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문 심사평 - 삶의 비극적 일면을 웅숭 깊게 구현

2017.12.31 20:44 입력 2018.01.01 11:38 수정
심사위원 장석남·최정례

신춘문예 시 부문 본심 심사위원 장석남 시인(왼쪽)과 최정례 시인이 지난달 21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본심에 오른 응모작들을 최종 검토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신춘문예 시 부문 본심 심사위원 장석남 시인(왼쪽)과 최정례 시인이 지난달 21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본심에 오른 응모작들을 최종 검토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완벽한 시 한 편이 이 세상에 있을까마는 만족스러운 그 한 편에 가닿기 위해 그저 그렇고 그런 시들을 백 편 천 편 쓰게 되는 것 같다. 예심을 통과한 열셋 응모자들은 시를 향한 열의와 욕망을 한껏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세세히 살피면서 어느 한 편을 선택하자니 만족스러운 작품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엉뚱한 단어로 문장을 조립 교체하여 새로운 감각을 만들려는 시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적확한 단어가 놓일 마땅한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의 생각은 구체화되고 발전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다. 정확한 문장을 통해 구체화되는 생각, 그 생각이 이행 혹은 비약하면서 깊이를 얻고 새 길을 찾을 때 시에 힘이 생긴다.

‘밀밭의 생성’을 쓴 백선율은 초반부의 신선한 발상을 매력적으로 끌고 갔으나 중반 이후부터는 그 생각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하고 말았다. ‘경영혁신추진팀’이라는 전혀 시적일 것 같지 않을 제재로 시를 시도한 변호이는 현대를 사는 우리 일상의 일면을 새롭게 보여주려 했으나 이분 또한 끝마무리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신선한 생각과 그 생각의 발전 과정과 비약의 정점을 내장한 시의 마지막 문장을 찾기 위해 우리는 시를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모서리의 생활’을 쓴 전윤수의 시를 마지막까지 당선작으로 고려한 이유는 이 도시의 한 모서리, 방 한 칸의 틈에서 신산스럽게 사는 우리의 일상이 언뜻 보였기 때문이다. 정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뚜렷하게 묘사했더라면 올해의 당선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심사자 둘이 동시에 손뼉을 친 한 작품을 발견하였다. 박정은의 ‘크레바스에서’는 절제된 감정을 인상적으로, 긴장과 이완의 국면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그 속에서 우리 삶의 비극적 일면이 웅숭깊게 구현되어 울림이 컸다. 2018년의 신인 박정은의 발견으로 우리 시단이 한층 풍요로워질 것을 의심치 않는다. 만족스러운 시 한 편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그에게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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