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아이돌 정우철,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힙한 예술가’는?

2024.05.22 11:15 입력 2024.05.23 19:23 수정

‘미술관의 피리부는 사나이’ 도슨트 정우철

2019년 베르나르 뷔페 전시로 인기···5년 만에 다시 만난 뷔페전

세 보이지만 슬픈 ‘광대’ 그림에 매료

뷔페야말로 극적인 인생을 산 ‘힙한 예술가’

정우철 도슨트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정우철 도슨트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그가 한 그림 앞에서 다른 그림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100명은 족히 될법한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술관의 피리부는 사나이’로 불리는 도슨트 정우철(35)이다. 지금이야 ‘도슨트계의 아이돌’로 불리며 방송과 강연 등을 종횡무진하는 유명 인사지만 2019년까지 그는 해설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무명의 도슨트였다. 그해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베르나르 뷔페의 전시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전시 초대권에 그려진 광대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림이 세면서도 슬픈 거예요. 광대의 공허하고 슬픈 눈빛에 매력을 느꼈어요. 이 화가는 사연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구글을 뒤져 자료를 찾아봤죠. 그런데 사연이 너무 기구한 거예요. 한 번 (도슨트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같은 건물에서 열리던 에바 알머슨 전시의 도슨트를 하고 있던 그에게 뷔페전 도슨트를 맡아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사비를 들여 일본 시즈오카의 뷔페 미술관으로 날아가 전시를 보고 책을 사와 일본어 전문 번역가에게 맡겼다. 그렇게 뷔페전 도슨트 ‘대본’이 나왔다. “대본이 나왔을 때 수중에 0원이 있었어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모든 걸 쏟아부었죠.” 그렇게 시작한 뷔페전 해설이 ‘대박’이 났다. 정우철의 해설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그 뒤로 정우철은 인기 도슨트로 승승장구했다. 샤갈, 마티스, 알폰스 무하, 툴루즈 로트렉 등 유명 작가들의 전시 도슨트를 맡았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다시 베르나르 뷔페와 재회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뷔페의 두 번째 대규모 회고전에서 도슨트를 맡았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지난달 30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정우철은 “감회가 새롭기도 하지만 부담감이 크다. 뷔페의 첫 전시때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었기 때문에 그때처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우철 도슨트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정우철 도슨트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화가의 인생을 작품과 연결시켜 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이 정우철의 장기다. 정우철의 해설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뷔페만큼 극적인 스토리텔링에 적합한 작가도 없다. 고통, 때이른 성공과 이어진 질투와 비난, 예술가의 고집과 극적인 죽음이 뷔페의 인생에 존재한다.

“뷔페만큼 그 사람의 인생을 알고 봐야 할 작가가 있을까요. 뷔페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17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뷔페가 어린 시절 ‘사랑과 어머니는 같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런 어머니가 죽은 거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뷔페는 ‘살고 싶어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초기작을 보면 물감을 긁어 표현한 흔적들이 있는데, 고통의 표현일 수 있는 거죠. 뷔페는 30대에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되고 ‘구상회화의 왕자’라고 불리며 대성공을 거둬요. 하지만 추상이 대세를 이루면서 인생이 확 꺾여요.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비난 대상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비난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하며 끝까지 구상회화를 포기하지 않아요.”

베르나르 뷔페 ‘광대의 얼굴(Tete de clown, 1955),’ Huile sur toile, 73x60cm, (C) Bernard Buffet

베르나르 뷔페 ‘광대의 얼굴(Tete de clown, 1955),’ Huile sur toile, 73x60cm, (C) Bernard Buffet

‘n차 관람’ 열풍을 불렀던 첫 번째 회고전에 이은 두 번째 회고전에 선보이는 120여 점은 1점을 빼고는 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정우철은 “작품이 거의 다 바뀌어서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지난 전시에 광대 그림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전시에 광대 작품이 많이 와서 좋다”고 말했다.

공허한 눈빛의 광대 그림은 뷔페의 시그니처와 같다. 정우철 역시 광대에 이끌렸다. “스스로 광대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슬픈 날도 힘든 날도 있는데, 전시 해설을 하거나 방송을 하게 되면 내 인생을 넣어두고 저 사람(작가)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달해야 하잖아요. 나도 어쩌면 가면을 쓴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광대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뷔페의 전시가 MZ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이유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젊은 사람들이 꾸며진 이미지로 살잖아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점에서 뷔페의 그림이 공감대를 사는 거 같아요. 어떻게보면 진짜 인간의 모습을 그린 거죠.”

‘힙함’ 또한 MZ 세대가 뷔페를 좋아하는 이유로 들었다. “뷔페만큼 힙한 예술가가 없어요. 젊은 시절 재능을 인정받아 스무살에 비평가상을 받아요. 프랑스 잡지에서 전후 예술가 10명을 꼽는데 1등을 하죠. 이른 나이에 정점을 찍은 거죠. 이후 인생이 꺾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입맛에 절대 맞추지 않죠. ‘캔버스 앞에선 모든 것을 잊고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하던 뷔페는 파킨슨병으로 그림을 못 그리는 순간이 오니 스스로 세상을 떠나죠.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예술가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베르나르 뷔페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1976), 캔버스에 유채, 250×430㎝ 한솔비비케이 제공

베르나르 뷔페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1976), 캔버스에 유채, 250×430㎝ 한솔비비케이 제공

정우철이 주목해야 할 또다른 ‘기대작’으로 꼽은 작품은 4m 폭의 대형 유화 ‘단테의 지옥’. 그는 “뷔페가 지옥을 그린다면 어떻게 묘사될까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로 전시의 마지막 파트 ‘죽음’을 꼽았다. 파킨슨병에 걸린 뷔페가 죽기 직전 남긴 그림 ‘죽음’과 그가 떨리는 손으로 붓질을 하는 영상을 함께 볼 수 있다. “거장이 죽기 전 떨리는 손을 붙잡고 마지막 작품을 그리는 모습이 기록돼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그 영상과 함께 ‘죽음’을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정우철의 ‘스토리텔링’ 해설은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그만큼 비판도 받는다. “화가의 인생과 예술을 따로 봐야 한다, 기법과 사조와 같은 미술사적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죠. 하지만 전시 해설을 들으러 오는 분들은 공부하러 오는 건 아니예요. 전시를 이제 막 보기 시작하고 미술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화가의 인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림에 그 사람의 삶과 신념이 녹아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화가도 결국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방송, 강연 등 활동으로 바쁜 날들이지만 일주일에 적어도 이틀은 전시 현장에서 해설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사람들이 저의 어떤 모습을 사랑해줘서 인기를 얻었는지 기억하려고 해요. 현장에서 사람들과 호흡하는 게 정말 재미있죠. 도슨트일이 정규직도 아니고 보수가 많은 편도 아닌데 즐겁지 않다면 할 수 없어요. 내가 아는 지식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제 도움으로 사람들이 전시를 더 풍부하게 보고 고마워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정우철 도슨트가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 앞에 서 있다. 김창길기자

정우철 도슨트가 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 앞에 서 있다. 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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