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부문 당선소감 - 스쳐간 죽음과 사람들…손잡아주겠다

2017.12.31 20:49 입력 2018.01.01 11:35 수정
지혜 | 한신대 문예창작과

[2018 경향 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소감 - 스쳐간 죽음과 사람들…손잡아주겠다

차가운 공기가 창틀의 미세한 틈을 비집고 방으로 들어왔다. 공기는 금세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찬 공기는 곧 집의 일부가 됐다. 새하얀 적막으로 가득한 방에서 입김은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듯 희미했다. 언젠가 지냈던, 보일러가 고장 난 방은 이따금 허공에 떠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벼웠다. 그때에도 나는 이런 비슷한 글을 쓰고 있었다. 다음날이면 파쇄될 초고들의 방에서. 오늘의 소감은 나의 마지막 초고다.

지금 울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크게 울게 될 거라던 당신의 말을 기억한다. 도무지 그날의 기억이 잊히지 않아 종종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죽었다가 살았다가 옛날 사람이었다가 내일 태어났다가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가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다. 그 꿈의 제목을 나는 아직 모른다.

쿵쿵, 밑바닥에서 무언가 위를 향해 뚫고 오는 소리. 쾅쾅, 위에서부터 나를 짓누르는 소리. 텅텅, 텅 빈 내부에서 밖을 향해 달려가는 소리. 온갖 소리가 나에게서 밖으로 밖에서 나에게로 움직였다. 나는 안전만을 바랐는데 그건 가장 멀리 있는 것 중 하나였다. 작은 그릇과 의자와 물과 쿠션이 놓인 밝고 환한 방. 나는 여전히 안전한 방 하나를 바란다.

나는 기다린다. 소리 소문 없이 집 안에 침입한 매서운 추위처럼 불운과 행운은 언제고 나를 스쳐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내 탓이 아닌 것처럼 여기고 있노라면 금세 계절이 두 번, 세 번 바뀌어갔다. 여기까지 왔다. 나는 이제 그런 생각뿐이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부모님과 친구들,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를 견뎌줘서 고맙습니다. 계속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언제나 건강하길, 행복이 그들과 함께하길 바라고 또 바란다. 기회를 준 경향신문과 정용준, 윤고은, 강유정 선생님, 최윤, 황종연 선생님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나를 스쳐간 많은 죽음, 죽은 사람들, 죽음 앞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소설을 쓰고 싶다. 나를 도와준 잘 모르는 사람들의 속내를 나는 읽지 못한다. 다만 글자를 알아가는 것처럼 더듬더듬, 오독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겠다고, 오늘 받은 응원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그런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하며 이 소감을 마친다.

■지혜

△1986년 제주 출생, 서울 거주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한신대 문예창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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