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24년 이탈리아의 로사가, 20세기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2024.07.01 16:29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로사마리아 카이아자가 이탈리아 사르데냐섬 스틴티노시에 설치된 소녀상 옆에 앉아있다. 소녀상 옆에 놓인 빈 의자는 피해자의 자리이자 피해자와 함께하는 시민의 자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로사마리아 카이아자가 이탈리아 사르데냐섬 스틴티노시에 설치된 소녀상 옆에 앉아있다. 소녀상 옆에 놓인 빈 의자는 피해자의 자리이자 피해자와 함께하는 시민의 자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의 푸른 바다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막식에 나온 현지 주민 로사마리아 카이아자는 “이 조형물은 전쟁 중 일어난 비극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피해자와의 연대를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이다”라며 활짝 웃음을 지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전시 성폭력이 중단되기를 바라는 상징물이다. 앞서 독일, 미국, 중국, 호주 등 네 개 국가에도 세워졌다. 카이아자는 서울과 약 9400㎞ 떨어진 사르데냐섬 스틴티노시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제안했다. 한국 교민이 아닌 시민이 소녀상 건립을 추진한 것은 이례적이다. 기자는 카이아자와 지난달 26일과 28일 두 차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초등 교사직에서 은퇴한 카이아자는 현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탈리아어로 전하는 온라인 매체 ‘코탈리아’의 관리자이다. 여느 외국인처럼 영화와 음악을 접하며 한국에 관심을 두게 됐다. 한국과 더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건 한국사를 공부하다가 2년 전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다. 카이아자는 위안부 피해를 다룬 논문, 피해자 인터뷰 등을 스스로 찾아봤다.

카이아자는 특히 고 김복동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언급한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그들에게는 여성으로서의 자유, 학습권 등이 주어지지 않았다”며 “어떤 여성도 평생 그러한 비인간적 성적 학대를 받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4월과 10월 두 차례 서울을 방문했고, 두 번째 방문 당시에는 위안부 피해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마포구에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향했다. 카아이자는 “역사적인 사진과 젊은 여성들의 물건, 그들이 그린 그림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박물관에는 고 김복동, 고 김순덕 할머니 등 피해자들이 일본군에 끌려갈 당시 상황을 직접 그린 그림이 전시돼있다.

로사마리아 카이아자가 지난해 10월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찍은 사진. 왼쪽 사진 배경은 마포구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본인 제공

로사마리아 카이아자가 지난해 10월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찍은 사진. 왼쪽 사진 배경은 마포구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본인 제공

위안부 피해자들이 생전 용기를 내 세상에 전한 메시지는 2020년대를 사는 이탈리아인을 움직였다. 카이아자는 지난해 12월 평소 친분이 있던 리타 발레벨라 스틴티노 시장에게 소녀상을 짓자고 제안했다. 변호사 출신이자 여성 인권 문제를 중요시해온 발레벨라 시장은 제안을 환영했다. 시의회도 소녀상 건립을 승인했다.

카이아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성들도 성폭력을 당했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인권 유린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며 “과거의 실수를 아는 게 중요하며, 그래야 다음 세대의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아자는 한국에서 옮긴 소녀상이 스틴티노에 우뚝 세워지기까지 부지런히 움직였다. 지역 여성단체 회원들과 함께 노란색 평화나비 배지 수백 개를 만들어 제막식 참가자들에게 나눠줬다. 비문 번역가, 제막식 통역가와 합창단 등을 섭외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사르데냐섬 스틴티노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로사마리아 카이아자(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참가자 가슴에 달린 노란 나비 배지도 카이아자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손수 제작했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사르데냐섬 스틴티노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로사마리아 카이아자(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참가자 가슴에 달린 노란 나비 배지도 카이아자와 지역 주민들이 함께 손수 제작했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일본 정부가 시에 제막식 연기, 비문 수정 등을 압박했음에도 무사히 열린 제막식에는 사르데냐섬 주민, 정치인,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우리 지역에도 소녀상을 지어야겠다”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용기 있게 말하고, 다른 나라의 여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상황이 감동적이다” “불과 며칠 전 다른 시에서도 소녀가 성폭력을 당했다. 위안부 문제는 다른 이의 얘기가 아니다”라며 소회를 나눴다.

카이아자는 지난달 26일 열린 제1654차 수요시위에 연대 서한을 보냈다. 그는 “매일같이 수많은 이탈리아인과 관광객들이 소녀상을 찾아 감명을 받고, 그 옆에서 사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스틴티노의 시민들은 무한한 환대와 진실한 우정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받아들였다”고 썼다.

이어 “불행히도 오늘날까지 많은 여성이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비슷한 전시 성폭력 피해를 보고 있다. 과거의 피해자들과 현재의 피해자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야 한다”며 “저 또한 소녀상을 지키고, 소녀상이 상징하는 모든 피해자를 기억할 것임을 맹세한다”고 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사르데냐섬 스틴티노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참가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사르데냐섬 스틴티노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참가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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