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를 대표하는 노동자가 이사회에 참석해 주요 안건에 대해 발언하고 의결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가 4일부터 공기업 36곳과 준정부기관 94곳 등 130개 공공기관에서 실시된다. 지방 공기업에서 실시되던 노동이사제가 공공기관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대상 공공기관은 노조 대표의 추천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은 비상임 노동이사 1명을 뽑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노동이사의 신분과 권리를 과도하게 축소·제한하는 세부지침을 만들고,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어 제도가 안착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논란의 핵심은 기획재정부가 지난 6월 마련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 세부지침이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은 “노동이사로 임명되는 사람이 노조법상 노동조합의 조합원인 경우에는 그 자격 또는 직을 탈퇴하거나 사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는 이 지침이 노동이사의 역할을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운법 개정안에는 노동이사가 노조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는데 기재부가 경영지침으로 노조 탈퇴 규정을 만든 것이다. 노동자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노동이사가 노조를 탈퇴하도록 강제하면 지위가 약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유럽국들도 대부분 노동이사들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이사가 일반 비상임위원과 달리 임원추천위원회의 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 점도 지나치다. 이대로 적용하면, 직원과 임원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통해 유효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해야 할 노동이사 역할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3일 공공운수노조와 정의당이 개최한 관련 토론회에서 노조 측이 같은 문제를 제기한 이유이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취지는 노조의 관점을 가진 노동이사가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공공기관의 경영 투명성과 이사회 운영의 민주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태로 노동이사제를 시행한다면 그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이사제가 노사관계를 발전시키기는커녕 거꾸로 걸림돌이 될 우려도 있다. 기재부가 모법과 시행령에도 없는 내용을 경영지침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지난해 여야 대선 후보들이 합의하고 국회에서 통과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정부가 앞장서서 훼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는 노동이사제가 공공기관에 안착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