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수입 69만원… 배고픈 음악가 ‘인디밴드’

2012.02.10 21:24 입력 2012.02.11 00:04 수정
백인성·강수진 기자

홍대 앞 클럽에서 ‘거북이손가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정효씨(23)는 9일 저녁 ‘살롱 바다비’에서 기타를 치며 공연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손님이 많지 않아 공연료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인디밴드들이 주로 활동하는 홍대 앞 클럽에서는 업소마다 다르지만 보통 10명 이상 관객이 입장해야만 연주자와 수익을 나눈다. 티켓(입장권) 값을 카페와 연주자가 5 대 5 또는 6 대 4로 나누는 식이다. “누구를 보러 왔다”며 해당 뮤지션을 ‘지명’하는 손님이 5명 이상 되면 별도로 수당을 지급하기도 한다. 아예 이런 분배 규정조차 없는 가난한 클럽이 더 많다.

■ 음악만으로 생계 유지 힘들어

이씨는 지난해 3월부터 홍대 주변에서 공연을 시작한 새내기 음악가다. 그는 무작정 음악이 좋아 이 길을 걷게 됐지만 지금은 전업 음악가가 되는 데 고민이 크다. 생활고 때문이다. 그는 주변 음악가들의 연습실을 돌면서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했다. 이씨는 “지금이야 부모의 생활비 지원이 있어서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음악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했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 아니고서는 아르바이트나 레슨 같은 일로 돈을 벌어야만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 현실이 그렇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밤 서울 홍대 앞 브이홀에서 열린 여성 인디밴드 ‘스토리셀러’ 단독콘서트에서 보컬을 맡은 빈나가 열창하고 있다. 이 콘서트는 스토리셀러가 최근 발매한 정규앨범 1집 <XX>를 기념해 마련됐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지난 4일 밤 서울 홍대 앞 브이홀에서 열린 여성 인디밴드 ‘스토리셀러’ 단독콘서트에서 보컬을 맡은 빈나가 열창하고 있다. 이 콘서트는 스토리셀러가 최근 발매한 정규앨범 1집 를 기념해 마련됐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인디밴드(Independent Band)는 기존 대중음악가들과 달리 단지 음악이 좋아서 독립적으로 연주나 노래를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창의적이고 예술적 열정이 풍부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음악공연 외에 유통·프로듀싱·믹싱·대관·공연 섭외 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인디음악단체인 ‘서교음악자치회’ 최원민 이사(37)는 “국내 인디음악가 수는 정확히 집계된 적이 없다. 홍대 앞에서만 500~600팀이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홍대 앞에 인디음악가들이 공연할 수 있는 라이브클럽은 20개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하와 얼굴들, 크라잉넛, 국카스텐 같은 이른바 ‘뜬’ 밴드를 제외하면 청년 음악가들은 대부분 이씨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 음악만으로 생계를 지탱하기 힘든 게 이들의 현실이다.

2010년 11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진원)이 생활고를 겪다 뇌경색으로 숨을 거두면서 인디음악가들의 비참한 현실이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10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 뮤지션 생활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디음악가들의 생활수준에 대한 설문조사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이 조사는 지난해 12월 221명의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 77%가 강습·알바 등 추가 노동

음악가들이 느낀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력이었다. 조사에 따르면 인디음악가들에게 매달 시기와 액수가 균일하게 들어오는 고정수입은 평균 69만원에 그쳤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55만3354원에 못 미치는 월 소득 50만원 이하의 음악가들도 38%나 됐다. 월수입 200만원이 넘는 사람은 9%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77%의 음악가들이 음악활동 외에 강습·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추가노동이 주당 40시간 이상에 이르는 응답자도 전체의 22%나 됐다. 이마저 고용이 불안정한 학원강습(29%)이나 아르바이트(23%)가 대부분이다. 정식계약을 맺고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으로 활동하는 음악가는 12%에 불과했다.

응답자 중 65%는 “음악을 주업으로 생각하는 직업 음악가”라고 답했지만 응답자의 절반은 실제 수입 가운데 공연이나 저작권료, 강습 등 음악활동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의 비율이 전체 수입의 10% 미만이었다.

상당수 인디음악가들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음악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청년 음악가들의 자립을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문식 유데이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은 “10대에서 60대까지 아이돌 좋아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면서 “무작정 재정 지원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음악을 창작·공연하고 대중을 만나는 전 과정에 필요한 물적 기반이 대부분 상업화된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음악가들의 자립을 돕는 공적 영역을 확대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 권리 찾기 ‘뮤지션 유니온’ 추진

공식적인 신분 보장도 절실한 문제다. 인디음악가들은 사실상 ‘무직’으로 분류돼 사회안전망의 사각에 방치되고 있다. 이종필 청년유니온 조직팀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1988년부터 3년 주기로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를 하고 있지만 조사대상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원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소속 회원 명단을 기초로 작성된 10개 장르 2000여명에 국한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무소속으로 활동하는 청년 음악인들이 낄 곳은 없다.

임대진 미러볼뮤직 이사는 “인디음악이 한국 음악시장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사회적 차원의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인디 전용 극장이나 연습용 합주실을 만들어 인디밴드들에 저가로 대여해주는 방안이나 음원유통사에 유리한 음원 배분문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 측은 향후 인디음악가들이 모인 ‘뮤지션 유니온’(가칭)이라는 단체를 결성키로 했다. 이들은 “인디밴드가 연습공간을 싸게 빌릴 수 있도록 정부에 창작활동 지원을 촉구하고 연예기획사 쪽에는 대등하게 계약할 수 있도록 표준계약서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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