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부문 심사평 - 간소하고 재치 있는 인간 탐구 돋보여

2017.12.31 20:50 입력 2018.01.01 11:35 수정
심사위원 최윤·황종연

신춘문예 소설 부문 본심 심사위원 최윤 작가(왼쪽)와 황종연 동국대 교수가 지난달 19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본심에 오른 응모작들을 최종 검토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신춘문예 소설 부문 본심 심사위원 최윤 작가(왼쪽)와 황종연 동국대 교수가 지난달 19일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본심에 오른 응모작들을 최종 검토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브라유를 듣는 시간’은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천문대 직원이 견학차 그곳을 방문한 맹학교 학생들에게 시각 이외의 수단으로 천체의 존재를 느끼게 해준다는 이야기. 점자 체계 발명자 브라유에 관한 서술을 비롯한 몇몇 대목에 재치가 발휘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의 선의에 대한 순진한 믿음에 기초한 이야기여서 재미가 적다. 명랑 동화 같은 느낌이다.

‘조류’는 가난과 소외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자기의식의 표현으로서 열렬한 데가 있으나 소설로서 범용함을 면치 못했다. 소재는 친숙할지언정 서술은 진부하지 않게 하려는 의욕, 작중 인물들과 환경을 달리하는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한 궁리가 충분치 않다. 작중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모티프인 사람이 닭으로 변한다는 환상만 해도 그 의미가 너무 뻔하다.

‘찰리’의 이야기에는 인터넷 사교 네트워크와 문화상품 소비에 자아 감각과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젊은 세대의 감성이 살아 있다. 한 이십대 여성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보를 얻은 남자에게 매력을 느껴 접근했다가 그의 힙스터적 행위의 비밀을 엿본 이후 환상에서 깨어난다는 그 이야기는 청년문화현상을 반영하는 데서 나아가 세대와 계급 격차에 따른 모럴의 차이를 상기시킨다. 이야기의 세목들이 좀 더 정돈되었더라면, 그 세대, 계급 차이를 명확하게 하는 방향으로 압축되고 배치되었더라면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볼트’는 단편으로서도 간소한 편이다. 작중 화자가 삼촌을 만나러 시골 야산 속에 있는 그의 공장을 찾아가 잠시 머물다 떠난다는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따라, 오랫동안 불법으로 일본에 체류한 노동자였고 화자의 가족에게 가장과 다를 바 없었던 삼촌의 인상을, 관찰과 추억을 섞어가며 스케치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볼트-아시바-남성의 연쇄를 중심으로 하는 은유적 질서가 형성되어 삼촌에 대한 화자의 동정과 경의가 감상적인 것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서술의 경제학이라는 면에서나 인간 탐구라는 면에서나 돋보인 작품이다. 당선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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