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문 당선소감- “이제 내게도 뿌리가 생긴 것 같다”

2008.12.31 16:50

[2009 경향 신춘문예]시 부문 당선소감- “이제 내게도 뿌리가 생긴 것 같다”

시 부문 당선자 양수덕씨(55·본명 양선희)는 기자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첫번째는 적지 않은 나이로 ‘늦깎이 등단’을 했다는 점이었다. 두번째는 그럼에도 그의 시가 젊고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양씨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제를 재확인시켜주었다.

“뿌리가 없던 사람에게 뿌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시에서 많은 실패를 겪었고, 희망도 안 보여 스스로가 바람 같다고 느꼈어요. 제가 당선된 것은 시를 잘 써서라기보다 저 같이 뿌리없이 사는 사람들, 존재감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뿌리가 없다고 했지만, 양씨에게 시는 자신의 존재 그 자체였다. 성신여자사범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도 시에 대한 꿈을 한시도 접지 않았다. 40대 초반 자비로 시집을 내기도 한 그가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한 것은 8년 전. 혼자 쓰는 시는 발전이 없다는 생각에 시 공부모임에 나갔다. 지금은 서울 성북구 돈암동 시사랑회 화요팀에서 공부하고 있다.

시에 대한 애정 하나로 외길을 걸어왔지만, 신춘문예 등에서 낙선을 거듭하며 아픔도 많이 겪었다. “한 선생님이 ‘시를 열심히 쓰다 보면 언젠가 시가 보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큰 용기가 됐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살았는데 이제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기분입니다.”

당선작 ‘맆 피쉬’는 양씨의 소외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어느 날 우연히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 목격한 젊은 걸인을 보고 가슴이 아파 시를 쓰게 됐다. “살다 보니 제가 모르는 사람도 스승이고,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스승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를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양씨는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가 너무 놀라 심장마비라도 걸릴까봐’ 나중에 조용히 당선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오래 지켜봐줬던 부모님, 형제, 친구, 주변사람들, 시사랑 화요팀 선생님뿐 아니라 인연 있었던 선생님들, 시사랑에서 함께 공부한 분들께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양씨에겐 시가 바로 그 자신이다. “그동안 혼자 즐기려고 시를 썼지만, 이제 사람들이 위안받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영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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