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수학’ 도입된 새 교육과정, ‘수포자 구하기’ 역부족

2022.09.05 20:58

③ 2025년 수학은 어디로

공통수학서 어려운 내용 빼…현장선 “수포자 해결에 한계”
11년 만에 행렬 부활…“4차산업에 필요” 과학계 요구 반영
교육계 “수업 시수 줄고 내용 늘어 빨리 진도 빼는 수밖에”

수학 교육과정은 매번 개정될 때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 이후 과정에 필요한 내용을 충실히 가르쳐야 한다”는 과학계의 요구와 “수학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현장의 아우성을 조율해 만들어진다.

2025년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의 고등학교 수학 교육과정을 보면 이런 상반된 요구를 조율해 보려는 노력의 흔적이 눈에 띈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본수학’이 공통과목으로 들어온 반면 인공지능 교육의 핵심요소라는 행렬이 추가된 공통수학 학습량은 늘어났다. 새 수학 교육과정도 결국 ‘수포자’(수학포기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따르면 2025년부터는 고교 1학년이 배우는 공통과목에 공통수학 대신 이수할 수 있는 기본수학 1·2가 생긴다. 기본수학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진로 선택과목이었는데 공통과목으로 옮겨가면서 과목 개설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본수학 과목은 공통수학에서 어려운 내용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이를테면 다항식 단원에서는 나머지정리를 배우지 않고, 방정식과 부등식 단원에서는 허수·복소수의 개념과 사칙연산 등이 빠졌다.

기본수학 도입으로 수포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교사들의 지적이다.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것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단계에서 누적된 학습 결손 때문인데, 기본수학은 공통수학에서 어려운 부분만 빠져 있는 수준이라 고교 이전에 생긴 학습 결손을 채워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현직 수학교사인 김성수 좋은교사운동 교육과정위원장은 “이전 단계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거나 수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해주기보다는 고1 내용 중 쉬운 것을 모아놓은 수준이라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학생부에 이수과목이 ‘공통수학’ 대신 ‘기본수학’으로 표기될 경우 대입 시 ‘낙인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 학생들이 쉽게 기본수학을 선택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본수학 선택으로 복소수 등 핵심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중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수학을 선택하려 할 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개정된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11년 만에 고1 공통수학 교과서에 부활하는 ‘행렬’이다. 행렬은 선형대수학의 필수개념으로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 7차 교육과정까지는 수능 출제범위인 수학1에 포함돼 있었지만 학습 부담을 지나치게 높인다는 지적 끝에 2011년 고1에 처음 적용된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 빠졌다. 지금은 고급수학에 포함돼 과학고 등 일부 특목고에서만 가르친다.

이번 개정은 고교 과정에서 행렬의 개념이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기초과학계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7차 교육과정에 있던 역행렬 등 난도 높은 내용은 빠졌다. 행렬 단원 자체도 수능 시험 범위 밖인 고1 공통과목으로 들어갔다. 교육계에서는 행렬을 기본 개념 정도만 가르치는 방식으로 애매하게 부활시키면서 학습 부담만 늘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 연구원은 “행렬을 공통과목에 배치한다는 것은 이를 이용해 수능에 문제를 만들겠다는 뜻 이다”며 “이를테면 행렬과 미적분을 통합하면 훨씬 어려운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시안대로 행렬 단원이 고1 과정에 추가되면 고등학생뿐 아니라 중학생들도 수학 학습 부담이 커진다. 수학 과목 성취기준이 바뀌지 않은 채 단원 하나가 추가됐고,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학기당 교과 시수가 17주에서 16주로 줄어들며 교과 기본학점도 5단위(학점)에서 4학점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행렬이 추가되며 기존 고1 과정이던 이차함수의 최댓값과 최솟값은 중3으로, 중3 과정이던 통계의 대푯값은 중1로 내려가는 연쇄 학습 부담 증가도 생겼다.

전국수학교사모임 등 수학교육 관련 단체들은 지난 5월 성명에서 “수업 시수는 줄어들고 내용이 늘어나면 교사들은 ‘빠르게 진도 빼는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며 “수포자를 위한 현장의 노력을 불가능하게 해 수포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수학 교과서의 내용과 수준은 사회의 필요와 요구, 정치적 상황 등에 따라 갈팡질팡을 거듭했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대학에 입학한 7차 교육과정 적용 문과생들은 고등학교에서 미적분을 배우지 않아 경제·경영·통계학계의 불만이 컸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행렬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공간벡터 개념이 삭제되면서 수학계와 과학계가 반발했다. 2022학년도 수능부터 기하가 출제범위에 들어가면서 학습 부담이 늘어난다는 현장 우려가 쏟아졌다.

이처럼 ‘백년대계’여야 할 교육정책이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문제를 극복하고자 국가교육위원회가 올해 7월 출범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위원 윤곽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위원장 내정설이 도는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의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 주도 전력 등이 사회적 논란이 되면 국교위가 연내 출범하기도 어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과정을 차분히 검토하고 국가 중장기 교육정책을 수립해야 할 국교위 출범 지연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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