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벽에 하얗게 새긴 호주 원주민의 계보···“조용하고 강렬했다”

2024.04.21 17:30 입력 2024.04.22 18:11 수정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현장

아키 무어의 호주관 사상 첫 황금사자상

블랙홀 같은 구멍은 학살의 아픔 그려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4명

대규모 직조 설치물 본전시 최고상

역사·정치적 소외 집단 재조명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호주관의 아키 무어의 전시 전경. 사진출처 베니스비엔날레 호주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호주관의 아키 무어의 전시 전경. 사진출처 베니스비엔날레 호주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호주관의 아키 무어의 전시 전경. 베니스|이영경 기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호주관의 아키 무어의 전시 전경. 베니스|이영경 기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호주관의 아키 무어의 전시 전경. 베니스|이영경 기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호주관의 아키 무어의 전시 전경. 베니스|이영경 기자

5m 높이의 전시관 사방의 검은 벽이 하얀 분필로 눌러쓴 글씨로 가득 채워졌다. 어두운 전시관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하얀색 글씨들이 규모와 양에서 관람객을 압도한다. 빽빽한 글씨들의 정체는 ‘쿨린(Kullin)’ ‘쿰키(Kumki)’와 같은 이름들이다. 호주의 원주민 예술가 아키 무어(Archie Moore)는 호주 원주민의 6만5000년이 넘는 가계도를 손으로 그려넣었다. 군데 군데 블랙홀처럼 글씨가 지워진 구멍들은 학살 등 잔혹행위를 나타낸다. 무어는 호주 원주민의 숨겨지고 잊혀진 광대한 역사를 복원함으로써 현재와 과거, 미래를 연결하려 했다.

원주민 예술가들의 작품이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휩쓸었다. 비엔날레에 참여한 국가관 가운데 가장 뛰어난 곳에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이 호주 아키 무어의 ‘친족과 친척(Kith and Kin)’에게 돌아갔다. 호주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전(본전시)에 참여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황금사자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4명으로 구성된 마타호 컬렉티브(Mataaho Collective)에게 돌아갔다. 베니스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지난 20일 개막식을 열고 수상작을 발표했다.

심사위원단은 호주관 전시에 대해 “조용하고 강력하다”고 평했다. 심사위원단은 “6만5000년의 역사가 어두운 벽과 천장에 새겨져 있다. 강렬한 미적 감각, 서정성, 가려진 과거에 대한 상실의 감각을 공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돋보이며 회복의 가능성도 희미하게 보여준다”고 평했다.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마타오 컬렉티브의 전시 전경. 베니스|이영경 기자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마타오 컬렉티브의 전시 전경. 베니스|이영경 기자

뉴질랜드 여성 원주민 예술가 그룹 마타호 컬렉티브는 대규모 직조 설치물 ‘타카파우(Takapau)’를 선보였다. 마오리 여성들이 출산 등 의식에 사용하는 전통 직조물을 대형으로 제작해 아르세날레 본전시장 천장을 감쌌다. 조명이 천장과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 패턴의 효과가 더해져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심사위원단은 “빛나는 직조물이 전시장을 시적으로 가로지른다. 자궁과 같은 요람의 직조물은 모계 전통과 관련이 있으며, 우주적이고 안식처와 같은 느낌을 준다”고 밝혔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2022년 제59회 황금사자상을 흑인 여성 작가들에게 안겨준 데 이어 이번에는 원주민 작가들을 황금사자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며 역사·정치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작품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경향을 보여줬다. 이번 비엔날레 국제전의 주제는 ‘어디든 외국인이 있다(Foreigners Everywhere)’다. 라틴아메티카 출신 최초의 예술감독 아드리아누 페드로자는 선주민, 퀴어, 여성, 이주민 예술가들의 작품들로 본전시관을 가득 채웠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의 전시의 영상. 98명의 인간과 지구 생태계를 싣고 우주로 떠나는 대형 우주선이 등장한다. 베니스|이영경 기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의 전시의 영상. 98명의 인간과 지구 생태계를 싣고 우주로 떠나는 대형 우주선이 등장한다. 베니스|이영경 기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서 선보인 전시 중 공연 모습. 사진출처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서 선보인 전시 중 공연 모습. 사진출처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에서  존 아콤프라의 ‘Listening All Night To The Rain’ 영상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인종차별, 신민주의, 난민, 환경파괴 등 광범위한 이슈를 시적인 영상으로 엮어냈다. 베니스|이영경 기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에서 존 아콤프라의 ‘Listening All Night To The Rain’ 영상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인종차별, 신민주의, 난민, 환경파괴 등 광범위한 이슈를 시적인 영상으로 엮어냈다. 베니스|이영경 기자

■줄어들지 않는 대기줄…최고의 화제 독일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의 화제는 독일관이었다. 자르디니에 위치한 독일관 앞에는 프리뷰 기간 내내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관람객들은 2시간에 달하는 대기시간을 기꺼이 감수했다. 독일관은 터키 출신 예술감독 카글라 일크의 지휘 아래 6명의 예술가가 협업한 작품 ‘임계값(Threshold)’을 선보였다. 영상, 공연, 설치가 혼합된 한 편의 극과 같은 전시로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는 대형 우주선의 이야기와 석면공장에서 일한 노동자의 이야기 두 축으로 이뤄졌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나선형 계단으로 이뤄진 좁은 수직 구조물 안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다. 석면 때문에 죽은 광부와 가족의 이야기가 층계를 올라가며 연극처럼 펼쳐지는데, 아버지이자 가장인 배우가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나체로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SF적이고 신화적인 우주선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과 잿더미와 분진으로 가득한 광부의 황폐한 집이 대비돼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풍긴다.

이집트관, 영국관, 프랑스관도 관람객들을 줄세우며 인기를 끌었다. 이집트관은 와엘 샤키의 ‘Drama 1882’로, 제국 통치에 반대하는 우라비혁명(1879~1882)을 다룬 뮤지컬 영상과 조각 등을 선보인다. 영국관은 존 아콤프라의 ‘Listening All Night To The Rain’으로 인종차별, 식민주의, 난민, 여성운동, 생태문제 등 현대사회의 광범위한 문제를 시적인 영상으로 엮어낸 걸작을 선보였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이탈리아 베니스 몰타 수도원에서 열린 한국관 건립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에 참여한 강익중 작가와 그의 작품 ‘아리랑’. 강익중 작가는 1997년 한국관 본전시에 참여해 특별상을 받았다. 베니스|이영경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 몰타 수도원에서 열린 한국관 건립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에 참여한 강익중 작가와 그의 작품 ‘아리랑’. 강익중 작가는 1997년 한국관 본전시에 참여해 특별상을 받았다. 베니스|이영경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 몰타 수도원에서 열린 한국관 건립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에 전시된 김수자 작가의 ‘바늘여인’ 연작들. 베니스|이영경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 몰타 수도원에서 열린 한국관 건립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에 전시된 김수자 작가의 ‘바늘여인’ 연작들. 베니스|이영경 기자

■베니스 곳곳에 K아트…‘희미한 냄새’ 한국관

한편 한국관은 ‘냄새’를 내세웠으나,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구정아-오도라마 시티’는 국내외 600명으로부터 한국의 기억에 대한 사연을 수집해 이를 16가지 향으로 표현해 전시장 곳곳에 보이지 않게 설치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향만으로 한국에 관한 기억과 이야기를 표현하는 새로운 시도였다. 하지만 16가지 향 가운데 밥 짓는 냄새만이 비교적 잘 느껴졌으며, 다른 냄새들은 잘 구별되지 않았다. 구정아 작가가 만든 애니메이션 캐릭터 ‘우스’가 내뿜는 16개의 향을 혼합해 논픽션이 출시할 상업 향수 ‘오도라마 시티’의 향만이 강하게 느껴졌다.

한국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베니스 곳곳에서 전시를 선보였다. 한국관 30주년 기념전 ‘모든 섬은 산이다’가 몰타기사단 수도원의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열렸다. 한국관 전시에 참여한 작가 36명(팀)의 작업 가운데 1995년 첫 개관 당시 선보인 작품부터 최근 제작된 신작을 포함한 총 82점을 소개한다. 한국관 출품 작품 10점은 현재의 관점에서 재연됐다.

이밖에도 ‘1세대 추상미술 작가’ 유영국의 개인전은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숯의 작가’ 이배, 프랑스에서 활동한 1세대 추상미술 작가 이성자의 개인전, 매듭 페인팅 창시자인 신성희의 개인전과 광주 비엔날레 30년을 돌아보는 아카이브 전시 등이 열렸다. 한국 설치미술 선구자 이승택과 제임스 리 바이어스의 2인전이 열리기도 했다. 베니스 산 자코모섬에서는 안무가 안은미의 ‘핑키핑키 굿’ 공연이 열렸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날 공식 개막과 함께 일반 공개를 시작해 11월 24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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