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해영 구의원 당선인(35)은 6·1 지방선거 유세기간보다 선거가 끝난 후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는 서울 마포구 바선거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47.5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대만 언론이 ‘한국 사상 최초 성소수자 의원 탄생’이란 제목의 기사를 맨 먼저 내보냈다. 이 기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확산됐고 국내에서도 그를 ‘첫 성소수자 의원’으로 소개한 기사가 보도됐다. 그의 말을 빌면 “이미 오래 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커밍아웃을 해왔지만, 또 한 번 커밍아웃을 해야 할 시기”가 온 셈이다.
마포구선거관리위원회의 당선증 교부식이 있던 지난 7일 서울 중구에 있는 경향신문 사옥에서 차 당선인을 만났다. 파란 정장 차림인 그의 손에는 당선증이 담긴 봉투가 들려 있었다.
차 당선인은 마포구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청년 정치인이자 성소수자 인권활동가였다. 2017년 언론을 통해 커밍아웃한 그는 자신을 “남자를 좋아할 수도, 여자를 좋아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왔다. 지난 대선 때는 이재명 후보가 출연한 닷페이스 영상에서 “제가 후보님의 첫 성소수자 친구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당선으로 국내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구의원이 됐다.
차 당선인은 당선 직후 지인들로부터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언급해도 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따로 입단속을 한 적도 없는데, 혹시라도 제게 피해가 갈까 다들 선거 끝날 때까지 숨죽이고 있었나봐요.” 차 당선인의 대답은 “마음껏 하시라”였다. 유세기간엔 성 정체성을 일부러 알리지도, 일부러 숨기지도 않았다고 한다. “검색만 해도 나오는 사실이고, 제가 궁금해서 기사를 찾아본 분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대중정치를 지향한 만큼 성소수자 의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책과 공약을 다루고 있었고요. 구의원에 적합한 사람이란 걸 알리는데 성 정체성을 재차 밝혀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했어요.”
서울 은평구에서 태어난 차 당선인은 2007년 마포구 공동체 라디오에서 미디어 활동가로 일하다가 마포구에 터를 잡았다. 성소수자 인권운동뿐 아니라 1인 가구 등 다양한 청년 의제에 두루 관심이 많았다. 망원시장 상인들과 협업해 1인 가구를 위한 소셜 다이닝을 운영했고, 1인생활밀착연구소 ‘여음’ 대표, 서울시주민참여예산위원,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활동가이던 그가 정치에 발을 디딘 건 ‘두 사건’의 영향이 컸다. 하나는 2014년 서울시가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둘러싼 갈등으로 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포기한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2020년 7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사망한 일이었다. “그때 결심했어요. 정치를, 내 삶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말자.”
차 당선인은 스스로를 “복합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했지만 선거기간 그를 ‘소수자’ 정체성 하나로 각인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한 번은 한 가게에 커밍아웃을 했던 과거 기사가 배포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민주당이 다른 동네 성소수자 아가씨를 데려다 출마시켰다’는 비하 표현이 담긴 글이 SNS에 유포되기도 했다. 당선 직후에는 ‘당신이 성소수자인 걸 알았으면 주민들이 안 뽑았을 것’이라는 조롱섞인 말이 나왔다. 차 당선인은 “마포에서 해온 활동 이력과 행정 경험은 사라지고, ‘차(해영)’ 하면 ‘성(소수자)’이 되는 그런 상황이 됐다”고 했다.
그래서 당선은 더 절실했다. 물러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차 당선인은 “어떤 정치인이든 희화화될 수 있다 생각하고,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면서도 “사회적 소수자가 공적 영역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가 가진 정체성이 약점화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소수자가 당선됐다는 소식보다 정치권에서 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더 활발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차 당선인은 “일 잘하는 걸로 유명한 구의원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또 “‘주민 곁에 있는 든든한 구의원’이란 슬로건답게, 의정에 주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마포구는 다양성의 도시”라며 지역구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인디문화의 산실인 홍대가 있기도 하고요. 게스트하우스가 밀집해 있어 외국인도 많이 오가죠. 사회적 약자를 환대하는 문구를 써놓은 가게,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는 가게들도 많아요. 낯선 사람, 낯선 문화를 환대할 줄 아는 주민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 아닌가...제가 감히 뭘 바꾸겠다, 해내겠다 말하는 것보다 주민들이 만들어온 것들을 잘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백 마디 말보다 4년 동안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답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