첫 5000일의 기록(Everydays: The First 5000 days)’ NFT를 보면, 비플 작가가 2021년 2월16일에 만들었다는 정보와, 일련번호는 40913이며, jpg 파일이 저장된 인터넷주소(URL)가 무엇인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 NFT는 작가가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올린 다음 2021년 3월11일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약 863억원에 낙찰되었다. NFT의 소유자가 비플에서 낙찰자로 변경되는 거래내역 또한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기록되어서, 이제 이 NFT의 소유자가 누군지, 이 NFT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그림파일이 저장된 주소가 무엇인지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이 NFT는 낙찰자의 소유권을 증명하고, 이 NFT에 기록된 주소에 있는 그림파일을 전시할 권리가 낙찰자에게 있음을 증명한다.
NFT는 누가, 무엇에 대해 만드는 것일까? 전자문서를 작성해서 보증서나 증명서로 만들 수 있는 내용이라면 누구나 NFT를 만들 수 있다. NBA협회는 경기 중 멋진 순간을 담은 동영상 파일의 소유권을 NFT로 만들어 7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MBC는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중 ‘극한 알바’편을 레이레이 작가와 협업해서 NFT로 만들어 오프라인에서 전시회도 개최하고 있다.
NFT는 거래내역을 블록체인에 기록하여 소유권을 분명히 할 뿐만 아니라, NFT가 보증하고 증명하는 전자문서 내용에 관련 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사용해도 되는지 세부사항을 명시할 수 있어 지식재산권 보호에 관심이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매력적이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정에서의 관람만 허용하고 공공장소에서 돈을 받고 상영회를 할 수는 없도록 하는 것처럼, 디지털 자산을 소유자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전시할 수 없도록 한다든가 하는 제한조건을 전자문서에 포함시킬 수 있어 아티스트별, 작품별로 다른 사용권한을 적용할 수 있다.
NFT가 지금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NFT가 보증하고 증명하는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이나 사용권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평가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mp3 파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중반에는 mp3 파일을 불법으로 다운로드받아서 듣는 행위가 성행했다. 인터넷이 빨라지고 동영상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영화나 TV프로그램을 불법으로 다운로드받아 보는 일도 흔했다. 관련 법규제가 강화되고 대중의 인식 전환도 일어나면서 불법 다운로드가 줄어들었고, 지금은 대부분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해서 음악을 듣고, 무료 동영상에 광고가 있는 것이 당연해졌다. 게임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 거래하는 일이 낯설지 않은 지금, 나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디지털로만 존재하고, 그 디지털 자산에 돈을 지불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졌다.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이나 사용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에는 블록체인의 영향도 있다. 비트코인은 화폐를 탈중앙화한 혁신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비트코인은 복제해서 사용할 수 없으면서도 대체 가능한 첫 디지털 자산이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사진이나 음악, 동영상 파일은 복제해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복제 비용이 낮으며, 원본과 사본의 구분 없이 대체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한번 팔리면 대량으로 복제해서 재판매하거나 아예 무료로 배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서, 디지털 자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일련번호를 복사해도 소유자의 비밀키까지 알고 있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블록체인에 기록된 NFT는 복제해서 대량으로 배포할 수 없다.
NFT가 웹3와 메타버스로 이어지는 것은 디지털 자산이 웹3와 메타버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웹3는 플랫폼 참여자들의 기여가 플랫폼 운영자의 이익으로만 이어지지 않고, 운영자와 참여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취지 아래 차세대 웹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참여자들이 플랫폼에 기여하는 부분을 디지털 자산으로 다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참여자가 올리는 사진과 리뷰라든가, 참여자가 편집하고 업로드한 동영상 등은 참여자의 지식재산권이 들어간 디지털 자산으로 간주된다.
마찬가지로 메타버스의 가상공간을 장식할 이미지와 동영상, 가상공간에서 연주될 음악, 아바타를 꾸미는 데에 들어가는 아이템들 모두가 디지털 자산이다.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세리나 윌리엄스가 NFT를 프로파일 사진으로 사용한 것이 한 예다. 명품을 본뜬 ‘짝퉁’ 사용이 문제가 되듯이 가상공간에서도 이런 디지털 자산들의 소유권, 사용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NFT를 사용할 경우 소유권과 사용권 모두 구체적으로 지정할 수 있어 분란의 소지가 없어진다.
NFT가 블록체인을 통해 거래내역을 명시하는 것으로 소유권을 분명히 하고, 원작자가 구체적인 사용권한을 명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점이 있는 한편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많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NFT에 명시된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 문제다. 팩(Pak)이라는 디지털 아티스트는 ‘합산(The Merge)’이라는 NFT를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라는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2만9000명 가까운 사용자에게 판매해서 총액으로는 가장 비싼 NFT 판매 기록을 세웠는데, NFT 마켓플레이스로 유명한 오픈시(OpenSea)에서 검색하면 관련 기사에 실린 그림파일을 이용한 짝퉁 NFT가 등록되어 있다(아래 그림). 사이버펑크(Cipher Punk)
NFT엔 파일이 저장된 주소 담겨
전자문서 내용의 진위 구별 안 돼
손쉽게 투자하고 사용하려면
디지털자산의 진위 확인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 만들어져야
컬렉션은 실제 인물들의 동의도 없이 이들의 캐리커처를 NFT로 만들어 판매했다가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항의에 컬렉션 판매를 취소한 일도 있었다. NFT는 작성자가 만든 전자문서 내용이 블록체인에 등록된 뒤로 위·변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블록체인에 기록된 거래내역을 통해 소유권을 확실히 해주지만 전자문서 내용의 진위나 적절성을 판단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 자산의 진위를 꼼꼼히 확인하고 NFT를 구매한 다음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존재한다. 기프티콘에 커피가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NFT에는 그림파일이 직접 들어있는 것이 아니고, 그림파일이 저장된 주소가 들어있을 뿐이다. 그 주소에 있던 파일이 바뀌거나 삭제되면 소유권과 사용권을 보장해주는 NFT를 가지고 있어도 자신이 구매했던 그림파일을 구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웹3와 메타버스에서 디지털 자산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NFT가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중이 안심하고 손쉽게 투자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단일화된 검색 서비스라든가 디지털 자산의 진위여부 확인 서비스, 수정이나 삭제 염려가 없는 파일 저장 서비스 등의 부가 서비스가 좀 더 필요해보인다.
서울대 전산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주립대학에서 전산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샌프란시스코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분산시스템과 인터넷에서의 보안을 연구했고, 최근에는 게임이론을 이용해서 합리적인 사람들이 블록체인처럼 탈중앙화된 시스템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최신 기술의 발전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실리콘밸리에서 컴퓨터과학을 오래 가르치면서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 영향력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기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