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그늘

도심 멀어질수록, 주민 적을수록 짙어지는 ‘안전 사각지대’

2023.07.27 21:21

극한 호우 피해 ‘비도심’ 집중
재난안전 ‘지역 불균형’ 드러나
주민 대부분이 노인, 정보 늦고
예방·복구 대책도 ‘도심 위주’
“광역·중앙 차원 컨트롤 필요”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한 마을에서 지난 16일 주민들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조태형 기자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의 한 마을에서 지난 16일 주민들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조태형 기자

올해 장마 때 내린 폭우로 전국에서 47명이 목숨을, 1554명이 집을 잃었다. 경북 예천군 산사태와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지하차도 참사 등 대규모 인명피해는 특히 비도심 지역에 집중됐다. 재난안전의 ‘지역 불균형’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구와 물적 자원이 적은 비도심 지역일수록 자연재해 예방, 대응, 회복을 위한 환경이 모두 취약하다. 재해 정보를 알려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등 디지털 기술은 고령층에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신속한 구조를 위한 소방·경찰 등 인프라와 인력도 부족하다.

지난 폭우 때 산사태로 큰 피해가 발생한 예천·봉화군, 영주·문경시 마을 14곳은 모두 지방자치단체의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에 포함되지 않았다. 5명이 목숨을 잃은 예천군 백석리 흰돌마을은 산림청이 지정하는 ‘산사태 취약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마을에는 14가구만 거주하고 있었다.

주민이 적을수록 자연재해 예방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십상이다. 인구가 많고, 세수가 많은 지역에 먼저 재난 대비책이 만들어진다. 자연재해 분석과 예보를 위한 데이터 수집도 비도심은 ‘후순위’다.

환경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인공지능(AI), 디지털트윈(현실의 사물 등을 가상세계에 구현한 것) 기술을 이용한 침수예보시스템은 도시에 먼저 구축된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과거 자연재해 기사에 남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연재해를 분석하고 있는데, 도심에 몰려 있는 언론사 특성상 비도심 지역의 자연재해 피해를 다룬 기사량은 현저히 적다.

수도권에 호우특보가 내려진 지난 11일, 트위터에는 “○○○ 아파트의 지금 상황” “대침수”라는 글과 함께 단지가 빗물에 잠긴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사진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지난해 여름에도 이수역 천장 빗물 누수, 중랑천과 불광천 범람 상황이 SNS에 올라왔다.

이 같은 침수 상황을 알려줄 제보자가 적고 고령층이 많은 비도심 주민들은 재해 상황을 한발 늦게 알게 될 가능성이 크다. 윤희철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센터장은 27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노인들은 주로 TV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재해 정보를 얻는다. 휴대전화를 통화 수단으로만 인식해 재난안전문자도 잘 안 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문해력이 부족하거나, 시력이 나빠 작은 글씨를 못 읽거나, 전화할 때를 제외하고 휴대전화를 놓고 다니는 노인에게는 긴급안전재난문자가 무용지물이다. 예천군은 산사태가 나기 전 가정에 설치된 스피커로 호우 상황을 27회 방송하고 재난문자를 46회 보냈지만 희생자가 나왔다.

구호 물품도 자원봉사자도 ‘부익부 빈익빈’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대부분이 매몰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일대 마을에서 지난 16일 실종자를 가족이 애타게 찾고 있다. 조태형 기자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대부분이 매몰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일대 마을에서 지난 16일 실종자를 가족이 애타게 찾고 있다. 조태형 기자

재난 관련 앱을 노인 친화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인 이용자를 위한 재난안전 정보 애플리케이션 사례연구’(2021)에서 부산대·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연구진은 “행정안전부 안전디딤돌은 글자 크기는 조정할 수 있으나, 노인을 위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인용 재난 행동요령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 ‘안전 충남지킴이’ 앱을 소개했다.

비도심은 경찰·소방 시설 수에 비해 면적이 넓다. 재난 대응 속도도 도심에 비해 더딜 가능성이 크다. 공간정보학회지에 지난달 게재된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노인 자연재난 위험지역 탐지 및 재난 대응력 측정’ 논문을 보면, 경북 영덕군의 한 마을은 경찰·소방 시설과 32㎞나 떨어져 있다.

연구진은 “영덕군 서쪽엔 경찰과 소방시설물이 없다”며 “인구밀도가 낮아서 운영의 현실성 측면으로 인한 영향도 있지만, 재난 발생 시 구조해야 할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남 곡성군(11월 개청 예정), 경북 영양(8월 개청 예정)·울릉군에는 아직도 소방서가 없다.

비도심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재해 구조, 복구 작업을 하는 의용소방대가 대표적인 예다. 김미경 전국의용소방대연합회 회장은 “인구가 적은 지역은 정년 65세 제한으로 퇴직 인원은 많고, 지원자는 거의 없다. 현재 회원도 거의 55세 이상이다. 인원 보충이 필요해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라며 “의용대 인원이 부족하면 다른 시·도에서 지원해야 하는데 1시간 반, 2시간 동안 이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윤희철 센터장은 “전북 익산군의 경우 구호물품이 부족해 전북도가 다른 지역 물품을 조달해줬다. 이런 식으로 광역·중앙 차원의 컨트롤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취약지구에 대해서는 우체국 집배원이든 공공서비스에서 수집한 정보를 통합하고 지자체가 통합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 안 고온이 감지되면 복지사가 노인 집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복지 차원의 재난 대응책도 떠올릴 필요가 있다”며 “모든 지역에 공공시설을 세우기보다는 공공시설과 가까운 공간에 사람들을 모아 정주시키는 도시계획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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