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성난 사람들’ 이성진 감독 “한국적인 것,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통한다”

2023.08.16 16:54 입력 2023.08.17 10:47 수정

아 최대 영상 마켓 ‘BCWW 2023’ 참석 방한

“봉준호·박찬욱 이후 나도 한국 이름 찾아”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의 크리에이터이자 총괄 책임자 겸 감독인 이성진씨가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BCWW 2023’ 특별 세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의 크리에이터이자 총괄 책임자 겸 감독인 이성진씨가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BCWW 2023’ 특별 세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한국적인 것, 한국인의 경험과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세요. 더 멋지고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인기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의 크리에이터이자 총괄 책임자 겸 감독인 이성진씨가 한국의 콘텐츠 창작자에게 조언했다. 이 감독은 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BCWW 2023’의 특별 세션에 연사로 참여했다. BCWW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아시아 최대 방송영상마켓이다.

‘삶의 진실에서 스토리를 건져 올리는 법’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세션에서 이 감독은 <성난 사람들>에 얽힌 뒷이야기, 미국의 아시아계 창작자로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눴다.

<성난 사람들>은 도급업자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웡)가 도로 위에서 난폭 운전으로 엮이고 복수전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시아계 제작자와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이 작품은 지난 4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후 현대인의 분노와 허무를 독특하게 풀어냈다는 호평과 함께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시상식에서 11개 부문 13개 후보에 올랐다.

이 감독은 자신이 몇해 전 실제 겪은 ‘로드 레이지’에서 <성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몇년 전 퇴근길에 신호가 바뀐 걸 보지 못한 저에게 흰색 BMW 차량을 모는 백인 남성이 고함을 지르고 경적을 울려댔다. 감정이 폭발한 제가 난폭 운전을 하며 따라간 일이 있었다”며 “이 경험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고 두 캐릭터에 대해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주연 배우인 앨리 웡과 스티븐 연이 작업에 참여하면서 아시아계 여성과 남성이 서로 부딪치는 개성 있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이 감독은 1981년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다. <성난 사람들> 속 한인 교회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그가 경험한 교민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성난 사람들> 촬영 현장에서의 이성진 감독 모습. 넷플릭스 제공

<성난 사람들> 촬영 현장에서의 이성진 감독 모습. 넷플릭스 제공

이 감독은 2020년대 들어 미국 엔터테인먼트업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처음 작가로 데뷔했을 때에는 아시아계 작가가 아주 소수였고, ‘어떻게 하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글을 쓸까’ 걱정하면서 썼다”며 “지금은 다양성이 강조되면서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뭘 좋아할까’보다 내 정체성을 피력하면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의 엔딩 크레디트에 한국식 이름 그대로 ‘LEE SUNG JIN’을 올리는 것 역시 정체성을 피력하는 방식 중 하나다. 이 감독은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이 부끄러워 ‘소니(Sonny)’라는 영어 이름을 썼다. 그러나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해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부를 땐 미국인들이 실수하지 않아요. 저도 소니란 이름 대신 한국 이름 이성진에 자부심을 느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좋은 작품을 만들면 미국인들도 한국 이름을 듣고 웃지 않을 거라고요.”

이 감독은 북미 진출을 꿈꾸는 한국의 콘텐츠 제작자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 있는 제 친구들은 일본이나 브라질의 콘텐츠는 안 봐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고 K팝을 듣는다”며 “사람들은 한국인의 경험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고 또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에는 저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인인 우리가 우리들의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한류의 성공 이유가 거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성난 사람들>의 인기를 반영하듯 이 감독을 보기 위해 몰린 참가자들로 가득찼다. 특히 시리즈의 두 번째 시즌 제작 여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이 감독은 “미국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SAG)이 지난달부터 파업 중”이라며 “시즌 2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은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시작된 파업에 이 감독 역시 한 명의 작가로서 동참 중이다.

이 감독은 세션 말미 <성난 사람들>을 향한 한국 관객들의 성원에 감사를 표했다. “저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학교도 다녔지만 25년이나 한국에 오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환대를 받으며 여러분을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과 연결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성난 사람들>의 한 장면. 두 주인공 에이미(앨리 웡)와 대니(스티븐 연)는 모두 아시아계 이민자들이다. 넷플릭스 제공

<성난 사람들>의 한 장면. 두 주인공 에이미(앨리 웡)와 대니(스티븐 연)는 모두 아시아계 이민자들이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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